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 - 윤창중 파문
요즘 언론에서는 지난 5월 초 대통령 방미 중 발생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폭력 사건이 연일 화제다. 날마다 새로운 ‘사실’들이 들춰지고 있고, 가장 우려했던 ‘피해자의 신상털기’와 같은 인권침해가 심화하고 있다.
이 사건을 두고 많은 사람들은 ‘예견’되었던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 사건이 ‘메가톤급 폭풍’이라고 불릴 정도로 충격적인 것도 사실이지만, 면밀하게 따져보면 식상할 정도로 지속된 문제라는 지적이다. 심지어 여당 의원들까지 윤 대변인 인사를 반대할 정도로 윤창중이라는 개인이 보여준 언행에서 언젠간 대형사고를 낼 줄 알았다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사건이 윤창중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관행처럼 내려오는 우리 사회지도층의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인식과 자신보다 아래 직급의 사람을 대하는 안하무인격 태도가 바탕에 깔려 있다. 공무로 출장을 가서도 이런 일이 벌어질진대 그동안 국내에서는 어떠했을지 가히 짐작이 간다고 주위에서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특히 윤창중, 그가 공식적으로 보여준 태도들은 이러한 지적에 힘을 실어준다. 이 사건에서 피해자는 윤창중이 자신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고 하고, 윤씨는 단지 격려의 차원에서 “허리를 한 번 툭 쳤을 뿐”이라고 한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인턴’을 ‘여성 가이드’로 호명하면서 업무상 위계관계를 비켜가려는 얕은 시도를 서슴지 않았다. 호텔방 안에서도 추행이 있었다느니, 강간에 준하는 피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느니, 청와대가 개입했다느니 등의 보도들이 이어지면서 이 사건은 진실공방을 넘어 오리무중의 첩첩산중에 들어선 느낌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도 전혀 낯설지 않다. 비슷한 사건은 늘 벌어졌었고, 이후 가해자의 대응이 쌍둥이처럼 닮아 있음에 소름이 돋을 정도다.
문제는 단순하다. 우리나라 고위공무원이 대통령의 미국 순방 중에 여성 인턴을 성폭력했다는 사실을 직시하자. 윤창중, 그가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피해자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다. ‘위로를 표한다’는 애매모호한 표현이 아니라 자신이 한 일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마음을 담아 사죄하고 관련법에 의해 응당한 처분을 받으면 된다. 그리고 정부는 이 사건이 성평등 인식 부재와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시스템의 문제가 빚어낸 결과임을 인정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는 속담과 같은 이 사건은 현재 우리 사회의 성문화와 인권지수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러고도 우리나라가 성폭력을 ‘4대악’으로 지정한 정부의 정책적 의지를 실현할 수 있겠는가?
![[2030 vs 5060]피해여성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 왜 없나](https://img.khan.co.kr/newsmaker/1027/20130528_41_1.jpg)
나아가 우리 모두 성폭력 문제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성찰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성폭력은 조두순, 유영철 등 ‘뿔달린 악마’가 저지르는 일로서 이야기되어 왔다. 늘 가해자는 ‘그들’이었고, 직장이나 학교, 가정에서 상대의 의사에 반한 성적 언행을 했거나 할 가능성이 있는 자신에게는 이런저런 이유의 면죄부를 주고 있었다. 결국 윤창중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는 때는 우리 스스로가 이 문제를 곧 내 문제로 자각하는 ‘그날’이 아닐까.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