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영화제목 관상
제작연도 2013년
감독 한재림
출연배우 송강호, 이정재, 백윤식, 조정석, 이종석, 김혜수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13년 9월 11일
한재림의 <관상>은 계유정난의 한복판에 천재 관상가가 있었다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이건 사실 관객의 관심을 붙들어 끝까지 끌고 나가기 어려운 이야기다. 이야기의 기본적인 얼개는 수양대군과 김종서 사이의 분쟁이다. 대개의 관객이라면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며 훗날 세조로 기록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눈치가 빠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내내 얼굴을 감추고 있는 문제의 책사가 한명회라는 사실 또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즉, <관상>은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너무 많은 패를 까고 있는 도박판과도 같다.
그렇다면 <관상>이라는 이야기의 전략은 어떠해야 하는가. 상식적인 이야기꾼이라면 사건의 서사가 아닌 인물들의 드라마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들 것이다. 과연 <관상>은 계유정난으로 왕위를 찬탈할 수양대군을 탁자 아래 시한폭탄으로 설정하고, 그 탁자 위에서 아무 것도 모른채 패를 돌리고 있는 인물들의 드라마로부터 이야기의 동력을 찾는다(히치콕은 서스펜스를 정의하면서 관객은 테이블 밑에 시한폭탄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테이블 주변에 앉아있는 주인공들이 이를 알지 못하는 상황을 예시로 들었다). 그렇다면 <관상>의 이와 같은 전략은 성과가 있었는가. 아쉬운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 <관상>은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배우들을 잔뜩 모아놓고서도 이상할 정도로 밋밋하게 진행된다. 이 정도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위해 무려 139분이나 필요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관상>은 몰개성의 가상 역사물이다.
주인공 ‘내경’은 조선에서 제일가는 천재 관상가다. 비상한 머리를 가진 양반 출신이지만 역적 집안의 후손이다. 내경과 처남 ‘팽헌’, 아들 ‘진영’은 바닷가 인근의 시골집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중이다. 어느 날 한양에서 손님이 찾아온다. 관상보는 사업을 겸하고 있는 기방의 안주인 ‘연홍’이다. 연홍은 내경의 탁월함을 알고 그를 한양으로 불러 득을 보고자 한다. 한양을 찾은 내경과 팽헌. 내경은 금새 당대의 권세가 김종서의 눈에 들어 나랏일에 쓰이게 된다. 김종서의 신임을 얻게된 내경은 “역적의 상을 찾으라”는 명을 받고 단종 주변의 위험인물들을 하나씩 만나 본다. 그리고 드디어 수양대군을 만나게 된다.
결말이 정해져있는 이 영화의 이야기 안에서 관객이 긴장할만한 대목은 고작 내경 일행이 수양 대군의 얼굴에 역적의 점을 새기러 가는 시퀀스 정도다. 그 마저도 효과적으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백윤식은 무게감을 드러내기에 분량이 적고 이종석은 예의 TV 속 캐릭터와 별 다를 게 없어 보이며 홀로 고군분투하는 조정석은 말 그대로 ‘혼자 튀어’ 보인다. 이정재는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를 맡았음에도 ‘수양대군’이라는 롤에 처음부터 전제되어 있는 인상 이상을 보여주지 못한다. 조선판 사주카페 마담인 김혜수는 이야기의 변방에서 어떤 종류의 유의미한 기여도 하지 못한채 변죽만 울린다. 오로지 송강호를 보려는 목적으로 허비하기에 139분은 우리 인생에서 너무 긴 시간이다.
근사한 음악. 적어도 돈 들인 티는 확실히 나는 미술. 큰 틀에서 모난 데 없는 편집. 딱히 힘주어 흠잡을만한 구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몰개성한 결과물이 등장했다는 건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 아닌 게 아니라 이와 같이 감독의 인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공산품에 가까운 영화들이 부쩍 늘었다. 한국영화 수익률이 흑자로 돌아서고 제작 시스템이 체계적인 틀 위에 재편되며 감독이라는 직종의 권능이 대폭 축소되는 와중에, 이제 우리 앞에는 ‘흥행이라는 절대 조건 앞에 눈꼽만큼의 위험 요소조차 배제시킨’ 순전한 기획물만이 넘치게 되었다. 나는 이것이 그간 영화 제작과 배급 전반에 걸쳐있는 예측 불가한 지점들이 체계적으로 제거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일종의 과격한 반작용이라 생각한다. 이 말은 장기적으로 볼 때 작가의 개성과 제작 시스템의 합리 사이에 어느 정도의 균형이 도출될 것이라는 낙관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두고 볼 일이다.
허지웅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