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선에 부산지역구면 쓰임새가 있는데 우리 당은 저를 철저히 배제해 왔어요”
얼마 전 만난 한 정치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민주당이 요즘 당명과 역사를 빼고는 다 바꾼다고 하는데, 정작 국민들에게는 전혀 감동이 없어요. 늘 똑같은 얼굴에 같은 목소리니 누가 그런 말을 믿어요. 만약 조경태 의원을 대변인으로 등용하면 금방 변화를 느끼지 않을까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민주당 대변인! 게다가 부산에서 내리 3선인데….”
그의 말을 듣고서야 조경태란 이름을 떠올렸다. 민주당 최초로 부산에서 3선을 하고,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도 나오고, 이번까지 세 번이나 민주당 최고위원에 도전하는데 정작 조경태 의원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당내에서도 그가 3선 의원임을 모르는 이들이 많단다. 이력서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가 궁금해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을 찾았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최고위원 도전’ 조경태 민주당 의원](https://img.khan.co.kr/newsmaker/1023/20130423_1023_32_1.jpg)
세 번째 도전인데 왜 그동안 최고위원이 못됐을까요.
“이순신 장군은 줄서기 안 하고, 아첨 안 하고 원칙과 소신만 지키다보니 두 번이나 백의종군했습니다. 감히 그분과 저를 비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당에서 계파도 없이 제 목소리를 크게 내고, 쓴소리를 자주 하다보니 당에선 조경태가 좀 부담스러웠던 모양입니다. 어찌 보면 민주당이 참 고맙습니다. 3선의원인데도 저를 꽁꽁 감춰주셔서 항상 초선의원처럼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조경태란 김치를 장독에 담아 땅속 깊이 꽁꽁 파묻어 두었다고나 할까요.(웃음) 그 김치가 이제 잘 곰삭아서 맛있게 익었으니 세상(최고위원)에 나올 때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당 당적으로 부산에서 3선인데 비결이 있나요.
“제가 28세인 1996년에 처음 출마했어요. 15% 득표였죠. 다음 선거에선 17.5%. 2004년에 처음 당선되었을 때는 39.2%, 18대 때는 35%, 그리고 이번 19대 때 58.3% 득표율로 당선됐습니다. 3선을 내리, 그것도 점점 더 많은 표를 얻었다는 것은 지역민들에게 그만큼 신뢰를 얻었다는 증거 아닙니까. 노무현 대통령도 제가 부산에서 당선되자 “조경태 학습관을 지어서 정치아카데미를 열라”고 할 만큼 불모지 부산에서의 승리를 격려해주셨습니다. 일 잘하는 정치인임을 지역주민들도 인정해준 결과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인기관리를 한다고 해도 지역주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들어주기가 말처럼 쉽지 않을 텐데요.
“정치인은 조정하는 역할이 중요합니다. 정부의 입장만 내세워서도 안 되고 지역민의 이익만 대변해서도 안 됩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죠. 우리 지역에 지하철을 개통한 것은 10년에 걸쳐 이뤄낸 일로 8000억원 규모의 국책사업입니다. 밀양 송전탑도 3년째 노력 중입니다. 남들이 힘들어 지치고 포기할 때 전 성과를 볼 수 있도록 계속 연구하고 노력합니다. 제가 만약에 첫 출마에 당선되었다면 얻지못할 교훈입니다. 두 번의 낙선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지역일을 하는 저를 지켜본 주민들이 우리를 위해 일할 일꾼, 함께 할 정치인으로 믿어줬습니다. 또 민생과 관련된 이슈를 선점하니까 한 번 시켜보자고 응원해주셨지요. 지역주의를 극복하자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민들과 어울려 일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한 결과, 민주당의 깃발을 3대째 부산에 꽂고 있습니다.”
공대 출신(부산대 토목과)인데 정치에 입문한 계기가 뭔지요.
“우연한 기회였습니다. 1995년 10월, 당시 박사 과정 중인 대학 강사였는데 구포 시장을 지나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좌판 행상 어르신들이 노점상 단속반이 엎어버린 좌판을 보고 목놓아 우는 모습을 봤어요. 법도 중요하지만, 생계를 위해 고생하는 어르신들에게 너무 무례하고 난폭하다는 생각에 항의를 했더니 단속반이 ‘당신이 뭔데 나서??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공대생으로 현실에 안주하는 것보다 서민을 지켜줄 사람, 대중을 대변할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죠. 그래서 이듬해 4월에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고 깨끗하게 떨어졌습니다.”
