경기도 해묵은 대중교통 문제 해법으로 ‘파격적 공약’ 지방선거 최대 이슈로…
“밑빠진 독” “공영제가 우선” 등 반론도 만만찮아 얼마나 힘 실릴지 주목
김상곤의 무상버스는 정말 달릴 수 있을까. 김상곤 새정치연합 경기도지사 예비후보가 무상버스 공약을 내놓은 이후 경기도지사 선거전은 온통 버스 정책 논란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 유력 경기도지사 후보인 남경필 의원도 MBC라디오에 출연해 버스 정책 이야기만 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매년 경기도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대중교통 문제가 꼽히는 상황에서 김상곤 후보가 이슈 선점 하나는 톡톡히 한 것이다.
청소년ㆍ노인 대상 공약은 일단 반길 듯
김상곤 후보의 버스 정책은 크게 무상버스와 공영제로 나눌 수 있다. 김 후보는 당선될 경우 65세 이상 노인을 시작으로 장애인, 초·중·고등학생의 버스 이용을 무상화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비혼잡 시간대인 오전 10시~오후 2시에도 단계적으로 무상버스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김상곤 캠프 측은 경기도 버스 경영평가 시스템을 통해 버스운송 원가를 측정하고, 무상버스로 인해 줄어든 버스회사의 수입을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공약을 실천할 계획이다. 캠프 측의 추산에 따르면 2015년까지 노인, 초·중학생, 장애인 무상버스를 실현하는 데 956억원이 소요된다. 2016년에는 무상버스 대상에 고등학생을 포함시켜 연간 1724억원이 필요하며, 비혼잡 시간대 무상버스를 도입하는 2017·2018년에는 각각 2685억원, 3083억원이 들어갈 예정이다. 김상곤 후보는 “경기도 예산을 제로베이스에서 살피고 법정 필수경비를 제외한 예산을 조정해 무상버스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현재의 단계적 무상버스 방안에 서울로 출퇴근하는 도민들에 대한 대책이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실제 버스를 타고 경기도에서 서울을 오가는 비율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2013년 수도권 교통카드 표본 분석 결과 전체의 77.6%가 경기도 내에서 이동한 것이었으며, 서울로 이동한 비율은 20.7%에 불과했다. 이렇게 보면 직장인보다 상대적으로 짧은 거리를 오가는 청소년과 노인을 대상으로 한 무상버스 공약은 가려운 곳을 긁어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경기도민들이 버스요금에 큰 불만이 있었는지 단언하기 어렵다. 오히려 여론조사 결과는 다른 말을 하고 있다. 2011년 8월 경기개발연구원이 조사한 ‘경기도 대중교통 개선항목 시급성 평가’에 따르면, 885명의 응답자 중 22.9%는 차내 혼잡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으며, 요금에 대한 불만은 9.3%에 불과했다. 실제 도민들은 버스 내부의 과밀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김진표 새정치연합 의원 측도 “경기도에서 10년 이상 국회의원을 하면서 교통 불편 여론을 들어왔다. 대중교통에서 중요한 것은 편안함과 시간이지 요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무상급식과는 달라… 기초조사 미흡 지적도
김상곤 캠프 측은 “무상버스와 관련해서 여론조사를 해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2010년 지방선거를 뒤흔들었던 무상급식을 연상시키는 핵심 공약을 내놓으면서 기초적인 여론조사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다소 무책임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서울 버스 만족도 조사를 통해서도 ‘버스요금’이 시민적 요구사항은 아니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시민들이 정말 대중교통의 ‘요금’에 대해 큰 불만이 있다면 김상곤 후보가 교통 약자로 지목한 계층에서 대중교통에 대한 불만이 가장 높아야 한다. 하지만 2012년 서울시의 서울 버스요금 만족도 조사를 보면 60대 이상은 평균 이상의 만족도를 보였다. 10대의 만족도는 평균 이하였다. 소득별로 따져볼 경우 저소득층일수록 오히려 요금 만족도가 높았다.
무상버스가 개개인에게 돌아갈 혜택도 불분명하다. 김상곤 캠프 측은 무상버스가 확대될 경우 결과적으로 대중교통 수요가 늘어나 지금의 교통체증이 해소되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긴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다. 구체적으로 무상버스가 도민들에게 줄 혜택을 따져보자. 2013년 가계금융 복지 조사에 따르면 가구당 지출한 연간 교통비는 약 271만원이다. 경기도의 교통수송 중 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29.8%임을 감안하면, 완전 무상버스가 도입될 경우 가구당 연간 80만원 정도의 교통비 절감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실제 김상곤 캠프의 무상버스 대상자 수는 약 400만명으로 경기도 전체 인구의 3분의 1 수준이다. 정리하면 무상버스로 각 가정이 얻을 수 있는 직접적인 이득은 1년에 약 26만9000원인 셈이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김상곤 후보 측 계산을 따르더라도 연간 2000억~3000억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김상곤 후보는 기존 예산을 조정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현실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결국 무상버스를 위한 세금이 필요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부에서 ‘선심성 공약’, ‘세금 폭탄’이란 표현으로 공격하는 배경이다.
