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복 디자이너 우영미 “옷 골라 입을 권리 남성들에게 돌려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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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댓글, 장성택 숙청으로 온나라가 들썩거려도, 경기가 불황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매일 옷을 입고 밥을 먹고 잠을 잔다.

특히 요즘같이 송년회나 각종 모임이 많을 때는 넥타이 하나에도 신경을 쓰고 큰 맘 먹고 옷을 구입한다.

남성복 패션디자이너 우영미씨는 자신의 이름보다 화려한 고객으로 더 유명하다. 이병헌, 강동원, 슈퍼주니어의 최시원 등 한류스타들은 물론 요즘 방영되는 드라마 <상속자>의 이민호와 김우빈이 그의 옷을 입은 덕분이다. 스타는 아니지만 재벌 회장이나 언론사 대표, 교수 가운데도 그의 단골이 많다. 롯데백화점의 자료에 따르면 중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구입하는 남성복이 우영미의 ‘솔리드옴므’란 브랜드다.

30년 동안 남성복을 만들고 국내 최초로 파리의상협동조합 정회원이기도 한 그를 만나 옷을 제대로 입는 법, 한류패션의 미래, 무엇보다 한국에는 왜 멋쟁이가 드문지를 물어봤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남성복 디자이너 우영미 “옷 골라 입을 권리 남성들에게 돌려줘야”

<상속자>의 이민호, 김우빈은 20대다. 50대 중반의 여성이 젊은 남성들을 위한 옷을 만드는데 어려움은 없나.
“내가 여성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 여성으로서의 나는 분명히 나이 들고, 취향도 바뀌고, 건망증도 늘어난다. 하지만 나는 내가 입을 옷이 아니라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남자를 그리며 그를 위한 옷을 만든다.

트렌드는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지금쯤 내 남자는 이런 옷을 입으면 멋지겠다, 오늘은 이 남자에게 이런 옷을 연출시키고 싶다란 생각을 하며 만든다. 내 마음속의 남자는 영원히 나이 들지 않는 존재다. 그래서 내가 여성이라는 것은 한계가 아니라 장점이다. 여자의 관점으로 보면 훨씬 미묘한 디테일을 잘 살릴 수 있고, 남자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남성미를 잘 표현할 수 있다. 덕분에 이민호씨가 입은 옷은 완판되어 계속 재생산 중이다.”

이상형도 자주 바뀌지 않는가. 한때는 식물성 남성이 좋다가 나이 들면 느끼한 동물성으로 변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이상적인 남성은 그리스·로마 시대의 흉상에 나타난 남성이다. 다비드 상 등을 보면 남성의 오브제가 훨씬 근사하다. 여성은 가슴과 엉덩이의 볼륨감이 강조될 뿐이지만 남성의 몸은 팔과 다리 등의 잔 근육 등 훨씬 움직임이 섬세하다. 그리고 당시 그리스 남성들은 연륜과 덕망이 높은 나이 든 남성들로부터 진정한 남성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배워 얼굴에도 성숙함이 엿보인다. 몸만이 아니라 예술을 이해하고 다양한 취미로 자신을 성장시키는 남성이 이상형이다.”

톱스타들이나 멋쟁이들이 우영미의 옷에 열광하는 이유는 뭔가. 개인적인 친분을 나누지도 않는데.
“내 옷이 겉으론 부드럽지만 입으면 너무 약해보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멋을 낼 수 있어서가 아닐까. 최시원씨 같은 경우엔 한국 디자이너의 옷을 입어줘야 한다는 일종의 애국심도 작용하는 것 같다.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가 많은데 그들이 자신이 입은 옷의 브랜드를 물어봤을 때 자랑스럽게 한국 디자이너의 제품이라고 한다더라. 50대 이상의 중년 남성들도 정통 신사복이 아니면서도 너무 캐주얼하지도 않아 젊어 보이기 때문에 구매한다고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은 누구인가.
“나는 내 디자인실이나 지하에 있는 작업실에만 박혀 있어 계절이 바뀌는지도 모르고, 누가 내 옷을 구매하고 입는지도 모른다. 단골과 식사를 하는 경우도 전혀 없다.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의상협찬을 의뢰해 와도 직원들이 처리한다. 다만 초창기 때 만났던 가수 이승철씨는 기억에 남는다.

비주얼에 정말 많은 노력을 하는 이승철씨는 정말 타고난 연예인의 끼가 넘치는 친구였다. 지금은 중년가수로 매우 점잖아졌지만 20대 당시에는 ‘선생님이 치마를 만들어줘도 입겠어요. 일단 튀어야 하니까요. 내 앞에 다 꼬리 내리게 해줄 옷을 만들어 주세요’라고 주문했다. 박찬욱 영화감독도 감독 치고는 옷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 기억에 남는다. 얼마 전 행사 때 만났는데 당시 입은 옷도 솔리드옴므라고 말해줘 기뻤다.”

