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무한적 헌신 이면엔 자기애적 상처가 있다](https://img.khan.co.kr/newsmaker/1054/AR_80_1.jpg)
<무력한 조력자>
볼프강 슈미트바우어 지음·채기화 옮김·궁리·1만5000원
지은이는 심리학자다. 이 책을 비롯해 <조력자증후군과 소진의 위험> <직업으로서의 조력-이웃사랑이라는 상품> 등 조력자들의 정신적 문제를 다룬 책들을 써왔다. 큰 틀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소비, 감정, 관계의 문제를 정신분석적으로 조명한 책들이다.
지은이가 말하는 조력자는 남을 돕는 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보육교사, 심리사, 언어치료사, 교사 등이다. 지은이는 이들 중 일부가 조력활동에 중독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들이 조력활동에 중독되는 이유는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어린 시절 자기애적 만족이 거절당한 아이들은 부모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일이 유일한 선택지가 된다. 성장 이후에도 이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에게 주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이타적 행위를 강박적으로 하게 된다.
이러한 경직된 태도가 직업적 책임을 강조하는 조력활동의 교육과정을 거치게 되면 조력활동에 중독되는 ‘조력자증후군’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지은이의 분석이다.
이들은 도달하기 어려운 이상적 조력자상에 의문을 제기하는 대신, 일방적으로 그것에 자신을 적응시키려고 노력하게 된다. 열악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희생적 활동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 없더라도, 이상화된 조력자상을 받아들인다.
결국 이들은 자신을 해칠 지경이 될 때까지 다른 사람을 돕게 된다. 즉 조력활동에 중독된 조력자들이 보여주는 무한히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행동의 이면에는 억압되었기에 허기진, 거대한 자기애적 욕구를 일으키는 깊은 자기애적 상처가 자리잡고 있다는 진단이다.
1977년 독일에서 출간된 이 책은 독일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지난 40여년간 독일에서 조력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이 분야의 교육과정에 있는 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혀 왔다.
옮긴이는 이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보면 단순히 조력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나친 직업적 소명의식에 허덕이는 한국 사회 전체의 모습을 성찰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거의 모든 직업 영역에서 성취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조하고 있는 사회 시스템과 이러한 시스템의 요구에 순응하는 개인들의 모습이 겹쳐진다는 것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