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서는 ‘박주영은 꾸준한 출전과 공격포인트를 보여주지 못해 대표팀 복귀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축구계에서는 박주영 대표팀 재발탁론이 더 우세하다.
홍명보 감독(45)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오는 3월 6일 새벽 2시(한국시간) 그리스 아테네의 카라이스카키 스타디움에서 그리스와 평가전을 치른다.
홍 감독은 지난 2월 2일 미국과 평가전(0-2패)을 마친 뒤 “그리스전에 유럽파를 포함한 정예 멤버를 소집하겠다.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가장 좋은 선수들로 선발할 계획이다. 마지막 테스트다”라고 선언했다.
그리스전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표(5월 중순 예정)를 앞두고 치르는 마지막 A매치다. 이때 대표팀에 승선한 선수들이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 등 큰 변수가 없는 한 월드컵 무대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4년 전에도 2010년 3월 영국 런던에서 치른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 멤버 대부분이 본선에 입성했다. 최정예로 치르는 그리스전을 앞두고 최대 관심사는 박주영의 대표팀 복귀 여부다.
홍명보 감독은 국내파 위주로 대표팀을 꾸려 미국에서 세 차례 평가전을 치렀다. 1월 25일 코스타리카전(1-0승), 1월 29일 멕시코전(0-4패), 2월 2일 미국전(0-2패)을 가졌는데, 골 결정력 부족을 절감했다.
슈팅 35개에 단 1골. 장신 공격수 김신욱(26·울산)에게만 의존한 뻥축구로 실망만 안겼다. 때마침 박주영이 겨울 이적시장 마감날(2월 1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을 떠나 챔피언십(2부리그) 왓포드로 6개월 임대됐다.

2012년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축구대표팀으로 출전한 박주영이 일본과의 경기에서 선취골을 성공시키고 환호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박주영은 홍명보 감독이 지난해 6월 지휘봉을 잡은 뒤 대표팀에 단 한 차례도 발탁되지 못했다. “소속팀에서 뛰어야 대표팀에도 선발한다”는 홍 감독의 원칙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박주영은 2013~2014시즌 전반기 때 아스널 주전경쟁에서 완전히 밀렸다. 지난해 10월 컵대회에서 13분 동안 그라운드를 밟은 게 전부였다.
홍 감독은 언론을 통해 박주영에게 빨리 새 팀을 찾을 것을 강력하게 권고했다. 박주영은 겨울 이적시장 폐장 1시간을 남기고 극적으로 왓포드 임대를 택하며 ‘은사’ 홍 감독의 요청에 응답했다.
박주영 대표팀 복귀 기회 잡을까
박주영에게 홍 감독은 특별한 존재다. 박주영은 홍 감독이 이끄는 2010년 아시안게임 때 와일드카드(23세 초과 선수)로 뽑혀 사제의 연을 맺었다. 박주영은 준결승에서 패했지만 3~4위전에서 동메달을 딴 뒤 홍 감독 품에서 눈물을 흘렸다. 박주영은 “축구를 떠나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2012년 6월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박주영이 병역 면탈 의혹에 시달리자 기자회견에 동석해 “박주영이 군대를 가지 않으면 내가 대신 가겠다”며 방패막이가 돼줬다.
박주영은 런던 올림픽 동메달 획득을 이끌며 보은했다. 박주영 측근은 “박주영은 ‘은사’ 홍 감독에게 마지막으로 보답하기 위해 연봉 삭감도 감수하고 왓포드 임대를 택했다”고 전했다.
홍 감독은 김신욱 외 이렇다 할 원톱 자원이 없는 상황에서 박주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홍 감독은 박주영의 임대 확정 직후 “이제 동등하게 경쟁할 위치에 섰을 뿐”이라며 말을 아꼈다.
왓포드로 임대된 박주영은 3일 브라이튼전 후반 45분 교체투입돼 96일 만에 실전 경기를 소화했다. 하지만 9일 레스터시티전에는 경미한 무릎 부상으로 출전이 불발됐고, 12일 버밍엄시티전에는 교체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결장했다.

홍명보 감독이 독일과 네덜란드 출장을 마치고 14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 이석우 기자
일각에서는 “박주영은 꾸준한 출전과 공격포인트를 보여주지 못했다. 대표팀 복귀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축구계에서는 박주영 대표팀 재발탁론이 더 우세하다. 현역 시절 독일 분데스리가 간판급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떨친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61)은 “박주영이 아스널에서 경기에 거의 나오지 않았지만, 벤치 멤버로 꾸준히 이름을 올린 것만으로 실전감각에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유럽 클럽들은 리그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선수들의 경우 자체 연습경기나 친선경기 등을 통해 반드시 뛸 기회를 준다”며 “감독이 ‘준비가 됐다’고 판단하면 소속팀 주전 경쟁 여부와 상관 없이 선수를 과감히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올 초 영국 맨체스터에서 만난 이청용(26·볼턴) 역시 박주영의 대표팀 재발탁에 대한 의견을 묻자 한참을 생각하더니 “선수가 아무리 경기에 못나간다고 해도 클래스는 변하지 않는다.
주영이 형이 지금은 경기에 못나가고 있지만 능력과 경험은 무시 못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6개월이 남은 만큼 경기감각을 끌어올려 월드컵에서 같이 뛰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환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도 “현 대표팀에는 노장이 부족하다. 박지성(33·에인트호번)의 복귀 가능성마저 사라졌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2012년 런던올림픽 때 리더 역할을 한 박주영이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미국 전지훈련 중 염기훈(31·수원)과 이호(30·상무)에게 베테랑 역할을 바랐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멕시코·미국전에서 선제 실점한 뒤 앞장서 팀 전열을 가다듬지 못했다.
클래스는 변하지 않는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박주영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가 ‘아스널 벤치에서 앉아 축구 구경을 하며 연봉을 챙기는 관광객’에서 ‘원톱 부재를 해결해줄 적임자’로 바뀌었다.
미국에서 곧바로 유럽 출장을 떠난 홍 감독은 14일 귀국했다. 홍 감독은 독일 분데스리가 선수들을 만났고, 네덜란드에서 박지성도 만났다. 박지성의 대표팀 복귀는 없었던 얘기로 정리됐다.
지난해 9월 영국 출장에서 만나 확실한 뜻을 전한 박주영은 이번에는 만나지 않았다. 홍 감독은 박주영의 발탁 가능성에 대해 “박주영에 대한 생각은 미국 전지훈련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생각해봐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A매치 61경기에서 23골을 터트린 박주영은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골맛을 본 선수다. 해결사 DNA를 갖췄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나이지리아와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프리킥 결승골로 16강 진출을 이끌었고, 2012년 런던 올림픽 일본과 3~4위전에서 수비수 4명을 농락하는 ‘추풍낙엽슛’으로 결승골을 뽑아 동메달 획득을 이뤄냈다.
박주영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 한국 나이 서른넷이 된다. 어쩌면 생애 세 번째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브라질 월드컵이다. 박주영은 그리스전에 나설 수 있을까. 홍명보 감독의 결단만 남았다.
<박린 일간스포츠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