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 인권위 수난사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자화자찬했다. “내가 대통령이 되어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이 정도로 인지도 생기고, 수백년 변방에서 세계 중심으로 갔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좌우지간 인권이다> 안경환 지음·살림터·1만3000원

<좌우지간 인권이다> 안경환 지음·살림터·1만3000원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이라면 이 발언을 듣고 쓴웃음을 지을 것 같다. 그는 새 책 <좌우지간 인권이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즈음(2009년) 대한민국은 국제 인권사회에서 치욕을 겪고 있었다. UN은 물론 명망 있는 국제 인권단체들이 앞다투어 한국의 인권 상황에 우려를 표했고, 여러 차례 공개 서한과 메시지를 보냈다. (중략) 이로 인해 국제 인권사회에서 실추된 한국의 이미지를 만회하려면 오랜 세월에 걸친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좌우지간 인권이다>는 2009년 7월 위원장직을 전격적으로 사임하고 학교로 돌아간 그가 2011년 12월부터 1년 동안 월간 <신동아>에 연재한 글을 묶은 책이다. 인권위원장 재임 중 인권위가 겪은 일들을 기록한 이 책은 한 마디로 ‘이명박 정권 시기 인권위 수난사’라고 부를 만하다.

인권위의 수모는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시작됐다. 2008년 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새 정부 조직의 윤곽을 발표하면서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 안은 결국 철회됐지만 이듬해 3월 행안부는 인권위 조직을 축소하고 정원 208명을 164명으로 축소하는 안을 확정했다. 2009년 당시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부의장국이었다. 2010년부터는 의장국을 맡게 되리라는 것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안 전 위원장의 임기는 2009년 10월 말까지였다. 새 ICC 의장은 2010년 3월에 선출될 예정이었다. 안 전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1년이 넘도록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던 터라 연임은 생각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는 능력 있는 후임자가 ICC 의장이 되기를 바라면서 임기 넉 달을 앞두고 사임했다. 그러나 새 인권위원장으로 낙점된 이는 현병철 현 위원장이었다.

안 전 위원장은 책 말미에서 향후 인권위의 새로운 10년을 위한 로드맵으로 인권위의 헌법기관 승격, ‘인권기본법’ 제정, 인권위원 자격 심사제도 도입을 제안한다. 이 구상을 받을 수 있는 주체는 박근혜 당선인이다. 안 전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빈다”며 “경제와 인권이 서로 상극이 아니라 상생의 가치임을 입증해주시기 바란다”고 썼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신간 탐색바로가기

이미지
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오늘을 생각한다
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