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 - 경범죄 처벌법
사회적 약자나 비판세력 겨냥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면 우려 수준을 넘어선다
박근혜 정부 국무회의는 ‘경범죄처벌법’ 시행령을 의결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개정된 경범죄처벌법이 3월 22일부터 시행됐다. ‘가벼운 범죄’라는 말이 주는 가벼움 때문인지, 나와는 무관하리란 생각 때문인지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여기에는 사실 생각할 여지가 많다.
무엇보다 국가 권력이 개인의 삶을 어디까지 조율하고 통제할 수 있느냐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근대 이래 새롭게 설정된 국민국가는 개인의 권리를 위임받고 재현한다는 측면에서 법과 계약, 권리와 의무의 문제는 물론 개인과 국가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기초지었다. 근대 이전의 사회철학적 관점과는 다르게 현대 국민국가는 개체의 권리와 자유를 중심으로 공적인 영역의 의무와 책임, 법질서를 정초한 것이다. 그럼에도 국가권력의 정당성 문제는 물론 위임받은 권력의 집행에서 생겨나는 여러 가지 문제는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경범죄처벌법’은 일차적으로 공동체 내에서 있을 수 있는 개인의 일상에 대해 국가권력이 통제하려는 데서 문제가 되지만, 이를 넘어 이를 범죄행위로 간주하여 처벌권까지 행사한다는 데 이르면 사태는 상당히 무거워진다. 5만원에서 8만원 정도의 가벼운(?) 처벌이라고 해서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처벌 대상은 공동체 내에서 개인의 품성과 인간적 관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물론 정부의 설명처럼 경우에 따라 상당히 심각한 다툼과 위해로까지 작용할 수 있는 행위도 있지만, 대부분은 불편하거나 불쾌한 수준에 머무른다. 과연 국가권력이 개인의 불쾌함까지 통제하고 처벌할 정당성이 있는 것일까.
개인의 도덕적이거나 일상적인 행위, 또는 인간다움을 통해 해결 가능한 문제에 대해 아무리 가벼운 수준이라도 처벌권을 행사한다면 그 사회의 일상은 곧장 법 만능으로 치닫게 될 소지가 생겨난다. 더욱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 법이 사회적 약자나 비판세력을 겨냥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면 이는 단순한 우려의 수준을 넘어선다. 19세기 엘리자베스 통치시대 영국에서는 영주들의 토지 강탈로 빈민이 급증하자 구걸금지법을 제정했고, 거지가 되려면 국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개인의 삶을 보장해야 할 국가권력이 오히려 빈민을 양산하고 이들을 산업현장에 필요한 노동자로 수급하기 위해 악용된 것이다. 마침 새로 시행되는 ‘경범죄처벌법’에도 구걸행위 금지조항이 있다.
때맞춰 진행된 고위공직자 청문회에서 많은 시민들은 이른바 사회지도층이란 말도 안 되는 명칭이 붙은 이들이 얼마나 부패하고 불의한지, 그들의 일상적 도덕 무감각증이 이렇게까지 심각하다는 사실을 매일 절감하고 있다. 이들은 결코 구걸행위를 할 일도, 과다노출이나 호객행위를 할 필요도 없을 게다. 그들이 받는 처벌조차 기껏해야 공직후보직 사퇴에 지나지 않는다.
![[2030 vs 5060]개인의 불쾌함까지 처벌할 정당성 있을까](https://img.khan.co.kr/newsmaker/1019/20130325_1019_44_3.jpg)
전관예우 등 온갖 불의한 짓을 통해 수백억을 벌어도 크게 문제되지 않지만, 일상적 삶에서 생길 수 있는 가벼운 행위는 국가가 나서 통제하고 벌금을 부과하고 처벌한다. 이를 일상적으로 체험하는 시민들은 이 시민사회를 어떻게 생각할 것이며, 나아가 그 공동체에 사는 사람다운 사람들의 일상은 또 어떻게 될까. 큰 불의와 더 크게 처벌받아야 할 행동들이 의례적 행위를 거쳐 잊혀질 때, 일상적 삶을 사는 평균적 시민들은 국가 권리와 법의 정당성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의 국가신뢰도와 부패 인지도는 나날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경범죄처벌법과 이런 사실을 연결짓는 것은 무리한 일일까.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