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사회의 진보역량 갉아먹는 ‘광신’ 프리즘](https://img.khan.co.kr/newsmaker/1049/AR_80_1.jpg)
<광신>
알베르토 토스카노 지음·문강형준 옮김·후마니타스·2만2000원
부제는 ‘어느 저주받은 개념의 계보학’이다. 이 책이 정의하는 광신자는 “관용과는 담을 쌓았고, 소통은 불가능하며, 어떤 논쟁도 용납하지 않으면서 오직 상대편의 관점이나 생활방식이 뿌리 뽑힐 때라야 비로소 안도하는” “폭력적 신념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이다.
역사에서 이들은 다양한 이름으로 등장했다. 천년왕국운동, 노예폐지론자, 농민혁명가들, 아나키스트들, 마르크스주의자들, 이슬람교도들이 그들이다.
이 책에서는 이들을 잇는 우리 시대의 광신은 ‘자본주의사회를 넘어 그 외부를 사유하는 이들’이라고 말한다. 이들에게 평등은 달성해야 할 목표이기에 앞서 사회의 전제조건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정리해고에 반대해 크레인에 올라가 제 몸을 묶은 자, 전력대란이라고 하는 사회에서 송전탑 건설에 반대해 드러누운 자, 민주주의 국가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해 촛불을 켠 자, 이 책의 정의에 따르면 이 모든 이들이 다 광신자이다.
이들은 그들이 속한 사회에서 불순세력, 순진한 이상주의자, 단순한 미치광이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시선이 사회를 진보하게 하는 역량을 갉아먹는다고 지적한다. 지은이는 기존 질서를 넘어서려는 모든 급진적 시도에 ‘광신’이라는 딱지를 붙일 때,
이런 급진적 시도를 만들어낸 ‘원인’과 대면하기를 거부할 때, 그 사회는 자신의 모순을 극복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역량을 상실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광신’을 터부시하고 이를 병리적인 관점에서만 다루는 주류적 시각에서 벗어나, 광신이 함의하고 있는 정치적 지평을 되새김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혁명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지금은 다른 어떤 시대보다 근본적 저항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광신이 또다시 모욕적 용어나 정치적 비방의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현재의 상황을 배경으로 이 책은 광신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칸트, 헤겔, 마르크스, 프로이트, 블로흐, 바디우를 재조명한다.
그는 이 연구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악마화 담론 속에 갇혀 있는 광신 개념을 비판적으로 발굴함으로써 열정과 관념을 해방의 정치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수용할 수 있는 정치적 어휘를 재구성하고, 비판자들에 의해 관념적이며 위험한 열정으로 인식될 ‘평등주의적 정치’ ‘해방의 정치’에 관해 기여하고자 한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