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이라는 거울에 일본의 현재를 비추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한국에서 스웨덴이 주목받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실업과 양극화 문제가 심화하면서 새로운 사회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고도성장 모델을 추구해 왔고, 소득격차와 청년실업이 야기하는 사회문제를 한국보다 먼저 겪어온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

<스웨덴 스타일> 레그란드 츠카구치 도시히코 엮음·강내영 외 옮김·이매진·1만7000원

<스웨덴 스타일> 레그란드 츠카구치 도시히코 엮음·강내영 외 옮김·이매진·1만7000원

<스웨덴 스타일>에 따르면, 일본에서도 스웨덴에 대한 관심이 새삼 높아지고 있다. 이 관심이 새삼스러운 이유는 스웨덴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이 높아진 때가 요즘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1980년까지만 해도 스웨덴 복지를 배우기 위해 스웨덴으로 달려갔다. 1980년부터 1995년까지는 반대로 스웨덴 사람들이 일본을 배우러 왔다. 그러나 거품 붕괴 후 20년 넘게 저성장이 지속되고 있는 데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큰 충격을 받은 일본에서는 스웨덴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일본인 연구자 9명이 쓴 <스웨덴 스타일>은 그 관심의 산물이다.

편제를 보면, 이 책은 스웨덴 모델을 가능하게 한 스웨덴의 역사적·사회적 배경을 통시적으로 살펴본 다음 스웨덴 복지의 여러 측면들을 횡적으로 살펴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스웨덴 모델을 종횡으로 살펴보는 이 책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은 스웨덴이라는 거울에 일본의 현재를 비추어보려는 노력이다. 이 때문에 필자들은 스웨덴 모델의 실상과 작동원리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본과 스웨덴의 차이에 주목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스웨덴 정부는 1993년 불황 당시 1990년 거품 붕괴기의 일본과는 달리 금융기관에 신속하게 공적 자금을 투입했다. 경제학자 마루오 나오미 교수는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를, 스웨덴이 작은 국가이고 정치가 시장성장주의에 얽매여 있지 않으며,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높고 분배 형평성과 사회적 투명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는 큰 정부를 지향하는 스웨덴이 시장 기능을 경시한다는 주장은 오해이며 스웨덴은 오히려 시장 원리를 가장 중시하는 나라라면서, “미국과 일본은 시장을 중시한다고 하지만, 시장 기능의 활성화를 중시하기보다는 규제를 완화해 기업의 자유로운 이윤 추구를 최대한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시장의 자유화를 진행했다”고 지적한다.

다른 필자는 일본에서는 기업을 ‘집’이라고 부르지만 스웨덴은 국가 전체를 하나의 집(‘국민의 집’)으로 인식한다는 데 주목한다. 일본 방식은 기업들 사이의 경쟁에서는 유리하지만, 스웨덴은 국가 전체가 협력해 대외 경쟁에 대비하기 때문에 “국가 전략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는 스웨덴식 국민의 집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신간 탐색바로가기

이미지
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오늘을 생각한다
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