남성복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인가.
“건축가셨던 아버지다. 얼마 전 돌아가셨는데, 아버지 옷장은 내겐 재미있는 상자 같은 것이었다. 아버지는 옷에 목숨 걸고, 스타일에 목숨 걸고, 가산을 탕진해서라도 옷을 사는 그런 분이었다. 기억나는 아버지의 옷으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황야의 무법자>에서나 입었을 것 같은 가죽 더블 코트를 비롯해서 스웨이드 사파리 재킷, 니트 넥타이, 자카드 스웨터…. 난 당시 남자들은 다 그렇게 입는 줄 알았다. 구두가 닳으면 뒤축을 잘라서 남성용 슬리퍼를 만들어 신기도 하셨다. 옷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도 남다르셨다. 아침에 일어나면 로브가운을 입고 흔들의자에 앉아 파이프를 피우시며, 드립 커피를 내리는 게 아버지의 아침 첫 일과였다.”

한국 남성들의 옷차림에 대한 평가가 궁금하다.
“요즘 패션에 관심이 높아져 여성복보다 남성복이 더 발전하고 있다. 다만 아직도 안타까운 것은 세련되고 자연스럽게 옷을 입는 남성들이 드물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절대 한국 남성들의 몸매가 나쁘거나 얼굴이 못생겨서가 아니다. 자신에게 잘 어울리고,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고 입어볼 기회와 권리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어머니가, 결혼하고서는 아내가 골라준 옷을 그저 받아 입다 보니 자기 몸의 장단점을 파악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지도 못한다. 새벽부터 밤늦도록 열심히 일한 월급을 고스란히 아내에게 바치는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적어도 옷 몇 벌만이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골라 입을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값비싼 명품이 아니라 세일코너의 옷이라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으면 멋쟁이가 된다. 돈과 시간과 감각을 투자한 내공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옷을 고르고 입을 권리를 박탈당한 한국 남성이 참 불쌍하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남성복 디자이너 우영미 “옷 골라 입을 권리 남성들에게 돌려줘야”

남성들이 옷을 입을 때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무엇인가.
“실수도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예전엔 신사복 정장에 운동할 때나 신는 흰양말을 신거나 벨트 대신에 사용하는 멜빵을 하고 또 벨트를 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과하게 차려 입는 실수를 한다. 넥타이의 경우 보석 장식이 달린 것은 절대 피해야 하고, 와이셔츠 손목 부분에 자신의 이름 이니셜을 새기는 것도 너무 과시적으로 보이는 경우다.

요즘 방송에 출연하는 남성들이 모두 파티에라도 온듯 나비넥타이를 많이 착용하는데 그것도 과해 보인다. 진정한 고수는 자기 자신의 몸과 취향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 남성들의 패션은 아마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것 같다. 언제부터 이렇게 감성이 깊어지고 커졌을까 싶을 정도로, 감도 면에서도 놀랍게 발전했다. 오히려 패션 디자이너들이 그 속도감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자괴심이 들 정도다.”

현재 한국 디자이너로는 유일하게 10년째 파리 콜렉션에 참가하고 있다.
“2002년에 처음 참가했다. 43세에 신인 디자이너 자격으로 패션 본고장에 도전했다. 한국에서는 솔리드옴므란 브랜드가 제법 유명했지만 파리에서, 그것도 한국 이름 우영미란 브랜드로 승부를 하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런데 현지의 패션 평론가들이 ‘신인이라더니 신인의 옷이 아니다. 당장 뛰어들어라’란 호평을 해줬다.

그래서 매출액이 100억원 겨우 넘기던 시절에 20억원을 들여 프랑스 파리에 단독 매장을 열었다. 자칫 파리 매장이 잘못되면 한국 본사마저 위태로울 수 있었던 위험천만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꿈’이라는 한 가지 목표가 있었고 파리 매장 인지도를 바탕으로 결국 파리의상조합 정회원이 되었다. 때론 자로 잰 듯 정확한 계산을 하며 사는 것보다 꿈꾸며 무모하게 덤벼드는 용기도 필요하다.”

한국인 최초 프랑스 패션조합 정회원이 되었다. 어떤 의미인가.
“2011년에 정회원 자격증을 얻었다. 파리 패션위크 기간 중에 콜렉션을 보여주기 위해서 반드시 이 자격이 주어져야 하며, 패션의 본고장인 파리에서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이 자격을 부여받은 것은 개인적으로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한다. 또한 매 시즌 파리 패션쇼를 통해 세계 유수의 브랜드인 디올, 발렌시아가, 겐조, 프라다, 그리고 라프시몬 등의 유명 디자이너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경쟁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자긍심이다.

