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원제는 ‘향락 노동자(Genussarbeiter)’다. 저자 스베냐 플라스푈러는 독일의 철학잡지 편집장이다. 현대 독일 사회의 특징이 된 ‘과잉노동’의 철학적 의미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통찰에 기대어 풀어내고 있는 이 책은 개념적 체계를 구축하는 이론서라기보다는 철학적 에세이에 가깝다.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 스베냐 플라스푈러 지음·장혜경 옮김·로도스·1만4000원
저자가 말하는 ‘향락노동’이란 ‘즐기면서 하는 노동’이란 뜻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노동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우리는 좋아서 일을 하고,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일에 쏟아붓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의무 노동자가 아니라 향락 노동자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향락노동은 경쟁과 성취가 지상목표가 된 ‘성과사회’에서 나타나는 특성이다. 성과사회에서 노동은 고통이 아니라 쾌락의 원천이다. 성과사회의 향락노동자는 오히려 일하지 않을 때 고통을 느낀다.
이것은 노동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인식 태도인데,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와 맥락이 통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한 교수는 자본주의가 생산성을 최대화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는 대신 사람들이 스스로를 착취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과잉노동을 고통이 아니라 쾌락으로 받아들이는 상태는 분명 정상이 아니다. 문제는 정상이 아닌 상태가 현대사회에서는 정상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말하는 ‘과잉노동’은 몇몇 개인에 국한된 노동 패턴의 문제가 아니다. 과잉노동은 현대사회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표상이다.
노동을 쾌락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노동에서 고통의 요소를 가상적으로 배제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현대인의 웰빙풍조는 생활패턴이나 식생활에서 일체의 자연적 위험요소를 배제하고 매끈하고 안전한 만족만을 추구한다. 성 자체가 가진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는 증발시켜버린 채 성을 시각적 상품화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성산업의 발전이나 성형의 유행, 끊임없는 소비를 부추기는 소비문화도 같은 맥락이다.
이 같은 노동과잉, 소비과잉, 성형과잉의 배후에는 실존적 공허함에 대한 공포심이 자리잡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중독, 과잉행동 환자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일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놓아두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성과를 내기 위해 맹목적으로 돌진하는 대신,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일이나 소비에 중독되는 대신, 삶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상태”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