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 - 일베 현상
이 글을 위해 ‘일베’가 무엇인지 검색해봤다. 이렇게나 수준 이하의 쓰레기일 줄이야. 윤창중 성추행 사건 이후 그가 나온 TV토론을 처음 본 뒤 느낀 감정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내가 별나게 고상해서가 아니다. 형편이 없어도 어느 정도가 있지 이들이 어떻게 국가 최고층의 위치를 점하거나, 한 사회의 담론을 좌지우지하게 되었을까? 참 많이 당황스럽다. 나 자신 우아함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지만 일베에서와 같은 말과 행동은 술자리에서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일베가 문제가 되는 것일까. 일부에서 평하듯 그들이 정말 “스스로를 드러내지 못하는 비겁자”, “남성 우월주의자들”, “현실도피자”, “극우 우익”, “성도착증 환자”이며, “악한 강자를 추종하고, 약자에게는 공격적인 분풀이 행위”를 하는 사람들일까? 이런 식의 표현은 타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상대에 대한 악의적 평가란 측면에서 똑같이 ‘일베적’이다. 그래서 일베 현상을 둘러싼 논쟁이 논점을 이탈하여 언론과 표현의 자유, 또는 이중 잣대 등의 헛된 소리들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베 현상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잘 활용했던 그들은 뒤에서 미소 지으며 빠져나갈 길을 찾고 있다.

경향신문 일러스트
논란의 핵심인 일베를 폐쇄하면 문제가 없어질까. 전혀 그렇지 않다. 논란의 직접적 계기는 일베에 게시됐던 글을 종합편성채널을 중심으로 한 수구집단이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활용한 데 있다. 이들의 반사회적이고 악의적인 행태는 반드시 처벌돼야 한다.
그와 별개로 더 큰 문제는 반인륜적인 행태가 허용되는 문화적 습성과 이들을 양산하고 이런 쓰레기를 허용하는 사회적 풍토다. 일베 현상은 역사의식과 공동체 정신은 물론 이웃 사람(타자)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갖추지 못한 지극히 이기적이며 사익에 빠져 있는 수구적 문화와 사회 때문에 초래되었다.
더불어 진보를 자칭하지만 내면은 텅 비어 있고, 진보를 위한 어떤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한 줌 이념이 전부인 듯이 설치는 사이비 진보의 무지몽매함에 대한 반작용이 또 다른 원인이기도 하다. 이 땅의 결여된 인권의식과 연대, 사람을 단지 수단과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풍토가 한국 민주주의의 척박함과 몰역사적 사고와 겹쳐 이런 현상으로 드러난 것이다.
여기에 반인간적인 자본주의의 과잉, 다만 외적인 성공만을 기준으로 삼는 너무도 천박한 물질적 성장주의가 빚어낸 복합적 현상이 ‘일베’라는 이름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소한의 인간적 품격을 지킬 수 있는 물질적 안락함과 나눔, 다른 사람과 공감하는 마음, 인간다운 최소한의 품위와 인륜을 존중할 수 있는 문화가 지켜지지 않으면 일베 현상은 언제라도 확산될 것이다.
역사에서 보듯이 파시즘과 공산주의 등 전체주의는 인간다움을 상실한 문화의 반작용으로 나타난다. 우리 안의 야만과 폭력의 싹을 잘라내지 않으면 언제라도 우리는 짐승의 상태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지금의 안온함과 풍요로움, 물질적 현란함에 취해 그들의 고통과 외침을 보지 못하면 폭력은 곧 현실이 된다.
딱 일베 수준으로 이런 행태를 악용한 수구집단은 작은 부분에 지니지 않는다. 극단으로 치닫는 자본주의와 몰인간적인 문화, 인문정신을 무시하는 경제 만능과 성장신화는 야만의 또 다른 얼굴일 뿐이다. 일베 현상은 그에 대한 강한 경고를 담고 있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