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보위 야당 간사 정청래 민주당 의원
북한이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최근 김정은은 군부대를 시찰해 “전쟁은 언제한다고 광고를 내지 않는다”며 항상 전쟁에 대비할 것을 지시했다. 고모부를 처형한 다음날도 말간 얼굴에 미소지으며 공식 행사에 나타난 서른살의 지도자가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불안하기 만하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을 만난 것은 그가 국회 정보위원회 야당 간사로 지난 장성택 숙청 사실을 알린 인물이기도 하고,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에서 북한통일정책학 석사 출신이어서 북한에 관한 정보나 직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또 요즘 보기 드문 저격수 정치인으로 대통령과 청와대, 새누리당은 물론 조경태 의원 등 내무반(?)도 수시로 저격을 하는데 그토록 끊임없이 저격을 하는 원동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도 궁금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한국경제 활로 남북관계에 달려”](https://img.khan.co.kr/newsmaker/1058/20140107_1058_A50a.jpg)
지난번 북한 장성택 숙청 사건을 발표해 좀 의아했다. 일부에서는 국정원 개혁의 선두격인 정 의원이 알고보니 국정원 에이전트란 말도 하더라.
“국회 정보위원회 야당 간사 신분으로 발표했다. 여당 간사에게도 국정원에서 정보를 주었는데 기자들에게 알려지는 과정에서 내가 먼저 기자회견을 했을 뿐이다. 국회 정보위원회가 생긴 이래 가장 주목을 받은 것 같다. 정보는 민감성 피부와 같이 정말 예민한 문제다.
최고의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북한 정보를 아느냐 모르느냐도 정보이고, 어떻게 알았느냐도 정보이고 언제 써먹는가도 정보다. 알고 있는 정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정보를 국익적 차원에서 어떻게 활용할지가 중요하다. 국정원의 정보를 정치적으로 악용해서는 절대 안 된다.”
이번에 국정원 예산 삭감에 앞장섰던데….
“국정원의 예산 총액을 삭감한 것이 아니라 댓글 공작 등 제기능을 다하지 않고 정치개입을 한 2차장 산하 예산을 삭감했다. 북한 관련이나 대외 정보업무를 하는 부처는 삭감하지 않았다. 국정원이 댓글공작 등 잘못했으니 질타하는 것일 뿐 남북 대치상황 하에서의 국가안보, 우리 산업 지키기 등 국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직이다. 나는 국정원 개혁론자이지 국정원 폐지론자는 아니다. ”
북한통일정책 석사다. 학부에서는 산업공학을 전공했는데 왜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나.
“학생운동으로 반미시위에 나서 감옥살이를 했다. 감옥 동기가 문규현 신부다. 감옥에서 공부하고 자기성찰을 하며 무슨 일을 하건 통일에 기여하는 삶을 살자고 다짐했다. 아들이 셋인데 큰아들이 한백(한라에서 백두까지), 둘째가 한결, 셋째가 한솔로 모두 조국통일을 염원하며 이름지었다.
대학원의 지도교수인 김영수 교수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방송에 해설위원을 맡아 ‘김정일이 순안공항에 직접 영접을 나올 것’이라고 세계 최초로 예측을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공부를 많이 한 덕이란다. 즉 공항에 융단이 깔렸는데 모란문양이었고, 그 문양은 김정일만 밟을 수 있는 것이어서 그런 예측을 했다는 것이다. 그 교수 밑에서 열심히 공부해 수석 졸업했다.”
그럼 현 북한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나.
“국정원이 밝히고 있듯 김정은 1인 지배가 공고화되는 과정이다. 내부갈등으로 흔들릴 위험은 약해졌다고 본다. 그것이 갖고 있는 정치적 속성과 대한민국이 조화롭게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김정은 체제가 무너진다, 만다는 논란은 소모적이다. 북한문제는 맥락과 함의를 잘 파악해야 한다. 북한은 아직도 김일성의 정신과 유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일성의 유언은 한반도 비핵화, 항구적 평화 유지, 대륙철도 설치 등이다.
핵폐기는 북한의 ‘함의’다. 북한과 미국이 정상회담을 통한 수교를 하고, 그 후 북한과 일본이 정상 수교를 하고, 미국은 북한 체제를 인정하고 보장하며 일본은 전쟁보상금 110억 달러를 북한에 주고, 남북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며 상호불가침 선언을 하는 것이다.
그 기반 아래 남북철도가 만들어지고 상호 신뢰에 의거해 점차 군비를 축소하는 것이다. 2005년에 당시 통일부 장관이던 정동영 민주당 고문이 김정일을 만나 철도 이야기를 꺼내자 ‘혁명의 수도 평양을 지나려면 그에 따른 응당한 대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맥락을 잘 파악해야 한다.”
경색된 남북관계의 해법이 있을까.
