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 일베 현상
솔직히 말하면 이 주제가 ‘공적인 매체’에 글을 써야 할 만큼 중요한 주제인지도 모르겠으며 관심을 가지고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일베 사이트에 들어갈 생각이 없으며, 일베 사이트를 즐긴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그를 경멸할지도 모른다.
SNS에서 광주 민주화 항쟁에 대해 끔찍한 표현를 쏟아낸 일베의 게시글을 본 내 반응은 의도하지 않게 포르노 사이트가 열렸을 때 못본 듯 창을 닫아버리는 것과 동일했다. 포르노 사이트가 ‘내 눈에 보였으나 보이지 않은 것’으로 취급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은 일베 게시글을 보더라도 의미있는 글이라 생각할 리 없다. 어디나 쓰레기 같은 사이트가 있고, 그것은 특정인들 사이에서 소비된다. 나는 일베의 잘못된 역사관만큼이나 19금 성인 사이트 게시판의 믿을 수 없을 만큼 천박한 여성 대상화나 비하 역시 문제라고 생각한다.

경향신문 일러스트
이 경우 문제는 ‘사이트 폐쇄’가 아니다. 우리가 특정 인터넷 사이트를 폐쇄하려 하거나 웹사이트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다는 이유로 접근 차단을 조치하지 못할 경우 ‘어떤 기준’으로 사법처리를 적용할 수 있을지를 논의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삼는다면 ‘어디까지가 표현’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데, 우리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진보개혁세력이나 시민단체의 ‘의견을 개진할 권리’를 의미하거나 마광수 교수와 같은 외설 논란에만 등장했다. 일베에서 일어나는 허위사실 유포나 명예훼손, 개인에 대한 사이버 테러는 사법적으로 처벌하면 된다. 역사관의 경우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합의된 역사관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야권이 해야 할 것은 사이트 폐쇄가 아니라 올바른 역사관을 제대로 인식시키는 데 대한 고민이다.
사실 ‘일베충’은 현실이 아닌 온라인 상에서의 정체성이다. 그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온라인에서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사회생활을 위해 정치 성향을 드러내지 못하는 세대, 민주당이나 개혁세력을 지지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포장해야 하는 이들은 억눌린 자아를 어디에선가 표출하며 쾌락을 느낀다. 우리 사회가 일베라는 폭탄을 마주한 지금, 그 공간을 없앤다고 해서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들이 공적 영역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사적인 영역에서만 극우성향을 드러내고 있다면, 그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공적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사회의 지적 수준, 교양 수준을 높여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진보진영의 온라인 우세는 트렌드 혹은 ‘선동’의 결과였고, 이것의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또한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찾아야 한다. 이들은 왜 모여들었을까? 일본의 프레카리아트 활동가 아마미야 가린은 원래 극우 단체 출신이었다. 그녀는 자전적 다큐멘터리 <새로운 신>에서 자신이 군복을 입고 천황을 찬양했던 밴드를 하고, 길거리에서 메가폰으로 군국주의의 우수함을 선전하며 살았던 이유에 대해 “처음으로 소속감을 느낀 조직이 극우였다”고 고백한다.
좌우를 떠나 일베에 대한 호들갑은 마치 ‘디씨인사이드’라는 신인류를 발견했을 때 나이든 기성세대의 호들갑과 같다. 자칭 ‘일베충’들은 이렇게 트래픽을 높이고, 기이한 방식으로 사회적 주체가 되는 데 성공했다. 파편화한 개인들이 역사의식과 유리된 채, 개인적 소속감을 웹에서 찾은 결과 극단적 정치성에 몸을 기댄 ‘환자’가 된다. 사회가 바뀌지 않는 한 또 다른 일베는 생겨날 것이다.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