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 학생운동 경력 논란
잉여들은 꼰대들과 조우하며 자아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너 왜 취직 못해?” “왜 이렇게 패기가 없어?”와 같은 질문 겸 꾸중 덕분이다. 답변은 크게 “제 노력이 많이 부족했네요.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와 같은 자기 채찍질, 또는 “열심히만 하면 되는 거 맞음? 이 사회에는 문제 없음?”과 같은 물음으로 나뉜다. <월간잉여>(이하 ‘월잉’)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주로 후자의 답변을 내린 이들이다.
꼰대들은 잉여들에게 “잉여가 남 걱정할 때냐. 너 자신이나 걱정해”라는 말을 던지곤 한다. 이들은 뭔가 잘못 알고 있다. 잉여라서 더 남 걱정을 하는 것이다. 잉여가 가진 소수자 감성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 만난 월잉 독자들은 평균보다 ‘구조 속의 나’에 대해 더 생각하고,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도 깊어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최근 학생운동에 대해, 정확히 말하면 이번 ‘대학가 시국선언’에 대해 큰 관심이나 기대를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뭔가 중요한 문제긴 한 것 같은데, 확실히 나와는 동떨어진 얘기인 것 같아요” “(시국선언의 주체인) 총학생회라는 조직이 하는 얘기는 평소에도 공감이 잘 안 가요. 어려운 말, 다른 세계의 말을 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요즘 서울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서울대에서도 시국선언에 관심 갖는 사람은 일부던데….”

6월 20일 서울대학생들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국정원의 선거 개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젊은 세대는 대학 총학생회와 이들이 상징하는 ‘운동권’을 멀게 느낀다. 이와 달리 어르신들은 운동권에 향수를 갖고 있거나 과민하게 반응한다. 어떤 어르신들은 대학생 시국선언을 보며 가슴이 뜨거워지며 내심 제2의 촛불집회, 제2의 6월항쟁을 기대하신다. 한편으론 국정원 정치개입사건 담당검사가 운동권 출신이라며 예민하게 보시는 분들이 있다.
특히 전자의 어르신들은 ‘연대’해야 세상이 바뀌는데 요새 젊은이들은 자기만 안다며 청춘들을 구박한다. 하지만 청춘은 의문을 갖고 있다. 정말 거리로 나오기만 하면 되는 건가. 촛불을 희망의 아이콘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오히려 2008년 촛불집회는 우리 세대에 패배의식과 허무주의를 남겼다. 그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외쳤는데 달라진 게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이번에 거리로 나가면 달라질 수 있을까. 청춘이 뜨겁기를 종용하는 어르신들은 희망과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시국선언 총학생회도 마찬가지다. 젊은 세대가 공감하지 못하는 ‘운동권 언어’를 반복하는 총학생회는 어르신들의 아바타로 느껴진다. 대학가 시국선언을 폄훼하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의미 있는 행동이고, 이 정도로 국면을 전환한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전과 같은 학생운동으로는 세상이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2030 vs 5060]학생운동, 다른 세계 말 하는 느낌](https://img.khan.co.kr/newsmaker/1032/20130702_1032_A46b.jpg)
‘소수자 정서’를 경험한 이들은 분명 ‘연대’에 대한 희망과 욕망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월간잉여>를 통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나눈다. 월잉을 ‘도와주고 싶어서’ 구매하는 것도 연대감에 대한 의지의 발현일 것이다. 잉여들의 연대감은 ‘학생운동’과는 조금은 느낌 다른 운동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 중 하나가 투쟁기금 모금에 활용되는 ‘소셜펀딩’이다. 일러스트 제작사 팝픽에서 일한 작가들은 자신들이 애초에 정한 급여의 절반밖에 받지 못했고, 직접 창작한 디자인마저 도용당했다며 팝픽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했다.
갑을관계와 열정페이(“네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돈은 적게 받아라”)가 겹친 사건이다. 작가들을 돕자는 취지의 소셜펀딩에는 순식간에 목표금액을 훨씬 웃도는 돈이 모였다. 최저임금 1만원 투쟁 소셜펀딩도 성공을 목전에 두고 있다. 연대는 ‘입금’으로 하는 것이라는 게 그들의 지론이다.
한때 과거 학생운동 경험을 ‘명예’로 여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20대 개새끼론’이 유행했었다. 운동권처럼은 아니지만 청춘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연대와 응원의 방식을 찾아내고 있다. 잉여들은 ‘개새끼’가 아니다.
최서윤 <‘월간잉여’ 발행·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