“김대중 대통령은 천추의 한이 미국과 한국 정부의 엇갈린 정권교체라고 했다. 2000년 10월에 미국 울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에 가서 김정일과 면담하며 클린턴과의 정상회담 사전작업을 했다. 클린턴과 김정일이 만나서 북한 핵폐기, 북한체제 인정 등을 일괄타결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민주당 앨 고어가 대선에 지고 클린턴과 180도 다른 부시가 등장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해 북·미관계가 냉각됐다. 다시 민주당의 오바마, 즉 클린턴 2기가 시작되었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 이명박 정권이 등장해 엇박자가 났다. 시대의 어긋난 운명이다.
만약 시나리오대로 실현되었다면 지금쯤 개성 외에 공단이나 경제단지가 늘어나고, 상호 왕래나 관광이 가능해졌을 것이다. 또 남북철도가 연결되면 부산에서 출발해 14일이면 런던이나 파리에 도착한다. 배로는 40일이 걸린다. 26일간의 경쟁력으로 자원도 절감하고 상품값도 내려간다. 무엇보다 이렇게 남과 북의 평화공존이 이뤄지면 양국의 국방비를 복지재원으로 돌릴 수 있다.
스웨덴이나 북유럽이 복지국가인 것은 세금이 높아서이기도 하지만 국방비가 적어 그 세금을 복지혜택으로 돌린 덕이다. 미국은 150만명의 군인으로 세계를 호령하는데 우리나라는 더 많은 군대로도 북한 경계에 쏠려 있다. 이제라도 대통령이 빨리 김정은을 만나야 한다. 한국 경제를 살릴 방안도 남북관계에 달려 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한국경제 활로 남북관계에 달려”](https://img.khan.co.kr/newsmaker/1058/20140107_1058_A52a.jpg)
홍준표 경남지사가 사라진 국회에 대표적인 저격수로 맹활약 중이다. 그런데 같은 당인 조경태·신경민 의원 등에게는 왜 그렇게 트위터나 말로 사격을 하나.
“국회의원은 두 가지 신분이 있다. 하나는 공직으로서 국민을 대표하는 것이고, 다른 신분은 나를 공천해주고 의원이 되게 한 당 조직원이다. 보다 우선의 역할은 국민의 대표라고 생각한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특검 요구를 한 것은 민주당 당원이자 국민의 입장을 모두 대변하는 일이다.
민주주의 근간을 뿌리째 흔든 국정원을 바로잡자고 계속 투쟁했고 최종 결론이 특검이다. 그런 것을 반대하는 이들에 대해 참고 참다가 한마디 했을 뿐이다.
또 당내에서도 내가 종편에 안 나가니까 ‘평양에는 잘도 가면서 종편에는 왜 안 나가냐’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또 한마디 한 것이다. 나도 괴롭다. 저격수란 명칭은 나의 이미지나 정치적 입장에서도 손해다. 내가 손해인 것을 알지만 나의 자체겸열이 용납하지 않는다.”
종편에는 왜 안 나가나. 민주당에서도 당론으로 의원의 자유선택에 맡기지 않았나.
“나의 자유의지다. 지난 국회 4대 개혁입법 때 핵심사항이 신문과 방송의 겸업 금지였다. 유럽의 신문도 방송 겸업을 하는 곳이 있지만 한 개 신문이 구독률이 20%가 넘으면 안 되는 한계선을 그어 신문의 독과점을 막고 있다.
그런데 조중동은 80% 가까운 독과점을 하며 종편까지 만들어 여론을 편향화하고 있다. MB 정권은 미디어악법을 날치기 통과시켜 내가 발의한 법안을 쓰레기로 만들어 버렸다. 대표발의한 의원으로 종편에 나가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
편향된 보수 이념을 강조하는 종편에 나가서 그들을 압도적으로 설득하면 되지 않나.
“물론 주변에서 촌철살인, 기절광풍의 발언을 해서 그들을 박살내달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특별대우해주겠다 등의 유혹을 하는 종편사도 많다. 하지만 왜곡 편파를 일삼는 종편의 병풍이 되고 싶지 않다. 정치인은 자신의 부고 기사만 빼고는 매스컴에 나오는 것이 유리하다고 하지만, 조중동 종편 덕분에 얻은 표로는 다음 선거에서 당선되고 싶지 않다.”
요즘 민주당은 위기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것 같다. 태어나지도 않은 안철수 신당보다 지지율이 3분의 1이다.
“민주당의 자업자득이다. 안철수 신당 지지자들은 민주당이 미워서 등돌린 사람들이다. 민주당이 잘못해서 국민들이 민주당을 벌주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잘 하면 돌아올 것이다. 민주장은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패기 부족으로 기회를 놓쳤다.
첫 번째는 국정원 댓글이 진실로 밝혀졌을 때, 두 번째는 채동욱·윤석열 파문 때, 세번째는 군 사이버 사령부의 대선 댓글 개입 때인데 너무 미온적이었다. 여전히 민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기대하는 것도 새누리당과 싸워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인데, 과연 싸울 의지조차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한다.”
다시 민주당이 회복할 수 있을까.
