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와 스캔들 제조기 ‘베를루스코니주의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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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발행하는 좌파 학술지 <뉴레프트리뷰>는 미국의 <먼슬리 리뷰>, 프랑스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함께 3대 진보저널로 꼽힌다. 한국에서는 2008년부터 한국어판이 출간되고 있다.

<뉴레프트리뷰> 볼프강 슈트렉 외 지음·김한상 외 옮김·도서출판 길·2만5000원

<뉴레프트리뷰> 볼프강 슈트렉 외 지음·김한상 외 옮김·도서출판 길·2만5000원

이번에 출간된 한국어판 <뉴레프트리뷰> 4호에는 영미권과 유럽 지식인 19명의 글이 실려 있는데, 그 중에서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에 대한 글이 이목을 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1994년부터 2011년까지 17년 동안 총리를 세 번이나 지냈다. 부패와 스캔들 제조기라는 오명을 안고 있었던 그는 2011년에도 재정위기, 미성년자 성매수, 탈세 등의 추문에 떠밀려 총리직을 내려놨다. 더욱 기막힌 것은 그가 1년 뒤인 지난해 12월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지난 2월 총선에서는 그가 이끄는 자유국민당이 제2당으로 올라서기까지 했다는 사실이다.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파올로 플로레스 다르카이스가 쓴 ‘베를루스코니주의 해부’는 베를루스코니가 총리직에서 쫓겨나기 10개월 전에 쓴 글이지만, 이 문제적 정치인 베를루스코니의 정치적 해악을 해부한 글이라는 점에서 여전한 시의성을 갖는다.

베를루스코니가 이탈리아 정치와 시민사회에 미친 가장 큰 해악은 민주주의를 파괴한 것이다. 다르카이스는 베를루스코니 정권이 파시즘은 아니지만, “분명 전례가 없는 새로운 형태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그 체제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공적 기틀을 파괴했다”고 지적한다. 베를루스코니는 공직생활을 “광고업자나 장사꾼이 주름잡는 넓은 무대”로 보거나 이탈리아를 자신이 소유한 하나의 기업으로 간주했다. 한 마디로 그는 ‘주식회사 이탈리아’의 제왕적 CEO로 군림했던 셈이다. 국가를 하나의 기업으로 보고 사적 이익을 취하는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그는 지난 2월 퇴임한 한국의 한 전직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정치적 반대파들은 무기력하고 무능했다. 베를루스코니는 1996년과 2006년 총선에서 두 차례 패배했지만 중도좌파 정당의 정치력 부재로 재기에 성공했다. 다르카이스는 베를루스코니의 재기에는 “공적 영역을 사적 영역으로, 정치적 대표성을 사적 거래로” 전락시킨 이탈리아 의회정치의 후진성이 자리잡고 있었다며 “좌파 정당의 근본적 변화를 골자로 하는 혁신적인 민주주의를 이룩하지 않고서는 결코 베를루스코니의 망령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다르카이스는 또 베를루스코니의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그가 권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의 예견은 지난 2월 총선에서 사실이 됐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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