정회원이 되면 파리 패션 콜렉션 기간 중에 좋은 시간대에 쇼를 할 수 있는 권리도 주어진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도 바이어나 패션 관계자들이 와주지 않으면 허망한데, 주요 시간대에 하면 언론에도 더 많이 소개되고 해외 바이어들의 구매도 늘어난다. 한국의 디자이너로서 한국의 후배들에게 세계를 무대로 그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열어주는 것도 사명감으로 생각하고 있다.”

현재 국내의 솔리드옴므와 우영미(WOOYOUNGMI)는 매장 규모가 어떤가.
“솔리드옴므의 경우 국내 19개 백화점에 입점이 되어 있고, WOOYOUNGMI의 경우 전 세계 34개 백화점 및 편집 매장에 입점되어 있다. 내년에는 영국 헤롯백화점을 비롯해 주요

백화점에 입점한다. 세빌로 등 정통 신사복의 종주국, 그것도 매우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하는 영국 고급 백화점에서 옷을 팔게 되어 정말 감격스럽다. 현재 일본, 홍콩 등에도 수출하지만 2014년엔 중국 시장도 적극 공략할 계획이다. 중국의 GQ, 에스콰이어 등 남성 패션 전문지에서는 매달 우영미 브랜드의 옷이 패션화보로 나온다.

광고를 하는 것도, 특별한 마케팅 전략을 가진 것도 없고 디자이너 역시 숨어 있는데 패션 전문 기자들의 공감 덕분에 자주 매스컴에 노출되는 것 같다. 나는 몇 년 전에 만든 옷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중국 패션지 편집장을 만났더니 ‘선생님의 2007년 작품인 이런저런 옷은…’이라며 콜렉션 전체를 꿰고 있어 놀랐다. 조금이라도 한류패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면 기쁘겠다.”

아무리 수백억대의 매출을 올리고 세계무대에서 알려졌어도 패션업계에도 대기업의 횡포가 있지 않나.
“제일 힘든 부분이 그것이다. 대기업은 그동안 국산 브랜드를 만들고 국내 디자이너를 양성하기보다 손쉽게 해외 브랜드를 수입·판매해 왔다. 디자이너들이 모인 디자인하우스란 개념이 없고 그저 외국 옷을 골라오는 MD만 있다. 그런데 최근 대기업이 국내 브랜드를 만들면서 우리 같은 중소 패션회사들이 힘들게 노력해 키운 디자이너들을 팀 전체로 데려가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이라면 전세계를 상대로 하는 글로벌 패션 비즈니스에 주력해야 하고, 수많은 국내 의상학과 출신 신입사원들을 공개 채용해서 그들을 육성해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키워야 한다. 막강한 자금과 세계 네트워크가 있는 대기업이면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인턴사원부터 시작해 단추달기부터 패턴과 디자인까지 수년 동안 수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키운 인력을 ‘대기업 사원을 만들어주마’라고 데려가면 중소기업은 휘청거린다. 덕분에 ‘디자이너 사관학교’라는 명칭은 얻었지만 너무 억울하고 답답할 때가 많다. 또 데려간 디자이너를 잘 성공시키면 좋은데 결국 오래 못가서 더 안타깝다.”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
“일단 내년은 본격적인 해외시장 진출을 계획 중이다. 그동안 솔리드옴므와 우영미란 두 브랜드로 매장과 쇼를 운영해 왔는데 두 브랜드의 시너지 효과를 내고, 세계적인 예술가들과의 협업도 추진 중이다. 솔직히 남성복 이외엔 아무 관심도 없어서 다른 꿈도 없다. 다만 한국 남성들의 패션 발전을 위해서 기회가 된다면 한국 군복을 디자인해보고 싶다.

2차대전 때의 트렌치코트, 공군 점퍼, 야상이라고 불리는 카키점퍼, 더플코트 등은 모두 군복에서 비롯된 남성 패션 아이템들이다. 가장 젊고 패션에도 감각이 발달한 20대 청춘남성들이 너무 지루하고 획일적인 옷만 입는 것도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말 세련되고 멋지면서도 군복으로서의 기능성을 최적화한 군복을 만들어보고 싶다. 혹시 아는가. 멋진 군복에 대한 로망으로 군에 입대하려는 남성들이 늘어날지….”

‘숨겨진 디자이너’란 평을 들으며 매스컴 노출을 꺼리는 우영미씨는 그 묵묵한 우직함으로 세계 남성복 시장에 우뚝 섰다. 패션에 관련한 정부 기관의 협조도 바라지 않고 대기업의 도움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일하는 중소기업에 그들이 딴죽만 걸지 않기를 바랐다. 수시로 징징거리는 일부 남성들보다 더 통이 큰 여성이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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