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 “경제민주화 안 되면 창조경제도 헛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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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화법으로 말하자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로 재미를 좀 봤다. 경제민주화와 경제활성화, 창조경제 등 경제 시리즈를 내세우며 복지정책의 경우에는 민주당보다 더 좌클릭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런데 집권하자 경제민주화는 단칼에 토사구팽된 듯한 느낌이다. 창조경제, 경제활성화에 밀려 경제민주화는 쑥 들어갔다.

새누리당의 경제통이자 경제민주화 전문가인 이혜훈 최고위원을 만나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는 어찌 되어가는지를 들어봤다. 그리고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물론이고, 새누리당에까지 쓴소리를 서슴지 않는데 당에서 구박(?)은 안 받는지도 궁금했다.

새누리당에 경제민주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왜 속도조절만 강조하나.
“밖에서 보기에는 속도조절을 하는 것 같겠지만 그건 아니다. 경제민주화와 경제활성화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한쪽 바퀴로만 굴러갈 수 있겠는가. 굳이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경제민주화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창조경제를 꽃 피우려면 경제민주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양사태 등도 경제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아서 생긴 일 아니냐. 경제활성화, 창조경제에 아무리 공 들여 봐야 경제민주화가 안 되면 와르르 무너진다. 동양그룹도 그 알짜 재벌이 사주의 욕심으로 무너져 수조원의 손실은 물론 너무 많은 국민들에게 손해와 상처를 줬다. 땀 흘려 일한 이들이 대가를 공정하게 가져가야 하는데 정당한 보상을 못받고 엉뚱한 이들이 그 열매를 따먹으면 무슨 의미가 있나.”

[유인경이 만난 사람]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 “경제민주화 안 되면 창조경제도 헛일”

경제민주화, 창조경제, 경제활성화 등 이름은 거창한데 보통사람들은 개념을 잘 모른다.
“정부 출범 9개월이 되도록 창조경제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아 나도 안타깝다. 지금까지 정부가 말하는 걸 들어보면 융합기술·연구개발(R&D) 이런 내용인데, 사실 이 부분은 민간 몫이라는 느낌이 든다. 정부 역할은 민간 영역이 만개하도록 걸림돌을 제거하고 인프라를 까는 거다. 

지금은 창조경제의 밑그림을 그리는 시간으로 봐야 한다. 또 경제민주화는 1987년에 처음 등장한 단어인데, 전국민에게 회자된 것은 이번 대선 때다. 과거엔 재벌개혁 등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항상 반대한 이들이 많아 지지부진했다. 자기 것을 잃을까 걱정하는 기득권층이 ‘지금은 경제가 어려우니까 다음에 하자’며 지연작전만 펼쳤다. 또 경제민주화가 되면 국가경제가 휘청거린다는 위기론을 주장한다.”

새누리당에서 그런 주장을 피력하는 이들이 많지 않은가.
“그래서 좀 속상하다. 지난 다보스포럼에 특사로 참가해서 IMF 총재 등을 만나 양자 회담도 가졌다. IMF를 비롯한 국제 경제기구에서는 한국 경제성장률을 3.5%로 전망한다. 반면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2.3%로 어둡게 전망한다. 

어느 쪽이 맞을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문제는 그렇게 비관적으로 전망하면 기업들의 투자의욕이 떨어질까봐 걱정이다. 성장률이 낮다는 데 어떤 기업이 투자를 하겠는가. 이한구 전 원내대표도 경제전문가이긴 하지만 경제민주화에 대한 시각은 나와 다르다. 경제민주화는 간단히 말하면 경제 정의를 세우는 것이다. 경제법치로 경제와 관련한 문제도 법대로 하자는 것이다.”

일각에선 경제민주화를 재벌 죽이기라고 주장하는데.
“재벌 총수나 임원도 법을 어기면 특경경제범죄로 가중처벌을 받게 하자는 것이지 절대 재벌 때려잡자는 것이 아니다. 전에는 재벌 총수들이 대법원에서 3년형의 유죄 판결을 받아도 실제는 거의 집행유예로 그쳤다. 국회 재경위에서 8년간 일하며 법을 만들어도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법을 어긴 이들을 처벌해야 그 법이 의미가 있다. 그래서 횡령·탈세·분식회계 등으로 유죄 판결이 확정되면 집행유예에 대해 제한을 두자는 법안도 제출했다. 또 본인이 갖지 않은 주식이나 지분으로 경영권을 남용하면 안 된다. 주식회사의 기본 원리는 주식이다. 

