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에 내몰린 죽음, 자본주의 대한 성찰과 비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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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탐색]빈곤에 내몰린 죽음, 자본주의 대한 성찰과 비판을

<자살론> 
천정환 지음·문학동네·1만4000원

한국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 돼버렸다. 이 끔찍한 상식은 더 이상 충격적이지도 않다. 적지않은 수의 사람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만 우리는 그 죽음에 대해 점점 무뎌지고 있다. 이 책은 이 둔감함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책의 부제가 ‘고통과 해석 사이’인 것은 자살을 선택한 타인의 고통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이들의 죽음을 좀 더 면밀히 해석해보자는 의미다.

지은이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자살의 성격과 원인,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는 문화적 표상방식 등을 과거로부터 계보화해 추적한다. 근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수많은 자살들과 그것을 발생시킨 문제상황을 돌아보면서 이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놓쳐버린 ‘인간다움’의 성찰과 실천을 요청하고 있다. 자살은 “우리네 삶과 사회의 한계 자체”라는 것이 지은이가 이 책을 쓰게 된 출발점이다.

통계지표상 자살은 사회·경제적 상황과 결부된다. 오늘날은 특히 ‘생활고 때문에’ ‘빚에 내몰린’ 자살자가 늘어나고 있다. 지은이는 빈곤에 내몰려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자살이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살아 있는 비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통계 분석에 그치지 않고 자살을 삶 자체처럼 “복잡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통계지표는 야만적 자본주의 사회의 거시적 동향은 지시해줄 수 있지만, ‘생활인’들을 자살에 이르게 만드는 경제의 구체적 양상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빈곤의 구체적인 의미와 그것이 각 개인들의 자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문화·정치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예컨대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돈을 융통하고 빚을 지는지, 사금융 이자율과 대부금 추심 방법은 어떻게 서민들을 괴롭히고 있는지 등 실제 ‘생활인’들을 사로잡고 있는 자본주의적 법적 체제, 일상적 생활양식 등을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찰’과 ‘의미부여’ 과정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이를 통해 경제적 곤란 같은 외적인 문제상황을 자살자들이 어떻게 내면화해 자살을 감행하는지, 그 인과관계와 경로를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근저에는 제도와 법적 체제는 물론 ‘양심’과 ‘인정’ 등 한 사회의 의식구조도 모두 연동돼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자살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흔한 사건이 된 오늘날, 지은이는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자살이라는 가장 외로운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지에 대한 세심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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