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지상주의 사회의 담담한 고백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신간 탐색]외모 지상주의 사회의 담담한 고백

<뚱뚱해서 죄송합니까?> 
한국여성민우회 지음·후마니타스·1만3000원

‘용모 단정’ ‘원조 얼짱’ ‘착한 몸매’를 원하는 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온 여성 24인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현대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외모 조건으로 인해 다양한 외모 관리를 실천해본 경험을 가진 다양한 몸의 여성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과연 무엇 때문에 성형이나 다이어트를 결심하게 되었을까.

이 책은 외모 지상주의 사회의 당사자이자 피해자로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고백을 통해,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온 미디어와 의료산업, 의류업계의 행태와 같은 사회구조적 측면들과 일상에서 우리 모두가 무심코 실천하는 몸과 외모에 대해 지적하는 문화를 돌아보고, 그것이 한 개인에게 남기는 다양한 효과에 대해 살펴본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서비스직, 판매직, 사무직, 전문직 등 직종과 관계없이 취업과정에서부터 노동현장에서까지 세밀한 복장 규정과 다이어트 요구에 시달린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항공사 승무원이다.

사실 승무원은 탑승객의 안전한 목적지 도착을 돕는 운송직이자 안전활동직이다. 의사소통에 필요한 언어능력과 응급상황에 필요한 체력 및 기술이 업무 수행에 필요한 핵심 자질이다.

하지만 서양 항공사들과의 경쟁과정에서 점점 동양적 순종미를 지닌 여성 승무원상을 차별적으로 추구하면서 여성의 외모가 항공사의 공공연한 관리·감독의 대상이 되었다. 항공사 승무원들에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존재하는 세세한 복장 규정에서부터 노골적인 다이어트 요구까지 이어진다.

이 책에는 성형과 다이어트를 요구하는 사회의 굴레 속에 갇히지 않고 “이게 다 누굴 위한 거지?”라고 자문하면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한 사례들 또한 다루고 있다. 항공사 승무원들의 두발 자유화 및 바지 복장 요구들이 대표적이다. 또한 이 책의 지은이인 민우회 활동가들이 벌인 지하철 성형광고 추방 캠페인이나 외국의 성형광고 규제 사례 등도 억압적인 사회구조를 적극적으로 극복하려는 시도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일종의 성장기다. 외모 지상주의 사회의 모습을 당사자들의 목소리로 드러내고 자신의 콤플렉스와 관련된 아픈 경험을 유머와 위트, 그리고 담담한 고백으로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신간 탐색바로가기

이미지
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오늘을 생각한다
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