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폐지론이 일기도 했던 여성가족부의 위상이 달라졌다. 정부 부처 중 유일하게 1조원이 안 되는 5000억원의 예산과 적은 인원을 가진 부처지만 예산도 7% 올랐고 여성정책조정회의를 통해 각 부처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난해 10월에는 3명이 정원인 여성가족부 사무관 모집에 13명이 몰리기도 했다.
여성가족부의 부활에는 조윤선 장관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한 언론사 조사에서 조윤선 장관은 김관진 국방부 장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 두 번째로 일 잘한 장관으로 뽑혔다.
박근혜 대통령과 친분이 깊어 나타난 후광효과일까, 아니면 정말 이 정부의 가장 잘한 인사 중 하나일까.
조윤선 장관을 만나 그의 ‘장관 도전기 1년’을 들어봤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유리천장은 한 번 뚫려도 깨지지 않는 만년설”](https://img.khan.co.kr/newsmaker/1060/20140121_1060_A24a.jpg)
여성가족부 장관이 된 지 11개월, 거의 1년을 맞은 소회는 어떤가.
“변호사, 은행 부행장, 국회의원 등 다양한 경험을 했지만 공직생활은 처음이다. 여성정책 전문가도 아니어서 처음엔 두려움도 컸는데 막상 맡고 보니 정말 어마어마한 일을 하는 곳이다. 여성가족부의 원래 명칭은 ‘Ministry of Gender Equality & Family’. 즉 ‘양성평등가족부’다. 흔히 여성 권익을 위한 일만 하는 곳으로 알려졌지만 독신 남성 빼고는 전 국민이 모두 우리의 정책 대상이다. 1인 가구까지 감안하면 독신 남성도 소관일 수 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회문제인 범죄, 폭력, 학교폭력, 가출, 청소년 문제 이런 것들이 결국 가족에서 비롯되는 것이어서 우리 국가나 사회 전반을 살펴보고 공부하는 기회로 여기고 있다. 사람을 가장 강하게 만들 수도, 가장 약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 가정이니, 이 가정을 튼튼하게 만들어야겠다는 것이 신념이다.”
장관을 맡아 가장 중점을 둔 분야는 무엇인가.
“여성가족부가 중앙부처로 자리잡은 건 2001년이다. 정무 제2장관실에서 시작돼 대통령 직속위원회로 있다가 여성부가 생겼다. 처음에는 작은 부서였는데 보육업무, 가족업무, 청소년업무가 들어왔고 이후 여성, 가족, 청소년 이 세 가지 업무부서로 짜여지게 됐다. 현재는 일과 가정의 양립, 여성이 안전한 국가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
1월 7일 국무회의에서도 ‘여성정책 총괄·조정 기능 내실화 추진 결과 및 향후계획’을 보고하고, 성 격차 지수(GGI)를 발표하는 세계경제포럼(WEF)과 연계해 올 상반기 성 격차 해소를 위한 민·관 협의체를 구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성들이 직장에서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안심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국가를 만들어야 가정이 행복하고 국가경쟁력도 향상된다.”
장관이 특정 부처를 맡아 그 부처의 기능과 분위기가 변하기도 하지만, 어떤 부처에 부임해서 그 장관의 철학이나 인생관이 변하기도 한다. 조 장관은 어떤가.
“예전에 어렴풋이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여성가족부 장관을 맡으며 구체화되고, 어떤 모멘텀을 발견한 느낌이다. 베네수엘라의 국회의원, 변호사, 경제수석 등을 지낸 아브레올 박사는 자신의 모든 경험과 자원을 극빈층 아이들이 문화혜택을 통해 성장하는 데 쏟아부었다. 난 여성가족부가 특수복지부이자 평생교육부라고 생각한다.
성폭력 피해자, 게임중독 청소년,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이주여성 등 취약계층을 그대로 놔두면 그저 기초수급자가 될 뿐이다. 복지부와 고용부, 기획재정부를 연결해 이들 취약계층이 개별적 자활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자활생태계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여성가족부가 할 수 있다.
