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는 혐오는 자기불안이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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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 - 동성결혼

“아~, 촌스럽게 무슨 결혼이야?”

청첩장을 내미는 후배들에게 내가 던지곤 하는 축하와 염려를 겸한 농담이다. 주변 후배들은 내 반응을 뻔히 알기에 쑥스러워하면서도 예의상 청첩장을 내민다. 그리고 나는 그 정도의 농담으로 축하를 때우고 대부분의 결혼식에 가지 않는다. 제일 지루한 세리머니는 남의 결혼식과 졸업식이다.

결혼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결혼은 인생의 주요한 분기점이자 기쁜 일일 테니 나도 예의상 축하는 한다. 그러나 “또 하나의 커플이 엮였구나” 하는 염려와 함께 그 ‘엮임’으로 인한 수많은 사연들 특히 여성들의 파란만장한 사연들이 스치곤 한다. 여성 노인들의 구술사를 쓰고 있는 요즈음은 더더욱 그렇다.

5월 15일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김조광수 감독(왼쪽)이 연인 김승환씨와의 결혼을 발표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5월 15일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김조광수 감독(왼쪽)이 연인 김승환씨와의 결혼을 발표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성에게나 남성에게나 법적 결혼은 미래의 자유와 욕망을 상당 정도 저당잡히는 일이다. 현재 시점에서 미래의 삶을 단정하는 것도 위험한 일인데, 타인의 삶까지 함께 엮어 규정하는 것은 더더욱 위험천만하다. 그럼에도 그 책임과 위험과 인내와 아픔까지를 감수하겠다는 사람들의 결단을 나는 지지하고, 그 엮임의 미래가 가능하면 탈이 적기를 바란다. 사회공동체적 관점에서도 결혼은 긍정성보다는 부정적 영향이 크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대부분의 결혼에 대해 나는 딱 이만큼 축하하고 염려한다.

김조광수와 김승환 커플의 결혼 역시 나름대로의 책임과 위험과 인내와 아픔이 담겨 있을 것이어서 무작정 축하만 나오지는 않는다. 허나 둘이 나눌 것이 행복이든 짐이든 그것은 그들의 몫이고, 그 결혼을 축하하고 지지할 다른 이유들은 명확하다.

그들의 동성결혼은 합리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이 특정 종교의 수천년 전 교과서 몇 구절을 들먹이며 21세기의 발목을 불들고 늘어지는 ‘꼰대’들을 향해 펼치는 ‘똥침 파티’다.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의 확장을 위해 법의 경계를 허무는 퍼레이드다.

가장 최근에 동성결혼을 허용한 프랑스를 포함해 전 세계 14개국에서 동성결혼은 제도화되어 있다.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의 결혼은 동성결혼 합법화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다양한 형태의 동반자들이 현행 결혼제도 바깥에서 당하고 있는 차별을 깨뜨리는 축제마당이었다.

그들의 공개적인 혼인신고 자리에 온 사람들은 노무현 정부 이후 계속 무산되고 있는 제대로 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대열에 함께 했다. 합의에 의한 동성간 성행위나 유사 성행위까지 처벌하는 조항을 군형법에 남기고 말겠다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역공의 대열이기도 했다.

박김형준 제공

박김형준 제공

나아가 다양한 계층과 정체성을 가진 시민들을 자본을 위한 생산성의 순서대로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열하고 분리하는 천박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항이었다.

근거 없는 혐오와 공포는 자기 불안이 원인이다. 불안한가? 외부를 향해 혐오와 공포를 남발하지 말고, 자긍심을 회복하라. 혹 마음을 열겠다면, 그들의 결혼식에 초대하고 싶다.

최현숙 <마포 민중의집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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