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새 책 <증오 상업주의>에서 경쟁자에 대한 증오를 부추김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챙기는 한국 정치문화를 작심하고 비판한다. 증오 상업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보수와 진보가 공유하고 있는 폐단이긴 하지만,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진보진영의 증오 상업주의다. 진보진영은 민주화 이후에도 반독재 투쟁 시기의 전투적 정치행위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지난 대선에서 드러났듯 진보진영은 증오 상업주의에 갇혀 자멸하고 있다는 게 강 교수의 생각이다.

<증오 상업주의>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1만3000원
저자가 곧장 한국 정치 비판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시작은 미국 정치다. 책의 1장에서는 미국 극우 매체 폭스 뉴스를 분석한다. 폭스 뉴스는 저널리즘의 원칙을 무시하고 수익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 1996년 10월 출범시킨 24시간 케이블 뉴스 채널이다. 출범 초기에는 성공 가능성이 의심스러웠지만, 출범 5년 만에 시청률에서 CNN을 앞질렀다. 비결은 노골적인 우파 편향적 보도였다. 민주당과 민주당이 지향하는 가치를 거침없이 조롱하고 비난하는 폭스 뉴스의 보도는 지식인들의 비판을 받았지만, 조롱과 비난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시청률은 상승했다. 폭스 뉴스는 결과적으로는 미국 정치의 양극화 경향을 심화했다. 상대 진영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켜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한 책임은 미국 좌파 쪽에도 있다. 저자는 오바마 당선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네트워크형 풀뿌리 조직 ‘무브온’ 모델도 당파성에 기반하고 있다고 본다. 문제는 한국 진보개혁진영이 무브온 모델을 한국에 들여오면서 지지자의 열정을 배타적 방식으로 동원하는 무브온 모델의 부정적 효과가 한국에서 더 파괴적인 형태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저자는 1930년대 미국 시카고에서 빈민운동을 했던 사울 알린스키의 문제의식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오바마 대통령의 사상적 멘토로 알려져 있는 알린스키는 “의사소통은 듣는 대중의 경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타인의 가치관을 온전히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자는 상대 진영은 ‘100% 악마’로 자기 진영은 ‘100% 천사’로 의미화하는 한국 진보파의 주류 담론은 “알린스키의 관점에서 볼 때는 진보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저자가 보기에 안철수 전 원장은 이 같은 ‘100대 0’의 대립구도에 반기를 들고 나선 인물이다. 그러나 안철수 전 원장의 도전은 2012년 대선이 ‘증오의 굿판’으로 치러지면서 좌절하고 말았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