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편에 서는 희귀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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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식적인 구분을 하자면, 변호사는 전통적으로 부르주아 계급에 속한다. 노동자는 그 반대편에 서 있다. 전문가 집단과 자본가를 포함한 신흥 부르주아 계급은 왕과 귀족이 누리던 봉건적 질서를 해체하기 위한 혁명의 시기에는 노동자 계급과 손을 잡았지만, 봉건질서가 해체된 뒤 자본주의의 전성기가 도래하자 노동계급을 탄압하는 새로운 압제자로 등장했다. 부르주아와 노동자는 오랫동안 서로의 계급적 적이었다. 포스트모던의 시대인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형로펌은 사용자와 노동자의 소송에서 흔히 사용자의 대리인 노릇을 한다. 사용자는 노동자의 파업에 소송과 손해배상으로 응수한다. 지난해 용역폭력으로 물의를 빚은 에스제이엠 사건에서 잘 드러났듯, 공권력 또한 노동자보다는 기업에 더 친화적이다.

<노동자의 변호사들> 오준호 지음·최규석 만화·미지북스·1만5000원

<노동자의 변호사들> 오준호 지음·최규석 만화·미지북스·1만5000원

민주노총 법률원 소속 변호사들은 이런 맥락에서 희귀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법률가적 전문성을 자본이 아니라 오롯이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한다.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하는 순간부터 노동자들의 연행과 구속에 대비하고 불리한 노동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법적 논리를 준비하는 이들은 ‘노동자의 변호사’라 할 만하다. <노동자의 변호사들>은 2002년 설립 이후 민주노총 법률원 소속 변호사들과 그들의 활동에 대한 책이다.

민주노총 법률원은 변호사 4명으로 출발했다. 권두섭·권영국·강문대·김영기 변호사가 그들이다.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민주노총을 드나들었던 권두섭 변호사가 민주노총 일을 시작한 지 3년째 되던 해 연수원 동기와 후배들을 모아 창립 멤버를 꾸렸다. 지금은 변호사 14명, 노무사와 송무 지원 간사를 합하면 30여명이다. 독일 노총에 비할 바는 아니다. 독일 노총은 변호사만 360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업무조건은 일반 변호사보다 훨씬 열악하다. 파업이라도 벌어지면 비상이 걸린다. 우리나라 검·경은 파업 노동자들을 형사처분하는 것을 일종의 관례로 여기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구속을 막으려면 연행 후 48시간 동안 속도전을 펼쳐야 한다. 노동 관련 소송의 경우 보편적인 상식으로는 사용자의 불법성이 명확한 경우라도 판례가 축적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으므로 일반 사건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책에 소개된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 홍익대 청소노동자 사건,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 등 주요 10대 노동사건은 최근 10년 사이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노동 이슈들이다. 이 책은 이 사건들을 압축적이면서도 명료하게 요약하는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왜 ‘노동자의 변호사’가 꼭 필요한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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