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사 출마 선언한 정병국 의원 “경기에 살면서 서울서 돈·시간 쓰는 틀 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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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지방선거에서 경기도는 무주공산이다. 김문수 현 지사가 불출마를 선언했다. 경기도지사를 노리던 정치인들에게 기회의 문이 열린 것이다. 자의반타의반으로 경기도지사 후보군에 오르내리거나 출마를 선언한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다.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순전히 자의로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본인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지사 출마를 종용받고 있는 같은 당 남경필 의원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하고 있다.

서울보다 인구도 많고, 땅은 7배나 큰 곳, 비무장지대부터 테크노밸리까지 다양한 모습의 경기도. 그곳 지사에 대해 그는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정 의원은 경기도와 여의도 국회를 오가느라 정신없이 바쁘다고 했다. 오후 2시에도 점심을 하지 못했다며 도시락을 먹으면서 인터뷰에 응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경기지사 출마 선언한 정병국 의원 “경기에 살면서 서울서 돈·시간 쓰는 틀 깨야”

경기도지사 출마는 언제 결심했나.
“지난해 8월쯤이다. 내가 4선이다. 정치를 계속하면서 5선·6선 하며 선수를 더 쌓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문화부 장관도 해봤지만 장관 하며 회의를 많이 느꼈다. 사실 장관이 의지대로,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드물다. 

돈줄을 쥔 기획재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고, 임기가 정해진 것도 아니다. 어느 한 지역을 성공적으로 변화시켜서 타 지역에서 벤치마킹하고, 이를 통해 전국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고향인 경기도지사에 도전한다.”

현재 경기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모든 게 비정상이다. 경기도는 인구가 1250만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큰 지역이다. 문제는 경기도가 서울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라는 점이다. 서울에 집이 부족하니 경기도 분당·일산 등 5대 신도시를 개발했다. 서울시내에 흩어져 있던 각종 공해 공장들이 반월·시화공단으로 강제로 옮겨졌다. 대학교의 분교들도 마찬가지다. 

이젠 서울의 위성도시나 베드타운이 아니라, 쫓겨서 생기고 밀려서 커진 경기도가 아니라 자체적인 도시계획을 세워야 할 때가 됐다. 2013년 기준으로 매일 서울로 출퇴근·통학하는 경기도민이 125만명, 오가는 사람은 286만명이다. 

일자리를 찾아, 학교에 가려고, 공연이나 쇼핑 등 문화활동을 위해 길에서 2~3시간을 허비한다. 경기도민이 지난 1년간 사용한 카드비가 47조원인데 그 가운데 무려 17조원을 서울에서 사용했다. 경기도에 살지만 서울에서 돈과 시간을 쓰는 이 틀, 이 구조를 깨야 한다.”

해결방안은 무엇인가.
“양질의 일자리, 교육환경, 문화환경이 만들어진다면 굳이 서울로 갈 이유가 없다. 서울에 가기 위해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 가운데 한 시간만 줄여도 경기도민은 하루에 한 시간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난 ‘경기도 3·0 시대’를 선언했다. 서울을 위한 도시가 아니라 창조적 일자리가 넘쳐나고, 도민의 감성을 키우는 문화가 풍부하며, 경기도 아이들이 우수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플랜을 짰다. 

지역구인 양평·가평은 경기북부 지역으로 아주 낙후된 곳이었다. 그런데 현재 인구증가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 됐다. 2000년만 해도 인구가 7만5000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0만5000명이다. 교육과 문화환경이 바뀌니 양질의 일자리도 생기고 자연스럽게 인구가 늘어났다. 

건물과 공장이 들어선다고 그 도시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자녀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시킬 수 있고 문화혜택을 누릴 수 있는 지역기반이 갖춰지면 사람들이 몰려든다.”

