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이 말하는 기업의 적나라한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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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기씨는 직업훈련원 교육과정을 마치고 1993년 한국타이어에 입사했다. 1993년부터 2004년까지 회사에서 주는 상을 열세 차례 받았다. 설비관리 아이디어 공모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포스터 공모에서는 최우수상만 여섯 번을 받았다. 마라톤 대회에서는 회사 깃발을 들고 뛰었을 정도로 애사심이 강했다. 2004년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하나가 기계에 머리를 눌려 즉사했다. 근조 리본을 달고 장례식장에 갔다. 장례식장에 와 있던 관리자가 리본을 문제 삼았다. ‘강압적이면서 경멸하는 태도’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 김순천 지음·오월의봄·1만6000원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 김순천 지음·오월의봄·1만6000원

그때 이후 회사에 문제 제기를 시작했다. 회사 동료들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죽었다. 2006년 5월부터 2007년 9월 말까지 심장마비, 심혈관질환, 폐암, 간암, 식도암 등으로 한국안전공단 집계로만 13명이 죽었다. 유족대책위를 만들어 싸움에 나섰다. 회사는 유족들의 처조카까지 조사했다. 정승기씨에 대한 사찰 기록에는 ‘자본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자’라고 기록돼 있었다. 자본주의도 아니고 민주주의도 아닌 ‘자본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퇴출 대상이 됐다는 점만은 분명했다. 정씨는 세 차례 징계를 받고 결국 해고됐다. 상식적인 문제 제기가 해고로 이어지는 기업들이 존재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 수 있을까.

르포문학 작가인 저자는 쌍용차 사태를 목격하면서 ‘어느 한 회사가 그렇게 극단적인 고통을 겪는데 다른 회사라고 안전할까?’라는 의문을 갖게 됐다.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는 노동자들의 육성을 통해 기업의 맨얼굴을 보여주는 책이다. 한국타이어, 삼성전자, 삼성SDI, 쌍용차, 지난해 컨택터스 경비용역 투입으로 물의를 빚은 SJM 등 언론을 통해 문제점이 비교적 잘 알려진 기업의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반월공단 노동자, 공기업 노동자, 정보기술(IT) 분야 프리랜서 노동자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책에서는 하청구조 문제, IT 업계의 살인적인 노동시간 문제, 일상적으로 무시되는 노동자 권익 문제 등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는데, 이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현재와 같은 기업문화는 기업과 노동자, 시민과 사회가 모두 불행한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2012년 세계일보와 잡코리아가 직장인 346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2.8%가 직장에서의 정신적 폭력 때문에 이직이나 퇴사를 고민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기업문화 전문가 신상원씨는 이렇게 말한다. “오직 돈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의 말로가 불행해지듯, 기업들도 이윤추구만이 존재 이유라는 생각을 버리고 각자 그 존재 의미, 업의 의미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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