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은 수시로 시민들에게 사과한다. 그러나 시민들이 정치인들의 사과에서 진심을 발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언론이 정치인들의 사과를 중요한 뉴스로 다루든 말든 일반 시민들은 정치인의 사과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기 십상이다. <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 저자 김욱 교수는 조금 다른 관점을 취한다.

<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 김욱 지음·개마고원·1만3500원
저자는 ‘정치적 사과’와 ‘개인적 사과’를 구분한다. 정치적 사과는 개인 차원이 아닌 집단 차원의 사과다. 애초부터 그것은 자발적이기보다는 정치적 유불리가 달린 특정 상황에서 강요받은 것이다. 이 때문에 정치적 사과에는 성찰과 반성이 없는 경우가 오히려 일반적이다. 또한 정치적 힘의 역학관계가 바뀌면 언제라도 사과를 철회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적 사과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일까.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대통령은 촛불집회가 격화하자 6월 19일, 소고기 수입협상이 잘못된 데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한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촛불집회의 열기가 한풀 꺾이자 곧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 폭력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해야 한다”고 태도가 돌변했다. 저자는 그렇더라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사과가 무용한 것이 아니라 그 사과를 유지시킬 정치적 힘이 부족”했을 뿐이며 “그 사과는 치열한 투쟁 끝에 얻어낸 일종의 전리품”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나 ‘치열한 투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억의 힘’이라고 본다. 1998년 당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은 아프리카 우간다를 방문해 수백년 전 미국에서 이뤄진 노예제도에 대해 사과했다. 2000년 3월,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중세의 종교재판, 십자군 원정, 유대인 박해, 여성에 대한 억압 등 지난 2000년 동안 교회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저자는 이를 “시간과 관계없이 인간이 기억을 놓지 않는 한 역사는 반드시 치유될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해석한다. “기억의 힘은 현실적 힘이 없을 때조차 끊임없이 마음속에서 투쟁한다. 현실적 힘이 없을 때도 의심 없이 순응하는 것과 의심하며 살아가는 것은 큰 차이다. 힘이 정의가 아니라 언젠가 그 정의가 힘이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진 것을 역사적 퇴행이라고 보지 않는다. 새 대통령이 독재자를 찬양하면서 당선된 것이 아니라 “과거사에 대한 사과라는 나름의 대가를 치렀고, 유권자는 나름의 전리품(유신통치에 대한 사과)을 얻었다”는 것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