손학규·김문수 지사 등도 일자리 창출, 기업 유치 등 업적을 자랑하며 대선후보로 나서지 않았나.
“두 분이 성실하고 훌륭하게 경기도정을 이끌긴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경기도가 워낙 난개발되어 지역환경이나 특성을 잘 살리지 못한 면이 많다. 이제 경기도는 규모에 맞게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경기도는 수도권이라 각종 규제에 꽁꽁 묶여 있다. 이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일자리도 시대에 맞는 일자리가 필요하다.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현재 성남시 판교와 수원시 광교 테크노밸리를 잇고, 수원과 용인, 화성, 평택에 구축한 연구 및 생산단지를 연결하면 한국형 K밸리가 탄생된다. 소프트웨어와 지식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규제에서 자유롭고 일자리 창출도 훨씬 더 많이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란 말을 했다. 경기도는 북한과 가장 인접한 지역이기도 하다. 경기도지사 후보로서 통일에 대한 플랜이 궁금하다.
“통일은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기에 준비가 필요하다. 막연한 준비가 아니라 아주 구체적 계획이 마련되어야 한다. 나는 비무장지대인 DMZ 주변을 정비해 인프라를 구축할 구상을 하고 있다. 정부의 역점 추진사업 중 하나가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이다. 그러나 북한의 협조, 장소 결정 등에 난관이 많다. 

나는 접경지역 중심의 공원 벨트 조성을 구상했다. 남북만이 아니라 세계인이 모이는 공유의 장소 같은 거다. 북한과 현재 직접 대화가 어려운 상태인데, 북한과 교류하고 있는 중국·러시아 기업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투자를 해서 세계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DMZ를 찾는 연간 600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일일관광이 아닌 체류형 관광을 할 것이다. 또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평화공원 아이디어를 공모해 뽑힌 예술인들을 1~2년 상주시켜 프로젝트를 구현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통일은 총을 겨누는 대신에 이렇게 문화적·평화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4선 의원이다. 한 지역에서 네 번이나 계속 당선된 비결은 뭔가.
“생활정치다.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 끝없이 현장에서 대화한다. 3선을 할 때까지 상임위를 바꾸지 않았다. 초선 때 열심히 세미나도 하고 자료집도 만들고 정부 부처로부터 답변도 받아냈다. 그런데 정치분야가 워낙 넓으니 4년이 지나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국정감사 때 다른 의원들이 만든 자료집을 보니 과거에 내가 다루고 지적한 게 대부분이었다. 왜 그럴까. 국감 때 지적을 해도 그 사이에 장관이 바뀌고 담당 공무원이 순환보직으로 바뀌어 지적사항에 대한 팔로업이 안 되기 때문이다. 

장관 시절에 현장에서 건의받은 것이 237건이었다. 담당국장에게 처리하라고 지시하고 보고서도 받았다. 내 방에 로드맵을 만들어 건건이 체크했더니 노조원들이 찾아와 ‘장관이 바뀌고 일이 5배나 늘었다’, ‘밤새 일해도 안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국·실장을 불러 사안별로 장기과제, 단기과제, 불가능한 일로 나누고 민원인들에게 명확한 답변을 해주라고 했다. 그랬더니 공무원들이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내지 않고 현장에서 건의한 민원만 제대로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성과가 커서 만족도가 높았다. 

8개월 동안 37%를 달성했다. 지역구에서도 항상 현장에서 답을 찾으니 지역민들이 신뢰해서 계속 표를 주신 것 같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경기지사 출마 선언한 정병국 의원 “경기에 살면서 서울서 돈·시간 쓰는 틀 깨야”

조사기관이나 매체마다 차이가 심하긴 하지만 현재 지지율이 썩 높지는 않다.
“지금까지의 여론조사는 인지도 조사일 뿐이다. 큰 의미가 없다. 처음 지역구에 출마했던 1999년 12월 20일에 조직을 만들고 이듬해 4월 16일에 치러질 선거 준비를 했다. 경로당과 시장 등 지역을 두 바퀴 반 돌았다. 선거 보름 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인지도가 13%였다. 

상대 후보는 90%였고. 선거 일주일 전에 벽보를 붙이니 나를 직접 만나본 주민들이 사진을 보고 알아보고 선거 날에는 내게 투표를 해주셨다. 인지도는 낮아도 호감도 조사에서는 높은 점수가 나왔다.”

화려한 이력서를 자랑하는데 왜 인지도는 그리 낮은가.
“아마 너무 조용하게 정치활동을 해서가 아닐까. 스캔들도 없고, 국회 안에서 몸싸움을 한 것도 아니고….”

