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의 언어가 날선 검이라면 애정의 언어는 비밀스러운 손길이다. 비판은 공개적인 행위지만 애정 고백은 은밀한 행위다. 아무 자리에서나 아무에게나 그런 마음을 내보이는 것은 적잖이 쑥스러운 일이므로, 어떤 대상에 대한 애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자면 자기 노출의 민망함을 감수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책인시공> 정수복 지음·문학동네·1만4000원
<책인시공>은 저자가 품고 있는 책에 대한 애정을 거리낌없이 노출하는 책이다. ‘책인시공’이라는 흔치 않은 조어는 ‘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冊人時空)이라는 뜻이다. 그동안 몇 권의 책을 통해 인문주의자의 감성이 배어 있는 에세이를 선보인 저자는 “지난 10년(2002~2012) 동안 파리에서 책과 함께 살다보니 책을 주제로 삼아 감흥이 있고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책 한 권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책에 대한 책을 쓰는 것은 모든 독서가들의 은밀한 소망인데, 저자는 그 소망을 이룬 셈이다.
저자는 애초 구상과 달리 책을 쓰다 보니 “책에 대한 모든 논의를 집대성해보자는 지적 욕심”이 생겨 나중에 원고의 상당 부분을 덜어냈다고 말한다. 그러나 책에는 한껏 타올랐던 불꽃의 흔적이 역력하다. 저자는 책의 효용, 서재관리법, 집 안팎의 다종다기한 장소별 독서법, 서점에서의 즐거움과 괴로움, 도서관 사용법, 파리와 서울의 도서관 등 책에 관한 다양한 소주제들을 280여쪽 분량 안에 빼곡이 채워넣었다. 이 많은 이야기들이 산뜻하게 리듬으로 흘러간다는 건 이 책의 장점이다. “바위처럼 무겁고 강철같이 튼튼한 학술서나 이론서가 아니라 산들바람같이 가볍고 새소리처럼 상쾌한 산문집 한 권을 쓰고 싶었다”는 저자의 소망 그대로다.
저자에 따르면 책은 지식과 정보의 원천이자 절망의 치료제이며, 다양한 도구이자 생각의 집이다. 한 마디로 존재의 버팀목이자 삶의 동력이다. 이런 관점에 선다면 책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바람과는 달리 실제로는 모든 사람들이 책을 읽을 시간적·정신적 여유를 갖고 있지는 않다. 저자가 보통 사람들의 현실을 무시하고 책읽기를 강권하고 있는 건 아닐까. 책 앞머리에 있는 17개 항목의 ‘독자 권리장전’을 보면 그런 것같지는 않다. 저자가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낙의 ‘독자의 절대적 권리 선언’을 보완해 정리했다는 이 권리장전의 두 번째 항목은 이렇다. “모든 독자는 아무리 강요해도 읽고 싶지 않으면 읽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 책을 읽으면 삶이 바르고 풍부해진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그러나 (중략) 어떤 교육적 목적을 제시하더라도 강요와 강압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