전공인 공학이 정치에 어떤 도움을 줍니까.
“한국 정치는 복잡한데 공학은 담백하고 실용과 효율성을 중요시하죠. 특히 공학적 솔루션, 즉 해법을 찾기 위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방식을 찾는 과정이라 정치적인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됩니다.”
이번에 민주당 대선 패배 요인 분석 자료가 공개됐죠. 한명숙 전 총리가 패배 공신(?) 1등으로 나오는 등 뒷말도 무성했습니다. 그 자료에 공감합니까.
“개인에 대한 마녀사냥식 평가는 조심하고 자제해야죠. 다만 지적받은 본인들 스스로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은 안타깝습니다. 그 누구도 ‘내탓이오’라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국민들이 실망한 것 같습니다.”
지금 민주당은 친노와 비노의 대결 양상으로만 비칩니다. 친노로 알려졌습니다만….
“아마 스스로 친노 선언을 한 첫 정치인일 겁니다. 2002년 민주당 지구당 위원장 시절에 국회의원들과 연석회의에 참석했었죠. 당시 5선이던 안동선 최고위원이 노무현 후보를 앞에 두고 사퇴를 종용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다들 아무 말도 못하고 소위 친노세력들도 침묵하고 있었는데 제가 한마디 하겠다고 나섰죠. 왜 우리 후보를 흔들기만 하나, 나가려면 당신이 나가라고 소리쳤죠. 30대의 지구당 위원장이 5선 의원에게 당당히 사퇴 움직임에 제동을 건 것이 인상적이었는지 일주일 후에 노 대통령이 전화로 ‘고맙다, 대단한 용기다’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사실 친노라고 해도 다릅니다. 노 대통령 당선 후 청와대에 들어간 주류 친노와 비주류 친노, 행정경험 있는 친노와 밖에서 활동하는 친노 등으로 구분이 돼야죠. 국민들이 친노에 실망한 것은 일부이긴 하지만 권력지향적인 친노세력들에 대한 실망과 식상함 때문일 겁니다.”
최고위원에 출마하며 민주당의 개혁을 강조했는데, 가장 시급한 개선 사안은 무엇인가요.
“지금 현재 민주당은 이성적인 판단을 잘 하고 있지 못합니다. 과거에는 지역적 안배, 지역적 배려도 하고 정책적 판단도 할 수 있었죠.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당을 이끌 때 그랬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민주당은 너무도 패권화가 되어 있어요. 가장 대표적 사례가 접니다. 3선, 그것도 부산지역이면 약간 쓰임새가 있는 의원인데 철저히 저를 배제해 왔습니다. 그리고 당내에 각종 선거에서도 제가 진출하지 못하는 그런 아픔을 겪은 원인 중 하나가 우리 당이 너무도 패권화가 되어 있어서입니다. 당권파 대 비당권 파, 주류 대 비주류, 친노 대 반노 이렇게 줄 세우기라든지 분리시키는 패거리 정치의 청산이 가장 절실합니다. 이제 정말 새정치를 해서 국민통합의 초석을 다질 시점입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최고위원 도전’ 조경태 민주당 의원](https://img.khan.co.kr/newsmaker/1023/20130423_1023_32_2.jpg)
새정치, 새정치 하는데 새정치의 정체가 뭡니까. 아무도 모르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 안철수 후보의 새정치, 김정은의 마음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는데요.
“조경태의 새정치란 이런 것입니다. 즉 열심히 땀흘려 일한 사람이 제대로 평가받고 대접받는 공정사회, 각 분야에서 균등한 기회를 주는 평등사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는 사회, 과거에 연연해 편가르기와 이념간 대립을 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새정치죠. 우리 사회가 급속도로 성장하다보니 경제와 사회 발전의 괴리가 커졌습니다. 경제는 초고속 디지털로 성장했는데 정치는 80년대식 아날로그 수준입니다. 궁극적으로 정치가 발전하려면 좀 더 역동적이고 보다 젊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초선의원들도 벌써 끼리끼리 계파를 만들어 실망스럽습니다. 젊은 정치, 새정치란 나이가 젊은이들의 정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젊은 정치를 말합니다.”
