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밖에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피해를 가장 심하게 본 지역은 유럽이다. 유로화를 단일통화로 삼고 있는 ‘유로존’의 위기는 최근 몇 년 사이 국제뉴스의 단골메뉴가 됐다. 역내 국가인 아일랜드·포르투갈·그리스·스페인·이탈리아는 위기 수습의 방책으로 고강도 긴축정책을 시행했지만, 그 결과 오히려 장기적인 실업과 불황의 늪에 빠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받고 있는 국가가 독일이다. 명실상부하게 유로존 최고의 경제강국인 독일은 유로존의 위기 속에서 자국의 경제적 활력을 유지하는 한편, 불황에 허덕이는 회원국에 대한 구제금융을 통해 유로존의 경제통합을 유지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울리히 벡 지음 김희상 옮김 돌베개 1만2000원
‘‘위험사회론’으로 잘 알려진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경제위기의 정치학>에서 이 같은 유로존의 위기를 경제적 위기가 아니라 ‘정치의 위기’라는 프레임으로 분석한다. 지난해 2월 독일 연방의회가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을 의결하던 때 벡은 자문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지? 대체 하나의 민주주의가 다른 민주주의의 운명을 뒤흔드는 결정을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 상황을 더욱 미심쩍게 만든 것은 그가 보기에 “유로화와 유럽연합을 실패하게 만든 책임은 독일이 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주로 남부 유럽에 집중된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기본 원칙을 벡은 경제적인 측면이 아니라 유럽통합의 당위성에서 끌어낸다. “그리스를 단지 채무국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유럽을 주도하는 이념과 가치를 낳은, 그야말로 유럽의 요람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해야만 하지 않을까?”
이런 관점에서 벡은 ‘독일 중심의 유럽’이라는 메르켈 총리의 전략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메르켈 총리는 유럽의 문제를 도외시하지 않으면서도 자국 내 정치권력을 유지해야 하는 이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으로 다른 국가를 도와주는 대가로 역내에서 독일의 확고한 위상을 승인받는 방식을 추구한다. 그러나 벡이 보기에 이런 전략은 상호 인정을 토대로 한 문제해결이 아니라 도움을 받는 국가와 도움을 주는 독일 사이에 위계질서를 만드는 문제해결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역내 국가들 사이의 상호신뢰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것에 다름없다.
그렇다면 유럽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바람직한 원칙은 무엇인가. 벡은 “세계를 다른 사람의 눈으로 바라볼 줄 아는 능력, 코즈모폴리턴의 시각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유럽에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