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없는 세계는 가능하다>
애니트라 넬슨·프란스 티머만 등 지음·유나영 옮김·서해문집·1만4900원
![[신간 탐색]자본주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필요조건](https://img.khan.co.kr/newsmaker/1044/20130924_1044_A112a.jpg)
2007년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여전히 전 세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불필요한 소비와 탄소 배출이 증가하면서 환경파괴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 책은 제어받지 않는 시장경제의 성장으로 전 세계가 환경적·사회적 재앙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인 ‘화폐’가 있다고 말한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뒤따른 신용경색도 화폐에 기반한 재앙이다. 시장을 통해 기후변화를 막으려 했던 시도가 실패한 데에도 화폐가 있다. 끊임없이 화폐 단위로 성장이 측정되면서 기업들이 이에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들은 인간과 자연의 가치보다 화폐의 가치를 높이고 있는 현 체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비화폐 시스템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할 것인지를 탐구한다.
이 책은 ‘화폐 권력’에 좌우되는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대안으로 ‘비시장 사회주의’라는 다소 생소한 체제를 제시한다. 자본주의를 비판하지만, 20세기 자본주의 대안으로 거론됐던 공산주의 모델 또한 시장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명확하다고 지적한다. 지은이들이 주장하는 ‘비시장 사회주의’의 일면은 각지에서 실험되고 있는 ‘비화폐 시스템’의 사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스페인 스쿼트의 비화폐적 자치가 대표적이다. 스쿼트는 이용되지 않거나 버려진 사유지나 공유지에서 자율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다. 이곳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관계와 집단적이고 직접적인 숙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는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 실험이 벌어지고 있다. 스페인 바로셀로나 도심지에만 대략 200곳의 스쿼트가 몰려 있다.
스쿼트의 경제는 시장을 벗어나서 자기 조직, 상호부조, 호혜성, 도심 회합, 자원 재활용, 재생 가능 자원, 퍼머컬처, 농업생태학 등에 기반해 있다. 임금노동에 종사하기보다 공동체 내에서 기술을 개발하거나 직접 재배를 통해 자신이 먹을 식량을 확보하는 식이다. 당연히 은행이나 부동산 사업과는 독립돼 있으며, 돈을 모으지 않고 돈이 있더라도 이를 빌려주어 수익을 거두기를 거부한다.
이 책은 스쿼트의 사례처럼 집단 자급자족에 기초한 비화폐 사회를 화폐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지은이들은 그들의 주장이 유일한 해법은 아니겠지만, ‘화폐 없는 세상’이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는 충분조건은 아니더라도 필요조건이라고 강조한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