즉 전 부처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각 부처에서 맡은 일만 하면 늘 해오던 분야, 레드오션만 바라본다. 경력단절 여성에게 도자기 수업을 시켜도 누가 팔아주나. 바리스타 교육을 받아도 커피숍에 취업을 해야 한다. 여성가족부의 업무영역과 시스템을 1년간 조망하면서 이런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역량이 있음을 알게 됐다.”
조직 장악력과 업무 파악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도 있다.
“모든 공무원은 사명·소명의식이 남다른 분들이다. 내가 뛰어나서 조직 장악이 된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화두가 여성이어서 각 조직원의 소명의식에 불이 붙은 것 같다. 올해 국정과제 140개 가운데 14개가 우리 부처의 몫이다.
기대되는 과제가 늘어서 벅차고 예산과 인원이 너무 적어 힘들지만, 이런 결핍과 부족함에서 오는 절실함이 우리 직원들을 단결하게 하고 업무 몰입도를 높여서 그런 평판을 들은 것 같다. 나는 큰 선을 긋는 것만큼이나 작은 부분, 디테일한 것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현장에도 자주 가는데 서류를 보는 것보다 100배는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왜 문화전문가인 조 장관을 여성가족부 장관에 임명했을까.
“대통령께서 장관직을 제안하며 ‘나와 오래 생활하면서 내가 여성정책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죠. 일하면서 아이를 키운 워킹맘의 경험으로 정말 도움이 되는 여성정책을 개발하고 일해주세요’라고 했다.
이번에도 국무회의에서 ‘아무리 강한 무쇠로 만든 문고리도 잡아당기면 정작 가장 약한 곳부터 떨어져 나간다’며 그 약한 부분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내가 일하는 엄마이고.”
좀 뜬금없는 질문인데, 물리적·심리적으로 박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인데 박 대통령이 불통이라는 지적이 많다.
“박 대통령은 전혀 불통이 아니다. 내가 정말 사소한 질문을 해도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나’는 말을 하지 않고 일일이 설명해준다. 무엇보다 무슨 이야기든 들어주는 경청력도 뛰어나다.
대통령 선거 기간 중에 내가 파란색 옷을 입고 무채색 옷을 입은 후보와 언론사 행사에 참석했는데 한 기자가 ‘왜 대변인이 혼자 튀는 옷을 입었냐’고 지적했다. 당시 후보는 ‘보기 좋은데요’라고 웃으며 나를 감싸주셨다.”
대통령이 여성이라는 것이 국민들에게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가진 적이 있다. 그걸 지켜보다가 문득 ‘만약 저 분이 대통령이 되면 많은 남성들이 여성 대통령과 소통하고 잘 보이는 법을 연구하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기업의 사장이 여자이고, 단체장이 여자라면 얼마나 많은 남성들의 의식과 태도가 달라질까’라고. 반드시 저 분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기며 가슴이 마구 뛰었다.
여성 대통령 하나가 각 분야에서 여성들을 둘러싼 벽을 허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성들이 여성과 더불어 잘 지내고 서로를 이해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 가정에서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고, 기업에서 여성 취업을 확대하는 것 등에도 다 영향을 미치리라고 기대한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유리천장은 한 번 뚫려도 깨지지 않는 만년설”](https://img.khan.co.kr/newsmaker/1060/20140121_1060_A26a.jpg)
우리나라 성 격차 지수가 111위라고 하는데, 여성 대통령을 배출한 나라에서 좀 부끄러운 것 아닌가. 이런 격차를 줄이기 위해 어떤 계획이 있나.
“성 격차 지수를 발표하는 세계경제포럼과 연계해 올 상반기 성 격차 해소를 위한 민·관 협의체를 구성할 계획이다. 일단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분야는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과 경제활동이다.
정치적 대표성은 국회나 정당의 몫이고 경제활동은 동일 직장·동일 업무에서 동일 임금을 받는가를 따지는데,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없어 지수가 더욱 낮게 측정된다.
