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 탈북자 인권
‘인간 동물원’이 인류의 역사에서 사라진 건 의외로 오래되지 않았다. 20세기까지 벌어진 일이었다. 유럽인들은 만국박람회에 식민지 원주민들을 전시했고, 이들이 갇힌 철창 주변엔 산업화 도구들이 전시됐다. 산업화한 삶과 토속적 삶을 대비하며 식민지 주민들이 문화적·신체적으로 열등하다고 주장하려는 의도였다. 이로써 식민지 침탈을 정당화하며 자국민들에게는 ‘우리나라 짱짱나라’라는 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었다.

라오스에서 강제 북송된 탈북 청소년들이 중국 거처에서 지낼 당시의 모습. | 박선영 전 의원 제공
인간이 인간을 전시하고 관람하다니,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이런 것을 기획하고 주최한 사람은 물론 이것을 ‘구경’한 사람들도 갇힌 이들을 같은 인간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던 것일 테다. 인간이 인간을 극단까지 타자화하면 이런 일까지 벌어질 수 있는가보다. ‘탈북미녀’ 방송 프로그램이나 탈북자 관련 단체에서 행해지는 강연을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 동물원’과의 유사성이 발견된다. 방송과 강연을 기획하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북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편견어린 시선, 묘하게 깔려 있는 우월감은 근대 유럽인들이 다른 대륙 사람들에게 가졌던 태도와 크게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탈북자 관련 방송·강연의 기획자들은 북한 이탈 주민들과 남한 사람들 간의 이해를 돕고 북한 이탈 주민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취지라고 밝힌다. 하지만 북에서 온 사람들이 과거의 망령을 반복하고 과장하며 ‘전시’되는 것이 진정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방송과 강연 등에서 소비되는 탈북자들의 이야기는 디테일의 차이는 있지만 유사한 얼개로 반복된다. 전반부에는 주로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겪은 인권탄압과 고초 속에서 행한 탈출과정에 관한 이야기보따리가 자극적인 흥미 위주로 열리고, 후반부에는 북한과 대비되는 한국 사회의 우월감이 강조되면서 마무리되는 식이다. 주로 보수진영에서 탈북자들이 등장하는 방송과 강연을 주최한다.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한국인들은 눈물 콧물을 쏟아낸 후 북한을 더욱 멀고 이상한 나라라고 느끼게 된다.
탈북자의 과거의 상처를 헤집으며 상품으로 소비하는 것보다 미래를 향해 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한국 사회에서 편견과 차별에 박해받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탈북자들이 ‘대한민국’의 시민이 될 수 있도록 한국 사회에 적합한 시민의식을 교육받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탈북자들이 편향된 이념 설파를 위한 도구로 반복적으로 이용되기만 한다면, 이들의 사고체계가 확장돼 한국 사회에 맞는 시민의식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30 vs 5060]흥미에 빠진 탈북자 방송 과연 그들에게 도움될까](https://img.khan.co.kr/newsmaker/1030/20130618_1030_A46b.jpg)
1958년 벨기에의 한 박람회장에 ‘콩고인 전시장’이 개설됐다. 이번에는 이전과 달랐다. 관람객들의 야유와 언론의 질타로 주최측은 망신살이 단단히 뻗쳤다. 콩고인 전시장이 문을 닫은 후 인류 역사에 공식적인 ‘인간 동물원’ 기록은 없다. 인종이 달라도 같은 인간에게는 마땅히 갖춰야 할 예의가 있다는 것이 시대정신으로 확고히 자리한 덕분이다. 탈북자들이 전시되고 이용당하는 현실이 바뀌는 데에는 ‘관람객’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탈북자들을 출연시키는 프로그램과 강연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워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최서윤 <월간잉여 발행·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