경기도지사에 도전하려면 새누리당 당내 경선이 우선인데 ‘박심’ 논란이 뜨겁다. 친박은 아니지 않은가.
“이번 선거에 박심은 작동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이길 후보가 누구인가이다. 계파 논리를 작동해서 후보를 정하진 않을 것이다. 또 새누리당 당원은 물론 유권자들이 정말 현명하기에 그분들을 믿는다.”

박근혜 정부 1년을 평가하면 몇 점을 주겠나.
“70점 이상을 주고 싶다. 특히 외교·안보분야에서는 굳건한 원칙을 바탕으로 잘 이끌어 오셨다. 다만 대내적으로는 여당이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청와대가 각종 문제를 능동적으로 풀어내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 

당 지도부가 청와대를 지원하는 방향을 잘못 설정한 것 같다. 여당이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야당의 파트너가 됐어야 했는데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 또 청와대 보좌진과 각료도 개개인의 면면은 훌륭하지만 전반적으로 정치력과 정무적 감각이 부족하다. 

최근 현오석 부총리의 개인정보 유출 관련 발언이 대표적이다. 정무수석의 역할이나 특임장관의 부재가 아쉽다. 모든 정권이 집권 첫 해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국정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번에는 예상치 못한 대선개입 문제로 국정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 내각도 ‘받아쓰기 내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소극·수동적으로 대통령 눈치보기에 급급했다.”

정 의원도 지난 정부에서 MB 정권의 가장 오점이라고 평가되는 4대강 사업, 종편 허용 등에 깊게 관여하지 않았나. 4대강의 경우 수자원공사에 23조원의 부채를 안겼고, 종편도 각 사가 1년에 수백억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
“둘 다 정말 오해가 많다. 객관적 시선과 평가가 필요하다. 우선 4대강의 경우, 그 지역 인근에서는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4대강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 사업을 환영하고 감사해 한다. 

우리 지역이 4대강 사업지다. 여주에 유례없는 집중폭우가 왔다. 만약 4대강을 하지 않았으면 여기는 다 침수가 됐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보통 조금만 비가 와도 4대강 사업 전에는 물이 들판에 차고 2~3일이 지나야 빠졌다. 

이번에는 비가 엄청 왔음에도 불구하고 2시간 지나니 다 빠졌단다. 장관 시절에 4대강 관련 인프라를 구축한 것을 관광·레저·체육 쪽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 해당 지자체장들과 MOU를 체결한 적이 있다. 

4대강 사업이 잘못됐다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이고, 문제가 있다면 덮을 이유가 없다. 문제가 있으면 개선을 해야 한다.”

종편은 어떤가.
“난 종편을 반대한 사람이다. 2004년 미디어법 개정을 하며 방송과 통신융합이 이뤄졌다. 혁명적으로 미디어 환경이 변화됐다. 종편 선정 당시에 지상파가 영향력이 너무 막강해졌다. 과거엔 방송에 칸막이가 있었다. 먼저 지역 칸막이가 있었다. KBS, MBC만 전국방송을 하고 SBS는 지역과 연계해 전국에 방송됐다. 

다음은 자본 칸막이로, 거대자본이 방송을 못하도록 했다. 신문과 방송을 함께 운영할 수 없는 매체 칸막이도 있었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으로 이런 칸막이들이 걷어지면서 신문사들이 운영하는 종편이 탄생했다. 난 종편을 하겠다는 언론사주들에게 종편 하면 망한다고 했다. 

이젠 방송도 채널이 아니라 콘텐츠를 보고 찾아가는 시대다. 가장 자신있는 분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런데 다들 비슷비슷한 프로그램만 만들지 않나. 법안 처리를 주도는 했지만 시대에 맞지 않는 사업이라고 생각했고, 추진 후 생기는 역기능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

30년 가까이 정치를 해온 걸로 아는데, 정치란 무엇인가.
“지금 정치가 실종됐다. 그건 내 주장만 내세우고 상대를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다. 각각을 조율하고 통합하고 조정해야 한다. 정치가 복원되려면 다름을 인정하는 문화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사업설명회처럼 열정적으로 말하는 정병국 의원의 경기도 3·0 플랜을 들으면 당장 경기도로 이사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당내 경선에, 민주당은 물론 새정치신당까지 갈 길이 첩첩산중이다. 인지도가 높지 않은 그에게 “국회에서 야동 보는 사진이 찍히면 금방 유명해진다”고 농담을 하기엔 그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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