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지배하는 사회의 대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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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를 쓴 이유가 현대사회에서는 누구나 바빠서 ‘시간’이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환기하기 위해서거나,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분주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경고하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모모>의 작가 미하엘 엔데가 어느 대담에서 한 말이다. 그는 사실은 “그보다 좀 더 앞선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엔데의 유언>은 그가 말한 ‘좀 더 앞선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NHK PD, 경제학자, 영상디렉터, 영상작가 등 네 명의 일본인 저자들이 대신 말하고 있는 책이다. 엔데는 1995년에 사망했다.

<엔데의 유언> 카와무라 아츠노리·그룹 현대 지음 김경인 옮김 갈라파고스 1만5000원

<엔데의 유언> 카와무라 아츠노리·그룹 현대 지음 김경인 옮김 갈라파고스 1만5000원

이 책은 저자들이 1989년부터 1994년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작가와 나눈 인터뷰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여러 차례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저자들은 엔데에게서 돈이 지배하는 사회를 비판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진지한 사상가의 면모를 발견한다.

말년의 엔데는 돈에 대한 사색에 골몰했다. 그가 보기에 돈은 더 이상 노동이나 물건과 등가로 교환할 수 있는 수단의 범위를 넘어 위험한 상태로 폭주하고 있었다. 금융시장에서 돈은 인간이 손에 쥐고 만질 수 있는 실체가 아니라 숫자로만 존재하는 가상의 것이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선진국 자본은 무한증식하지만 빈곤국가는 갈수록 더 빈곤해진다. 이 때문에 엔데는 “실제 노동과 물적 가치의 등가 대상으로 화폐를 다시 되돌리기 위해” 대안적 시스템을 찾는 일에 집중했는데, 그에게 이 문제의 대안을 찾는 일은 “인류가 지구별에서 앞으로도 계속 생존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물음”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엔데가 주목한 사람은 20세기 초반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시기의 사상가 실비오 게젤이다. 게젤은 돈도 노화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한 인물이다. 돈도 다른 사물처럼 오랜 시간이 지나면 닳아서 사라져야만 돈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얼핏 대단히 몽상적인 주장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노화하는 돈’이라는 개념을 구현한 사례가 있다. 1929년 오스트리아의 소도시 뵈르글은 돈의 가치가 매달 1%씩 감소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때문에 이 도시 사람들은 돈이 가치가 닳아 없어지기 전에 돈을 소비했고, 이것은 돈의 순환을 가속화해 이 도시의 경제에 대단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특정 지역에서만 유통되는 지역통화도 이러한 대안적 화폐체계 중 하나다. 저자들은 지역통화의 실제 사례를 자세하게 소개하면서 “돈은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틀림없이 바꿀 수 있습니다”라는 엔데의 말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려 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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