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에게 보험이란 주변 아는 사람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가입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 그러나 정작 보험이 필요한 상황에 닥쳤을 때 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본인도 모르는 사이 보험금이 연체돼 계약이 해지된 경우도 있지만 가장 대표적으로는 고지의무 위반이라는 명목 때문에 보험금을 받지 못하거나 보험 자체가 해지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고지의무란, 상해·질병·생명보험 등 건강을 담보로 한 보험계약에서 계약 전 피보험자의 건강상태를 보험사에 미리 알려줘야 하는 의무를 말한다. 보험가입 약정서 작성 시 ‘예’, 또는 ‘아니오’로 표기되어 있는 항목들에 체크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것을 허위로 또는 사실과 다르게 작성해 이른바 고지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보험사는 일방적으로 계약을 직권해지할 수 있다. 또 특정 질병에 대해 보험금을 청구할 경우도 고지의무 위반으로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면책사유에 해당한다.
고의로 특정 질병 또는 치료사실을 숨긴 경우 책임은 당연히 피보험자에게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보험사의 무조건적인 해약 또는 면책통보에 대해 잘 따져봐야 한다. 피보험자가 실수로 고지의무를 위반한 사항이 있더라도 가입 전 질병과 가입 후 발생한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는 경우는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대법원은 보험계약 무렵 갑상선결절 진단을 받았던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다가 이후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고지의무 위반을 들어 보험사가 해약을 통보한 사건에 대해서도 피보험자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가 다른 경우에 피보험자 본인이 아니면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개인 신상이나 신체상태를 계약자가 적극적으로 확인해 고지하지 않았다 해서 곧바로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명백한 고의가 있었다고 입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지의무 위반이라 해도 사안에 따라서는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보험사는 여전히 약관에 기재된 고지의무 위반의 잣대를 적용해 해약이나 면책을 주장한다. 이런 경우 보험 약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피보험자 입장에서는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소송으로까지 이어진다면 더욱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피보험자 입장에서는 고지의무 위반에 대한 명백한 고의가 없고, 질병간 인과관계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면 전문가를 통해 꼼꼼히 살펴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순진 <에스제이손해사정(www.sjadjust.co.kr) 대표·대원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