재벌 회장이란 이유만으로 1만분의 8도 안 되는 지분으로 수백억·수천억원의 돈을 횡령하고 그룹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는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그런 비정상적인 일이 못일어나게 경제 정의를 바로세우자는 것이다. 경제민주화가 이뤄지면 기업도 살고, 투자한 주주, 즉 국민들도 사는 것이다.”

동양사태는 금융계열사와 비금융계열사가 순환출자로 얽힌 우리나라 재벌구조에서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 금융은 남의 돈을 굴리는 고위험·고수익 구조인데 채권자가 모니터링을 거의 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지닌다. 금융상품 가입자가 결합재무제표를 매일 확인할 수 없다. 반면 비금융회사, 예를 들어 자동차회사의 주채권은행은 모니터링을 확실하게 한다. 

개인적으론 금융회사와 비금융회사를 아예 분리해야 한다고 본다. 금산분리에 대해 기업이 어려움을 호소하면 그 중간단계로 중간지주회사를 만드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총수 판단에 따라 부실이 여러 계열사로 옮아가는 걸 방치해야 하나. 서민의 목돈을 얼마 되지 않는 지분을 가진 사람이 다 날릴 수 없게 막자는 게 잘못인가. 

대기업집단 계열사간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내용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금융회사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과 금산분리를 강제하는 관련법(중간 금융지주사 설립 등)은 현재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언제 통과될지 모르겠다.”

재벌 측의 압박이 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해외 금융계좌를 개설하면 신고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했을 때 정말 안팎에서 압박이 심했다. 법안을 발의하려면 의원 10명의 도장을 받아야 하는데 의원들조차 도장을 안 찍어주고, 겨우 제출했더니 찍었던 의원들도 나중에 이름을 빼달라고 했다. 

당시 청와대나 정부에서도 노골적인 항의전화를 했다. 기재부가 반대 검토 이유를 내놨는데 국민 불편과 경제 위축이 이유였다. 해외 유학생을 둔 부모나 해외상사원 가족이 너무 불편하다는 것이다. 그 법안은 계좌 현금잔액이 10억원 이상으로 정했는데 10억원 이상을 가진 유학생이 몇 명이나 되나. 

또 온라인으로 신고하면 몇 분이면 되는데 뭐가 그리 불편한가. 경제 위축의 이유로는 자동차를 돌리는 것이 기름이듯 경제를 돌리는 것이 비자금이라며, 비자금이 없으면 기업이 안 돌아간다는 것이 정부 부처의 의견서였다.

당시 친재벌적인 언론에서도 이 법안에 극구 반대했는데, 난생 처음으로 내 이름이 신문 1면에 소개되고 ‘경제 죽이는 경제통’ ‘악법 만드는 의원에게 낙선운동 펼치다’ 등의 기사가 났다. 결국 통과가 안 됐고, 몇 년 후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과 더불어 공정 열풍이 불 때 겨우 통과됐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 “경제민주화 안 되면 창조경제도 헛일”

역외탈세와 관련해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달라는 주장도 하지 않았나.
“역외탈세에 구멍이 너무 많아서 몇 번이나 주장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서는 역외탈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다. 박근혜 정부의 과제이자 공약이기도 하다. 역외탈세 시효가 현재 5년인데 조세피난처는 5년 시효로는 힘들다. 

의심계좌를 열어 확정적 물증을 입증해야 하는데, 한 번 열어보면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다시 열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일부러 한 번 열어 다시는 못건드리게 한다. 한 번 조사했더라도 다시 새 물증이 나타나면 조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최고위원회 등에서 자꾸 공개발언을 하는 건 당원들보다박 대통령이 좀 듣고 보시라는 뜻에서인데 아직은 별 반응이 없으시다.”

지난달에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개혁도 촉구했다.
“공무원연금은 정부가 월급의 7%를 보험료로 지원한다. 평균적인 연금 수령액도 국민연금의 2.6배로 높고 무엇보다 기금운용 수익률까지 낮기 때문에 발생하는 적자를 국민 세금으로 메워주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발표에 따르면 적자폭이 내년부터 연간 4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국민연금에 비해 조금 내고 많이 받는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을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하루빨리 바꾸지 않으면 국민들의 세부담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 이들 연금이 처음 만들어질 때는 이들이 국가에 중요한 일을 하는 데 비해 월급을 많이 못주니 ‘연금’을 약속하며 좋은 인재를 끌어모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공무원 월급도 많이 올랐고, 고용안정으로 급여에 상관없이 인재가 몰리고 있는데, 국민보다 2.6배가 높은 연금을 받는 것을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렵다. 당사자인 공무원들이 개혁을 추진해야 할 주체이다 보니 개혁은 미뤄지기만 하는 상황이다.”

