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부상을 딛고 더욱 단단해진 이청용은 박지성처럼 한국 축구를 상징하는 간판이 됐다.
지난해 11월 독일 분데스리가 쾰른에서 뛰던 정대세(수원)를 쾰른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적이 있다. 북한 축구대표팀 공격수 정대세는 한국 대표팀에서 은퇴한 박지성(에인트호번)의 후계자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청용(25·볼턴) 선수입니다”라고 답했다.
정대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이청용은 최강희 전 감독에 이어 홍명보 감독 체제에서도 대표팀 에이스다. 지난 9월 아이티와의 평가전에서 페널티킥을 2개 유도했고, 지난달 말리와의 평가전에서도 2도움을 기록했다.
처음으로 주장 완장을 차고 나선 15일 스위스전에선 역전 결승골까지 터뜨렸다. 이제는 이청용의 이름 석 자 앞에 ‘포스트 박지성’이란 말을 붙여줘도 될 것 같다.
지금 이청용에겐 박지성의 향기가 난다.

11월 14일 축구 국가대표 홍명보 감독과 이청용이 스위스전을 앞두고 파주 NFC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살인 태클’ 시련 딛고 더욱 강해져
이청용 부친 이장근씨는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때를 잊지 못한다. 부반장을 할 만큼 공부를 잘했던 아들은 어느날 옷이 흙투성이가 돼 귀가했다. 등 뒤로는 축구화를 감추고 있었다.
축구부가 없던 초등학교를 다니던 아들이 창동초등학교 축구부 감독의 눈에 띄어 연습경기를 뛰고 온 것이다. “축구를 하고 싶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아버지는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이청용은 육상선수 출신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스피드가 발군이었다. 이광종 올림픽팀 감독은 “당시 이청용을 본 적이 있는데, 왜소하고 뛰는 폼은 엉성했지만 방향 전환이 매우 빠르고 민첩해서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이청용은 도봉중 3학년 때 FC서울 러브콜을 받아 프로행을 택했다. 열여덟 살이던 2006년 프로 1군 무대를 밟았고, 세뇰 귀네슈(터키) 감독체제에서 박주영(아스널), 기성용(선덜랜드)과 함께 축구에 눈을 떴다. 2007년 20세 이하 월드컵,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해 성장을 거듭했다.
이청용은 2009년 이적료 44억원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볼턴으로 이적했다. 2시즌 동안 9골-16도움을 올렸고, 2010년엔 볼턴 올해의 선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 해 남아공월드컵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전에서 골을 넣는 등 승승장구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와 리버풀 같은 빅클럽들의 러브콜도 받았다.
하지만 2011년 불운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청용은 그 해 7월 31일 잉글랜드 5부리그 뉴포티카운티와 프리시즌 경기 도중 톰 밀러(잉글랜드)에게 살인 태클을 당했다. 관중석까지 ‘딱!’ 하는 소리가 들릴 만큼 부상 순간은 끔찍했다.
산소호흡기를 쓴 채 병원으로 옮겨졌고, 눈을 떠보니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오른쪽 정강이뼈 이중골절. 생애 처음 당한 큰 부상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오언 코일 당시 볼턴 감독은 “청용아 울지 마라. 아직 너에게는 축구인생 20년이 더 남아 있다”고 위로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전치 10개월 진단을 받았다. 이청용은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소나무 같았다. 그는 평소 내성적이지만 위기나 시련이 닥치면 더욱 강해진다. 이장근씨는 “청용이가 수술 후 깨어나자 다리가 퉁퉁 붓고 고름이 줄줄 흘렀다.
고통이 극심한데도 환자복을 입고 환하게 웃는 셀카 사진을 가족에게 보냈다”며 “정확히 뼈가 두 동강이 나서 다행이지, 만약 태클 때문에 뼈가 잘게 부서졌다면 축구를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톰 밀러는 병문안을 오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청용이는 톰 밀러가 죄책감에 힘들어 할까봐 걱정하더라”고 전했다.

11월 15일 서울 성산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초청 국가대표 친선경기 한국 대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이청용이 후반 역전 헤딩 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청용은 대표팀 주치의 송준섭 박사가 이끄는 드림팀과 영국·한국을 오가며 재활에 돌입했다. 힘든 재활 시기 내내 인상 한 번 안 찌푸렸다. 그저 축구를 계속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2007년 오른 무릎 수술로 9개월 만에 복귀한 경험이 있는 ‘재활 선배’ 박지성의 격려도 큰 힘이 됐다.
마침내 이청용은 2012년 5월 그라운드에 컴백했다. 하지만 챔피언십(2부리그) 강등을 막지 못했다. 한동안 금속핀을 박은 정강이뼈 부위가 시려서 경기 후 잠도 못이뤘다. 이를 악물고 경기장과 훈련장, 집만 오가니 통증이 점차 사라졌다. 이청용은 2012~2013시즌 챔피언십에서 41경기에 출전해 4골·7도움을 올리며 부활의 서막을 알렸다.
대표팀 주장 완장 처음 찬 ‘캡틴 리’
이청용의 대단한 의지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축구팬들은 이청용을 ‘마빈 박사’라고 부른다. 만화 ‘두치와 뿌꾸’에 나오는 덧니 난 박사와 닮아서다.
이청용은 치열이 삐죽빼죽 제멋대로고, 드라큘라 같은 덧니도 있다. 여기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다. 이청용은 어릴 적 치열이 고른 편이었는데 어느 순간 망가졌다. 치과에 가보니 마우스피스 등 안전장치 없이 이를 악물고 축구를 해서 이가 상했다고 했다. 이청용의 덧니는 의지의 상징인 셈이다.
부상 후 28개월이 흐른 지금, 이청용은 전성기 기량을 되찾았다. 더기 프리드먼 볼턴 감독(39)이 “난 이청용의 팬이다”라고 말할 정도다. 영국 현지 언론으로부터 프리미어리그 에버턴, 선덜랜드, 위건 이적설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청용은 스위스, 러시아와의 A매치 2연전에 주장을 맡았다. 과거 A매치 50경기를 치르는 동안 한 번도 주장 완장을 찬 적이 없다. 사실 이청용은 전면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다. ‘영원한 캡틴’ 박지성도 27살이던 2008년 처음으로 대표팀 주장 제의를 받았을 때 난색을 표하다 수락했다. 하지만 박지성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리더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다.
이청용은 이미 박지성처럼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이청용은 지난달 브라질과의 평가전에서 네이마르(바르셀로나)를 거칠게 수비하며 파이팅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청용의 측근은 “대표팀의 다른 선수들이 네이마르를 거칠게 막는 역할을 부담스러워 해서 이청용이 총대를 멘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 초 대표팀 분위기가 어수선했을 때 ‘미스터 쓴소리’를 자청한 것도 이청용이었다. 그는 지난 3월 카타르전 직후 “대표팀에 대화가 부족하다”고 돌직구를 날렸다.
축구대표팀에서 이청용과 오른쪽 라인을 책임지고 있는 이용(울산)은 “청용이는 직접 겪어보니 천사표다. 늘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청용은 골보다 어시스트가 많다. 배려심이 깊고 이타적인 성격의 연장선상이다.
이청용은 프로통산 26골보다 많은 46도움을 올렸고, 태극마크를 달고도 5골보다 많은 11도움을 기록 중이다. ‘전 캡틴’ 박지성은 선수단과 경기를 동시에 지배하는 미친 존재감을 보여줬다. ‘캡틴 리’ 이청용에게서 ‘캡틴 박’ 박지성의 모습이 오버랩되고 있다.
<박린 일간스포츠 체육부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