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부산을 만든 구석구석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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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탐색]오늘의 부산을 만든 구석구석의 문화

<부산은 넓다> 
유승훈 지음·글항아리·2만800원

책의 부제는 ‘항구의 심장박동 소리와 산동네의 궁핍함을 끌어안은 도시’다. 부제로 미루어 짐작할 때 표제인 <부산은 넓다>는 단순히 물리적 면적이 넓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부산의 역사적 품과 문화적 너비가 넓다는 중의적 의미가 담겨 있다. 

지은이는 부산의 구석 구석에서 오늘날의 부산을 만들어가는 힘들을 추적한다. 중심보다는 변방에서, 거시적인 것보다 미시적인 것에 초점을 맞춘다. 부산의 산동네, 노래방, 부산 밀면, 조내기 고구마, 영도 할매 등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맞닿아 있는 소재들만큼 부산의 문화를 잘 비춰주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현재의 부산과 함께 파란만장했던 부산의 현대사도 짚어낸다. 부산은 구한말 조선을 침략했던 일본에게 왜관을 제공해준 아픔이 서린 곳이었다. 해방 이후, 고국으로 들어온 동포들을 먼저 맞이한 곳도 부산이었다. 

6·25전쟁 당시 남으로 내려온 북한 피란민들이 정착할 수 있었던 땅도 부산이었다. 베트남을 향해 떠나는 장병들의 불안한 마음이 머물렀던 곳도 부산이다. 책은 이러한 부산의 역사를 짚어내며 당시의 사진을 함께 보여준다. 

1903년 일본 거류지의 모습, 1952년 부산 피란민들의 천막촌 모습, 1970년 6월 대한해협을 건너는 페리호 첫 취항식 등의 사진은 과거 부산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시각적 자료들이다.

지은이는 부산에 내재해 있는 근현대사의 기억은 보편적인 한국사와 맥을 같이하지만, 다른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수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 만큼 부산의 역사를 의미 있는 자료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지만, 부산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다. 지은이는 부산의 근현대 생활사와 관련된 문의를 받거나 자문 의뢰를 받으면서 실망감을 감추기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부산 사람들의 삶에서 길어올린 이야기들을 발굴하기보다는 이미 잘 알려진 역사문화 콘텐츠에 겉옷만 갈아 입혀 무대에 등장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에서는 문화 창조를 외치면서 실제 산복도로 사람들의 삶과 생활문화에 대한 진지한 발굴조사는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지은이가 느낀 안타까움이다. 지은이는 더 늦기 전에 진지하게 부산에 대한 기록과 조사를 진행하고 이를 자료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산은 넓다>의 집필 또한 이러한 고민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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