새누리당은, 정책들은 진보적인데 이념적으로는 갈수록 우경화되어 간다는 지적들이 많다. 마치 아수라백작처럼 두 얼굴이라는 것이다.
“복지분야 등에는 이념이 따로 없지만 다른 분야는 이념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현역 의원이 아닌데 최고위원으로 대체 무슨 일을 하나.
“최고위원은 일주일에 세 번 정기회의에 참석하고 사안에 따라 비정기적인 회의가 많다. 그렇게 많은 회의와 주장, 발언을 해도 결국 실행하는 건 정부 부처다. 그래서 당정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하고 그것이 여당 프리미엄인데 꼭 그렇지도 않다. 

또 지난 대선 때 열심히 자원봉사해준 분들이 와달라,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해서 여기저기 부지런히 다닌다.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대통령을 만들었으니 성공한 대통령이 되도록 끝까지 합심하자’, ‘대통령 탄생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마음도 풀어주고 다독거려주는 일을 한다.”

10년간 의리를 지킨 친박이고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경제전문가인데 왜 청와대 입성이나 장관에 임용되지 못했나. 혹시 너무 지적을 많이하고 제 목소리를 강하게 내서 그런 건 아닌가.
“쓴소리를 하는 것은 충언이지 지적질은 아니다. 최병렬 대표 시절에 경제전문가 전략 공천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기업가 출신답게 매사를 수지타산으로 판단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달리 박 대통령은 애국심이 강한 분이고, 또 그분을 첫 여성대통령으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 친박이 됐다. 

2007년 대선 당시 친박으로는 유일하게 현역 국회의원으로 서울 조직을 관리하며 토론 프로에 출연하고 인터뷰를 하며 MB측에서 고소·고발도 많이 당했다. 이 정부에서 여성 장관이나 여성 수석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고, 경제계에서도 여성 임원이 극소수라고 하지만 여성대통령의 탄생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고, 곧 여성계 발전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자주 이름이 거명된다. 당에서는 인지도 높은 외부 인사를 섭외 중이라는 이들도 있고.
“서울시장만이 아니라 어느 분야의 리더도 인지도가 아니라 실력과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몇몇 분들은 추대 형식으로 모셔가기를 기대한다는 소문도 들었다. 그러나 선거란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인지도보다는 경쟁력과 정치 경험과 감각으로 무장한 투사 정신도 중요하다.

박원순 시장은 시민의 말을 경청하고 소통하는 분이지만 그게 중요한 자질이지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서울시장은 7대 경제강국의 수도에 어울리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내수 진작이 되고 서울시 경제가 대한민국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본다. 

아직 출마 결심을 굳히진 않았지만 여당의 최고위원으로, 또 서울시민의 한 사람으로 서울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고민과 애정이 깊다. 각종 자료를 참고해서 서울시 건강진단서 등을 만들어보고 싶다.”

정치를 하는 이유는 뭔가.
“세상 곳곳을 보며 ‘이건 아니야’란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든다. 우리 사회 곳곳의 불편한 점, 비합리적인 면을 보며 든 한과 응어리, 서글픔을 가장 빨리 해결하는 것이 정치다. 연구소에서 밤새 연구해도 사회가 잘 바뀌지 않지만 국회에서 법을 바꾸거나 정부 부처가 실행을 하면 우리 사회가 정의롭고 행복해진다. 

해외 금융계좌나 대부업법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사회가 바뀌는 것에 보람을 느꼈다. 또 지역구 일은 아니지만 한 지방의 농협 여직원들이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피해자들은 직장을 그만두거나 이혼당한 사례까지 있는데도 정작 그 가해자는 해고시키지 않았다. 

국회의원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결국 성추행 가해자를 해직시켰다. 그해 크리스마스에 성추행당한 여직원들이 “심지어 친정 식구들로부터도 오해받아 죽고 싶었는데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나쁜 사람임을 밝혀주셔서 감사하다. 평생 달고 다닐 주홍글씨를 벗은 것 같다”는 감사카드를 보냈다. 그런 일들이 다 정치를 하는 보람이자 이유다.”

몇 달 만에 만난 이혜훈 최고위원은 체중이 많이 빠져 보였다. ‘경제통’이 통 안에만 갇혀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이 있는데, 이 최고의원에게 경제민주화란 물은 언제쯤 들어올지 문득 궁금해졌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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