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을 통한 편법 상속’ 최근 10년 전 자료 검토에 재계 긴장
국세청이 재계를 향해 칼을 들었다. 박근혜 정부 초기 힘 있는 부처로 떠오른 국세청이 빼든 칼의 위력은 더욱 세졌다. 국세청은 재벌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주식을 통한 편법상속’을 검토한다고 알려졌다. 최근 10년 자료까지 다시 검토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실효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국세청의 의도대로 대기업의 편법증여가 밝혀지기 어렵고, 오히려 중소·중견기업이 불똥을 맞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세청의 편법상속 의심 주식거래 재조사 방침이 알려진 것은 푸르밀 사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푸르밀은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동생인 신준호 회장이 롯데그룹에서 분리한 회사다. 신준호 회장은 2004년 비상장회사인 대선주조의 지분을 사들여 최대주주가 됐고, 2005년 아들과 딸·손자 등이 신 회장에게 돈을 빌려 대선주조 주식을 사들였다. 2007년 대선주조 지분을 사모펀드에 매각해 3000여억원의 시세차익을 올렸다.
문제는 신 회장 자녀들이 양도소득세만 내고 증여세는 내지 않은 것. 신 회장 자녀가 신 회장의 돈으로 시세차익을 올렸는데 증여냐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이런 논란 탓에 2011년 국세청이 나서서 세무조사를 벌였고, 자녀들에게 120여억원의 증여세를 물렸다. 하지만 얼마 전 감사원은 국세청이 신 회장 자녀에게 부과한 증여세가 적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국세청이 일을 잘하지 못했다고 비판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 ‘보여주기식 일’ 비판도
박근혜 정부 초반 감사원의 국세청을 향한 지적은 뼈아프다. 증세 없는 복지재원 마련의 임무를 수행할 곳이 국세청이고, 이를 계기로 국세청은 FIU 정보 직접 접근을 요구하면서 힘을 키워나가는 중이다. 국세청이 무엇인가를 보여줘야만 했다. 10년 전 자료까지 다시 조사해 주식을 통한 편법증여를 밝혀내겠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설명이 많다. 모 대기업 전문가는 “대기업들은 국세청의 움직임을 조용하게 살펴보고 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지켜보는 중이다. 대기업 중에는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드는 곳까지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개혁연구소 김상조 소장은 “국세청이 편법상속 의심 주식거래를 재조사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국세청이 직접 내용을 밝힌 것이 아니라서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10년 전 자료를 재조사하겠다는 것은 증여세 부과 제척기간이 10년이니까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라면서 “국세청이 들여다보는 기업이 어디인지 아직 모르지만, 푸르밀 사태가 딱 들어맞는다. 대기업이 세금을 회피하는 방법이 다양해지고 있고, 국세청이 이에 대처하려면 계속 새로운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과거 주식을 통한 불법증여의 대표적인 사례는 삼성이다. 2008년 삼성특검에서 밝힌 사례처럼 1999년 당시 이재용 전무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싼 값에 받아 1500여억원 이상의 부당이익을 얻었다고 밝혀냈다. 그룹 차원에서 총수 자녀에게 비상장 주식을 낮은 가격으로 넘기고, 상장 후 막대한 시세차익을 자녀가 챙기게 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삼성특검 이후 이런 방법은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피하기 어려워졌다. 신준호 회장은 새로운 방법으로 자녀에게 증여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세청이 박근혜 정부에 ‘보여주기식’ 일을 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10년 전 자료까지 재검토한다는 것은 과거 국세청의 조사에 문제가 있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국세청이 10년 전 자료에서 주식거래를 통한 편법증여를 발견해 세금을 부과하는 사례가 나올지도 의문이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10년 전 자료를 다시 뒤지면서까지 대기업을 옥죄는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다. 국세청이 재조사를 해서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증여세를 부과하면 자신들이 과거에 세무조사를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인데,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국세청이 박근혜 정부 초기에 뭔가를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소장 역시 “정권 초기에 국세청은 항상 일을 만들어왔다. 정부에 보고할 거리를 찾는 것”이라며 “하지만 국세청이 대기업을 상대로 과세할 부분이 있는지 점검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중소·중견기업에 불똥 튀면 치명타
재벌 총수가 자녀에게 편법증여를 하는 방식으로 떠오르는 것이 일감 몰아주기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편법증여는 올해 뜨거운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3월 13일부터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일감 몰아주기 관련 개정안 내용을 살펴보면 총수 친족(6촌까지)이 3% 이상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계열사간 거래에서 30%를 초과한 일감을 받으면 일감 몰아주기 과세 대상이 된다.
재벌그룹의 증여·상속 비율 등 지배구조 현황을 지수화해 순위를 매기고 있는 CEO스코어는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조사를 한 결과 30대 그룹 1105개 기업 중 17개 그룹 46개사에 불과했다. 이들 46개 기업이 부담해야 할 증여세 총액이 757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세청은 7월부터 일감 몰아주기를 과세 대상으로 정하고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CEO스코어의 조사대로라면 증여세 과세대상 기업이나 과세금액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 개정안에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30대 그룹 1105개 기업 중 오너가 없는 그룹과 지주회사가 지배하고 있는 그룹의 기업은 제외된다. 대주주의 지분이 3%를 넘는 기업 중 내부거래 비율이 30% 이상이며 흑자를 낸 기업만 증여세 과세대상으로 규정한 탓도 있다. 이 때문에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 개정안이 대기업에는 상징적인 효과만 주고, 세금은 중소·중견기업에서 걷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 대기업 전문가는 “국세청이 10년 전 자료를 뒤지면서 편법증여를 밝혀내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 대기업이 국세청의 조사에 가만히 있지 않고 준비할 것”이라며 “문제가 되는 곳은 중소·중견기업이다. 중소·중견기업이 삼성이나 현대차 등 대기업으로부터 편법증여 방법을 배운 대로 사용하고 있다. 국세청의 조사가 중소·중견기업에 미치면 이들은 치명타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