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인 ‘치안국가’ 현상과 관련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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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 경범죄 처벌법

과거 ‘북괴’ 이름으로 이루어졌던 통제를 ‘치안’으로 바꾸어 부활시키려 하는 걸까

지난 3월 11일 새 정부가 처음으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경범죄처벌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SNS 세상에서는 특히 ‘과다노출’ 개정건과 관련해서 비난 의견이 빗발쳤다. 물론 이 법에 대해 인권 차원에서의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개정안 자체가 과거보다 심각하게 퇴행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가령 과다노출에만 집중해서 미니스커트와 장발을 통제하던 유신시대가 다시 오고 있다고 말할 경우 “이 규정은 예전부터 있었으며, 오히려 ‘속까지 들여다 보이는 옷을 입거나’ 하는 부분을 삭제하는 등 현대사회의 통념에 맞게 바로잡았을 뿐”이라는 경찰의 해명에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3월 14일 오전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개정안을 비판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3월 14일 오전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개정안을 비판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보수언론들은 SNS가 ‘유신 회귀’의 괴담을 전파하며 새로운 ‘촛불시위’를 기획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온전하게 동의하긴 어렵지만, 야권 지지자들이 보수정부가 무리한 과거 회귀를 시도하여 전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기를 ‘소망’하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다. 그리고 오히려 유신시절의 기억을 가진 기성세대의 경우 새 정부에 실망하는 것과 별개로 이러한 ‘소망’을 조소하는 것 같다. 그들은 역설적으로 지금의 세상이 결코 유신시대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임을 명확하게 알기에 박근혜를 지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경범죄처벌법 개정안이 ‘유신 회귀’의 전조에 해당하는 반인권적인 법이라는 게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문제는 어째서 새 정부의 첫 국무회의에서 이 개정안이 논의되었느냐는 데에 있다. 개정안은 새 정부의 5대 국정목표라는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 맞춤형 고용·복지, 창의교육과 문화가 있는 삶, 안전과 통합의 사회, 행복한 통일시대의 기반 구축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아마도 정부 인사들은 이 개정안이 ‘안전과 통합의 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선거 전 ‘100% 대한민국’을 표어로 내걸 만큼 ‘통합’을 강조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목표에서 ‘통합’ 앞에 ‘안전’이 왔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흉악범죄 등을 이유로 개인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는 전세계적인 ‘치안국가’ 현상과 관련이 있다. 다른 나라가 이를 핑계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면 한국 사회는 과거 ‘북괴’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던 통제의 일부를 ‘치안’의 이름으로 바꾸어 부활시키려 한다는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이는 칼럼니스트 박권일이 한겨레 지면에서 몇 번 말했던 한국 보수의 ‘싱가포르 판타지’의 발현이다. ‘싱가포르 판타지’는 경제성장이나 안전 같은 가치를 인권이나 언론자유 같은 가치보다 상위에 놓는 어떤 태도를 일컫는 말이다. ‘치안국가’ ‘엄벌주의’ ‘경찰국가’와 같은 개념이 이에 연결될 것이고, 조선일보의 ‘주폭’ 보도 시리즈, 아청법, 성폭행사건 보도, 경찰 간부들의 정치인으로의 전직, 그리고 경범죄처벌법 개정안 같은 맥락이 이에 포섭될 것이다. 가령 아청법의 경우도 원래 취지는 아동포르노 제작과정에서의 미성년자에 대한 성적 착취를 금지하는 것인데, 진보언론에서조차도 포르노를 보다 보면 성범죄를 일으킬 확률이 높아지는 것처럼 보도하지 않던가?

[2030 vs 5060]전세계적인 ‘치안국가’ 현상과 관련 있나

즉 문제는 ‘유신 대 민주’가 아니라 ‘치안국가’에 대항하여 시민들을 설득해낼 수 있는 어떤 구체성을 담보한 정치비전이나 국가론이 진보세력에 있느냐는 것이다. 담론이야 있겠지만 아직 야권 지지자들에게 체화된 어떤 것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그것이 미래의 정치적 전망을 어둡게 한다.

한윤형 <미디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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