우석훈 경제학 박사는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외국처럼 증세를 하거나 중앙정부에서 돈을 빼내오지 않는 한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상곤 후보가 무상버스 공약의 구체적인 내용을 밝힌 3월 20일, 김 후보에 앞서 무상교통론을 주장하던 노동당은 김 후보의 무상버스에 대해 “요금지원으로 전락한 사업자 퍼주기”라고 맹비난했다.
무상버스 정책을 제시한 김상철 노동당 정책위 연구위원은 “김상곤 후보의 무상버스 정책은 오히려 완전 공영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완전 공영제를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자가 누적된 민간 버스회사로부터 면허권을 인수받아 공공버스로 운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상버스 이전보다 늘어난 보조금을 받게 된 버스회사가 순순히 사업권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게 김 사무처장의 전망이다.
김상곤 후보의 무상교통 정책을 설계한 핵심 인물인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비용 논의보다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얼핏 보면 동문서답 같지만 논리는 이렇다. 전철의 경우 1㎞당 건설비용이 약 1000억원이지만 이에 대한 ‘포퓰리즘 논쟁’은 적은 편이다. 전철의 편리성이 이미 시민의 공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도민들이 무상버스의 혜택을 경험하고 버스 완전 공영제에 동의하게 되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그 지지를 바탕으로 일거에 공영제 도입을 이뤄낼 수 있는 ‘정치적 결단’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게 유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본선에서 전문가들끼리 한 번 이 주제(무상버스)로 토론을 했으면 한다. 그러면 전 국민이 무상교통의 필요성을 인식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경기도는 계속해서 무상버스 보조금을 버스회사에 내줄 수밖에 없다. 버스 공영제를 하게 되면 언론에서 지적한 조 단위의 예산이 현실화되는 딜레마에 빠진다.
경기도 버스회사 관계자들은 무상버스를 통해 버스의 공공성을 인식시키자는 주장이 “현실을 잘 모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 관계자는 “2007년 김문수 도지사가 경기버스와 서울버스의 환승을 도입했을 때 시민 반응은 매우 좋았고 승객도 늘어났다. 하지만 2~3년 정도 지나고 나니 원래 수준으로 돌아왔고 환승에 대해서도 당연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무상버스가 도입되더라도 도민들이 거기에 익숙해져버리면 공영제 도입이 과연 될 수 있겠냐는 지적이다.
또 하나 무상버스의 발목을 잡는 것은 새정치연합의 기초단체 무공천 방침이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은 경기도 기초단체 31곳 중 19곳을 석권했다. 수원, 성남, 부천, 고양 등 경기도의 대표적인 대도시 시장직도 민주당이 싹쓸이했다. 경기도 기초단체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선전할 경우 기초단체의 예산지원은 물건너갈 수도 있는 것이다.
김상곤 측 “사회적 합의만 되면 실현 가능”
무상버스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김상곤 후보의 주장도 이해하기 어렵다. 버스 공영제의 경우 뉴욕 시 등 미국 동부에서 널리 운용되고 있으므로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말할 여지는 있다. 하지만 무상교통이 국제 상식이라고 볼 순 없다. 프랑스 샤토후, 에스토니아 탈린 등 일부 유럽 도시에서 무상교통이 실시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 도시에서 무상교통이 도입된 시기가 채 5년이 되지 않는 데다가 경기도처럼 큰 규모의 도시는 없다. 대체로 수만명이 사는 작은 도시에서 무상교통이 도입됐다. 만약 경기도가 단계적 무상교통을 실시하게 될 경우 인구 1000만명이 넘는 광역단체로서는 최초의 사례다.
노동당 측은 무상버스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버스 공영제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상곤 캠프와 달리 마을버스부터 공세적으로 공영화를 하면서 무상버스를 실현시키겠다는 것이다. 김상철 정책위원은 “학교는 공공재이기 때문에 무상급식을 그냥 도입하면 된다. 하지만 무상버스는 버스 공영제를 도입하면서 시행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김상곤 캠프 측이 대중교통에 대한 깊은 고민보다는 무상급식과 같은 논리로 접근한 것 아닌가”라고 평가했다.
김상곤 캠프 측 유정훈 교수는 노동당의 주장에 대해 “그게 정답이고 바른생활 교과서 말씀이지만 현재로는 불가능하다”며 “공영제가 말은 좋지만 교통전문가 입장에서 아무리 연구를 해도 방법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무상버스에서 빠진 것은 경기도 시내버스의 만성적인 적자 해결방안이다. 경기도 최대의 운송그룹인 KD그룹(경기-대원그룹)은 경기도 버스운송사업조합에 등록된 1만1966대의 버스 중 4000여대를 소유한 거대 기업이다. 하지만 KD그룹과 같은 거대 기업도 매년 수백억의 보조금을 받으면서도 100억원에 가까운 순손실을 내는 것이 현실이다.
원혜영 캠프 측은 “무상교통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수밖에 없다. 경기도 버스의 누적된 적자와 비효율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버스 공영제에 더 힘을 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