통계청에 의뢰해 2015년부터 제대로 된 통계가 나오면 지수가 올라갈 것으로 기대한다. 세계경제포럼이나 IMF의 총재, OECD 사무총장 등을 직접 만나 우리나라 여성정책 현실을 제대로 전달하고, 한국이 발전하고 있지만 계속 깊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신년사에 보니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부분이 있다. 여성가족부 장관의 신년사에 이 문제가 거론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지난 청문회 때 위안부 할머니들 시설에도 가보지 않고 수요집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야단을 많이 맞았다. 위안부 문제는 과거 국무총리실, 보건복지부 등 담당부처도 많이 바뀌었지만 지난해 두 분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자제분이 ‘어머니는 일본 정치인들이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하는 발언에 너무 상심해 거의 식음을 전폐하다 죽음에 이르렀다’고 했다.
현재 생존한 51분의 할머니들 평균연령도 88세다. 시간이 너무 없다. 장례식에 다녀온 날 위안부 리포트를 밤새 읽었다. 현재도 시리아, 이라크 등에서 전쟁 성폭력 피해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안 일어나려면 과거사를 올바르게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난 가을부터 차례차례 만나고 있다.
지방에 출장갈 일이 있을 때마다 전국에 흩어져 사시는 51명의 할머니를 만나고 있다. 현재 28분을 만났다. 그 분들이 원하는 것은 명예회복이다. 그 분들과 관련된 기록을 다 정리해 국가기록원까지 참여시켜 과거 구술 녹취록이나 영상물들을 유네스코에 기록유산으로 신청할 계획이다. 이렇게 국제적으로 이슈가 되어야 그 할머니들의 명예회복이 되고, 앞으로 전시 성폭력 피해자도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흔히 말하는 모든 스펙을 다 가진 엄친딸인데, 그래도 대한민국의 워킹맘으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많이 떨어져도 봤고, 어려운 점도 많았다. 특히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첫 번째 여자 변호사였는데, 여자 변호사 뽑았더니 애 키우느라고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거나 능력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안 들으려고 치열하게 일했다.
남성 중심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술자리에도 참여하고 그게 참 당 대변인을 할 때도, 지난 대선 때 후보를 수행할 때도 3~4시간 자고 일을 해야 해서 가정살림도 잘 못하고 아이들과의 시간도 많이 가지지 못했다. 그래도 항상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어. 잘할 수 있어’라고 세뇌를 하고 주문을 걸었다.”
변호사나 정치인 생활을 하며 한 번도 그만두고 싶은 적은 없었나.
“마음속으로는 수시로 사표도 쓰고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경력단절을 하면 후회될 것 같아 버티고 버텼다. 아무리 여성 대통령에, 각 분야의 여성 1호가 나와도 여성들에게는 유리천장이 존재한다. 그런데 유리천장은 한 번 뚫으면 깨지는 것이 아니라 만년설이다.
산기슭에는 봄이 왔지만 산 정상에는 아직 만년설이다. 만년설을 녹이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깔고 앉아 녹이는 수밖에 없다. 정부와 기업에서 여성들을 위한 정책과 제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성들도 각자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어려운 일을 이겨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성에게 미움받지 않는 여성리더가 되는 법은 뭘까.
“얼마 전 친정어머니가 붓글씨로 ‘무사시귀인 단막조작’(無事是貴人 但莫造作)이란 글을 써주셨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있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고, 절대 억지로 조작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가장 편하게 상대를 대하면 내 능력도 잘 발휘되는 것 같다. 여성이라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고, 여성의 장점을 살리면서 남성과 여성을 모두 편하게 대하면 그들도 나를 리더로 존중해준다.”
조윤선 장관은 조그만 메모지 한 장 없이 각종 숫자와 사람 이름을 열거하며 인터뷰에 성실히 응했다. 그의 성공이 스펙이나 미모 덕분만은 아닌 것 같아 질투심을 접었다.
<글 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