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요구에 충실한 노동력은 어떻게 나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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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 시대의 노동에 대한 에세이다. 저자인 충남대 류동민 교수는 책머리에서 한국 사회가 “일이나 노동에 관한 시각이 일방적으로 치우쳐 있는 곳”이라고 규정한다. 이런 치우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일’이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꼼꼼하게 들여다보자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다.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 류동민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1만3000원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 류동민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1만3000원

노동자는 산업화 시대의 경제를 움직이는 필수 동력이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이런 일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노동자를 길러내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노동자를 훈육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기제는 교육이다. 생산력 증대에 최적화한 인재를 만들어내는 데 창조력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그보다는 외부에서 강제된 요구를 묵묵히 수행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저자는 이런 측면에서 정답 찾는 훈련에 골몰하는 현재의 우리 교육 시스템이야말로 자본의 요구에 충실한 인재(노동력)를 길러내는 최적화 시스템이라고 본다. “정형화한 형태의 시험을 준비하는 지겨운 과정을 효과적으로 견뎌낸 사람을 선발함으로써 노동력을 길들이는 데 드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학교를 졸업해도 경쟁은 지속된다. 노동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다. 한국 사회는 노동 주체들이 서로 경쟁하는 단계를 넘어 자기 자신과 경쟁하는 단계에 돌입했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주체들이 경쟁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것이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내면화가 잘 진행된 한국 사회에서는 너나없이 ‘내 인생의 CEO’가 되기 위해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된다.

경제학 교과서는 자본주의가 수행하는 이 같은 경쟁 이데올로기 내면화 작업의 첨병이다. 문제는 경제학 교과서가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를 지속적으로 복제하고 퍼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학 교과서는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시장 조정 과정을 통해 균형이 회복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실제 시장은 이처럼 ‘자동’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갑을논란’을 촉발시킨 남양유업 사건에서 본사는 시장에서 소화할 수 없는 물량을 대리점주들에게 강제로 떠넘겼다.

현실의 시장은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는 ‘멋진 신세계’가 아니라 승자 독식의 원칙이 관철되는 정글에 가깝다. 뾰족한 대안이 없다. 저자는 “부끄럽지만 구조를 바꾸는 방법에 대한 확실한 매뉴얼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대신 그는 개인적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저자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해답은 독자들 스스로 찾아야 할 듯하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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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