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강신주씨의 별칭은 ‘거리의 철학자’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그는 대학에 소속돼 있지 않고 강단 밖에서 철학을 한다. 그는 또 학자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철학을 한다. 철학자 강신주는 동서양 철학사로부터 원본 그대로의 개념이나 논리 대신 지혜로운 통찰을 뽑아내 일상적인 삶의 영역에서도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철학 언어를 쓰고 말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인터뷰 전문작가 지승호씨가 묻고 강신주씨가 답했다. 이 책은 두 사람이 나눈 물음과 답의 기록이다.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강신주 지승호 지음 시대의창 2만2000원
지금 인문정신의 핵심은 무엇인가. “자신만의 제스처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인문정신과 대립한다. “자본이란 힘으로 모든 사람을 다 똑같이 돌게 하거든요. 그러면 사람들이 자기 제스처로 못 살죠.”
그는 인문학의 궁극은 민주주의라고 본다. ‘나’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그 고유한 주체들 사이의 공명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 인문학이라면, 그러한 관계의 정치적 실체는 민주주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나’예요. 각자 각자의 나. 그리고 각자 각자의 ‘나’들이 공명하는 것이고요. (중략) 디테일은 다르지만, 공명할 수 있다는 보편성. 그것이 인문학의 가능성이고 민주주의의 기초죠.”
고유성을 지닌 ‘나’들 사이의 공명이란 문제를 파고들면, 사랑의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강씨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본다. 존재를 뒤흔드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자는 B급 학자라고 본다. 그가 시인 김수영과 평론가 김현을 자신의 글쓰기의 전범으로 거론할 때 이 점이 도드라진다. ‘철학’이란 단어가 품고 있는 건조한 느낌과는 판이하게 다른데, 실제로 그는 자신이 비트겐슈타인, 니체, 루소 등 “격정적인 감정”이 있는 철학자들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소유가 아니라 타인을 사랑해야 공동체의 기초를 다질 수 있다”고 보는 그는 사랑의 반대편에서 소유를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권력과 자본을 비판하는데, 이 지점에서 그의 인문주의는 사회비판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오감에 비유하자면 소유는 시각이고 사랑은 촉각이다. 그가 보기에 타인을 대상화하고 소유 지배 가능한 상품으로 인식하는 것은 자본과 권력의 공통된 특징이다.
철학자 강신주에게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인문학은 사랑과 자유예요. 그래서 반체제적이고, 김수영이 얘기했던 것처럼 불온한 거죠. 사랑과 자유의 힘을 믿을 때 우리는 강해져요.”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