“애티튜드, 즉 태도가 중요하다. 팩트도 중요하지만 의도와 태도도 중요하다. 그런데 현재는 그 애티튜드에 낙제점을 받고 있다. 내부고발자의 심정으로 이야기하자면 현 민주당 지도부는 아직도 과거 여당의 티를 못벗어났다. 야당은 정책적 대안 제시가 중요하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제대로 된 반대는 해야 한다. 2012년 예결특위 때 전국 경로당 난방비가 전액 삭감됐다. 내가 이럴 수 있냐고 지적하니까 여당에서도 580억원 배정에 동의했다.
불효정당으로 욕먹는 것은 두려웠던 모양이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자 다시 삭감됐다. 이런 것에 제대로 반대해야 한다. 국회의원을 하다보면 억울한 일도 많지만 국민들은 더 억울한 일이 많다. 그래도 우리는 국민들 세금 덕분에 먹고 살지 않나. 국정원 국조특위 끝나고 민주당 의원 127명 전원이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적어도 열흘간 단식이라도 하는 결기를 보여야 했다. 투박하더라도 국민들에게 진심이 전달될 수 있는 가시적 몸짓을 해야 한다. ”
그건 자칫 쇼처럼 보일 수 있다. 보다 진정성 있는 민주당의 개혁안은 없나.
“하나를 꺼내면 얽힌 실타래가 풀리는 중심고리가 있다. 먼저 공천제도 개선이다. 밀실공천, 계파공천의 의혹을 벗어나려면 미리 공천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현역 의원과 원외 지역위원장들에게 1000개 항목으로 평가를 하게 해서 상위 30%는 정상 공천, 하위 30%는 탈락, 나머지는 경선을 하는 것이다.
문화적 개혁도 필요하다. 우리당은 칭찬과 박수가 인색하다. 누가 잘하면 바로 수군수군거린다. 이제라도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모범적이고 칭찬받을 일을 한 의원들에게는 연예대상 주듯 분야별로 상을 줘야 한다.
지난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때 내가 ‘나쁜 투표, 착한 거부’란 슬로건을 제안해 당시 손학규 대표로부터 1급 포상을 받았다. 그런데 그게 공천 때는 휴지조각이 된다. 공천심사 때 내가 진보개혁성에서 낙제점을 받아 경선에도 떨어질 뻔했다. 이런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면 당도 개혁된다.”
매사 적극적이고 화려한 언변 등 정치를 안 해도 잘 살 것 같은데 왜 정치를 하나.
“학생운동으로 1991년 목포 교도소에 수감되었을 당시 강경대 열사 사건, 전남대 편집장 분신 사건 등 참 엄혹한 상황이었다. 김지하 시인이 <저주의 굿판을 치워라>라며 변절하는 모습을 보고 1.04평의 감방에서 참 많이 울었다. 한 여성이 강간당했다 치자. 그게 내 애인이나 여동생, 나와 1차 관계라면 가만히 있겠나. 범인을 찾고 법에 호소하고 응징하려 한다.
그런데 친구 동생의 일이라면 참 안됐다, 우리 사회가 왜 이럴까 답답해 한다. 친구의 친구의 여동생이거나 한동네 일이면 사회병리현상에 대한 논문을 쓸까 정도를 생각하고, 어디서 소문을 들었으면 그 여자도 잘못했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때 조국과 민족이 나와 1차 관계자인 삶을 살자. 절대 강건너 불보듯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네 발자국이면 끝나는 그 좁은 감방에서 신체적 자유는 억압당했지만 정신적으로는 무한한 자유를 느끼고 시간과 공간적 개념이 무한대로 확장되는 체험을 했다. 무한한 우주에서 미미한 존재인 내가 개인의 행복만 추구하는 것은 또 얼마나 미미한 일인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힘을 합치면 역사에 벽돌 하나는 쌓겠다는 생각에 정치를 시작했다. 그 전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학원사업을 해서 학생 8명으로 시작해 10년 만에 1500명 규모로 키우고 몸만 빠져 나왔다.”
정치 입문을 후회한 적은 없나.
“나와 같이 학원사업을 했던 이들이 현재 수백억원대의 부자가 되었을 때 사실 약간 배가 아프긴 하다. 내 재산 신고액은 5억원 정도다. 아이들이 커가니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은 사명감과 보람이 크다.
19대 들어와서 79개 입법을 발의했다. 일주일에 1개씩인 셈이다. 본희의 출석률 100%이고, 투표율은 화장실 가느라 한 번 못한 것 빼고는 99%다. 주변에서 진정성 있는 정치인이라고 평가받을 때 가장 기쁘다. 더 겸손하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
정청래 의원은 국회에서 열심히 뛰고, 그와 같은 지역구 라이벌인 강용석 전 의원은 종편을 누비며 열심히 뛴다. 정 의원은 갈수록 목소리가 커지고, 강 전 의원의 이미지는 더욱 부드러워진다. 누가 더 똑똑한 걸까….
<글 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