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제목 컨저링
원제 The Conjouring
감독 제임스 완
배우 베라 파미가, 패트릭 윌슨, 론 리빙스톤, 릴리 테일러, 샌리 카즈웰
상영시간 112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13년 9월 17일
영화 <컨저링>의 국내 개봉 홍보문구는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이다. 이건 ‘네 개의 모서리를 지닌 삼각형’처럼 형용모순이다. 아마 홍보사가 앞에 쓴 ‘무서운’이라는 말의 의미는 ‘사지 절단되고 피분수가 솟구치는’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피 칠갑이나 신체훼손 없이 초자연적인 공포를 다룬 영화들은 많다.
제임스 완 감독의 이름을 알린 <쏘우>(2004)와는 전혀 다른 선택이다. <쏘우>의 주인공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신체를 훼손해야 했고, 관객들은 고통스럽게 그 과정을 들여다봐야 했다. <쏘우>가 개봉할 당시 리뷰에도 언급했지만 여기서 쏘우(saw)는 중의적이다. 톱질과 그 과정을 봤다는 것. <컨저링>의 분위기는 감독의 전 작 <인시디어스>(2010)와 비슷하다.
<컨저링>이 다루는 이야기는 실제 ‘귀신들린 집’에 이사를 간 페론 가족이 겪는 초자연적 사건이다. 5명의 딸을 둔 가난한 부부. 유달리 싼 집을 운 좋게 구할 수 있었다. 이사를 간 첫날, 가로막혀 있는 벽 뒤에서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한다. 왜 이 지하실의 입구는 봉쇄되어 있었을까. 기르던 개는 웬일인지 집에 들어가길 거부하다 이튿날 싸늘한 사체로 발견된다. 하나둘, 아이들이 이상한 현상을 경험한다. 새벽 3시7분만 되면 누군가 침대에서 다리를 잡아끈다. 몽유병력이 있는 딸은 그 집의 붙박이 장롱으로 가 머리를 찧는다. 서서히 악령은 자신의 실체를 드러낸다.
이야기 구조만 보면 전형적인 ‘귀신들린 집’ 이야기다. 이야기의 원형을 만들어낸 영화는 <아미티빌의 저주>(1979)다. 아미티빌 이야기에는 또한 원작소설이 있다. 그리고 그 원작의 주인공이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인 워렌 부부다. 실제 인물들이다. 지역 대학에서 악마학(demonology)을 가르치던 이들은 여러 공포영화의 소재가 되는 수많은 케이스들을 발굴해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뉴욕주 롱아일랜드에 있는 아미티빌가에서 ‘사건’이 벌어진 것이 1976년이다.
그런데 워렌 부부는 5년 전인 1971년도에도 비슷한 악마 퇴치 경험이 있었다. 그게 이번에 제임스 완이 영화화한 페론 가족 일화다. 내친 김에 하나 더 언급하자면, 워렌 부부의 남편 에드 워렌은 지난 2006년에 타계했다. 할머니가 된 부인 로레인 워렌이 이번 영화에 참여했다. 지금도 인터넷에는 이들 부부가 개설해 놓은 투박한 홈페이지가 운영되고 있다. 디지털로 제작된 영화지만 영화는 일부러 빛바랜 분위기를 내고 있다. 삽입된 노래조차도! 덧붙여 그 악령이 페론가 사람들을 겁주는 방식도 굉장히 고전적이다.
놀라운 것은 데몬, 그러니까 영화 속에 묘사된 악령이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 아주 도발적이라는 것이다. 눈을 가리고 딸과 박수소리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 엄마 옆 허공 속에 난데없이 손이 나타나 박수를 치는데, 그것은 우리가 순수한 어린 시절에 느끼던 공포,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의 공포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영화는 악의 존재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악마가 천장에 매달려 있다가 습격하는 장면은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영화 <링> (1998)의 사다코 출현 장면처럼 인상 깊은 장면으로 기억될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나는 수작(秀作) 공포영화다. 영화 제목인 ‘컨저링’(the Conjuring)은 ‘요술’이라는 뜻이다. 이 역시 영화가 재현한 1970년대의 암울한 음영과 어울리는 단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