그런데 특정 계파에 소속되지 않은 것이 꼭 자랑은 아니잖습니까. 너무 개인적이거나 모나게 군 것은 아닙니까.
“저도 수없이 계파에 편입하기를 종용받아 왔습니다. 적당히 머리 숙이고, 아첨도 좀 하고 기존질서에 편입했다면 저도 정치나 당 생활이 훨씬 수월하고 일찍 최고위원도 했겠지요. 그런데 제가 독자적인 길을 걸은 것은 정치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배워서입니다. 그분은 줄 서지 않았고, 줄 세우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항상 독립된 목소리를 냈고 그걸 존중했지요. 김대중 대통령도 당 총재 시절부터 권력을 사유화하지 않고, 영남지역 안배도 철저히 했잖습니까. 새누리당만 해도, 호남 출신의 이정현씨를 얼마나 중용합니까. 그런데 솔직히 우리 민주당의 경우 당장 내년 지방자치 선거에 부산이나 영남지역에서는 출마자를 구하기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민주당이 명실상부하게 전국 정당이 되려면 이번 5·4 전당대회가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번에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 국민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왜 민주당에서 사랑 받지도 못하는데 순애보를 보입니까. 지역구도 부산인데….
“주변에서 맘 편하게 새누리당으로 옮기라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을 지키는 이유는 제 자신이 민주당의 적자라고 자부하기 때문입니다. 18년동안 민주당을 지키며 여러 번 좌절과 실패도 맛보았지만 제가 민주당 간판으로 부산지역을 지키면서 지역갈등 해소에도 큰 역할을 한다고 믿습니다. 무엇보다 원칙 있는 승리를 만끽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사무실도 없이 국회에서 열심히 일하고, 합동연설회 등에서 진정성 있는 연설로 제 목소리를 내면서 참 많이 외로웠고 지금도 외롭습니다만, 그래도 민주당을 사랑합니다.”
정치평론가들은 다음 대선에서 정권교체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더군요. 10년의 보수정당에 지치고, 국내외 경제환경이 어려워 박 대통령의 정치력도 무력해지면 실망한 이들이 돌아설 거라고요.
“너무 낭만적 해석입니다. 전 어려울 거라고 봅니다. 무엇보다 여당 프리미엄이 있는 데다, 여권에선 국민에게 보여줄 카드가 훨씬 다양한 데 비해 아권, 특히 민주당이 보여줄 카드는 별로 없거든요. 정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다음 대선의 정권교체도 힘듭니다. 당장 내년 지방선거부터 민주당 간판 걸고 안심할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요. 더구나 국민들은 민주당에 격려를 하기는커녕 해체를 요구하는 상황인데요. 그래서 더더욱 이번 전당대회의 분위기와 결과가 중요합니다.”
3선인데, 초선과는 뭐가 가장 차이가 납니까.
“초선 때는 정말 국회 어디에 화장실이 있는지도 잘 몰랐어요.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이라고나 할까요. 3선이면 중학생 정도는 된다고 봅니다.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흐름도 파악이 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목적의식도 생기고 정치적으로 성숙해집니다. 가장 큰 것은 너무 상투적 표현이긴 하지만 헌신과 봉사 의식일 겁니다. 그저 배지를 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를 믿고 지지해준 이들과 그 지역에 대해 몸을 던질 용기가 커집니다. 그러니 이런 경험이 풍부한 저를 지역구에만 놔두지 말고 우리 당에서 잘 활용해달라는 겁니다. 왜 내부 인재를 활용 못하고 엉뚱하게 밖만 기웃거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세 번이나 지치지 않고 도전할 만큼 최고위원의 역할이 중요한가요.
“그럼요. 당의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무엇보다 평의원보다 언론에 노출빈도가 많으니 우리 당의 정책에 대해 알릴 기회도 많아지죠. 당 안에서 계파와 패권에 자유로운 저 조경태가 당원들을 단합시켜내고, 국민의 목소리를 담아낸다면 저는 국민들께 새로운 정치의 모습을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계파와 패거리 정치의 청산, 기득권을 버리는 새정치는 새로운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조경태가 당 혁명의 시작을 외칩니다!”
조경태 의원의 혁명은 성공할까, 민주당은 혁명할 각오가 되어 있을까. 민주당 안에선 시끄러운데 당 밖은 너무 조용하다. 민주당은 그걸 체감하는지 모르겠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