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가는 사회, 내려가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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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 전 바로 이 지면에 <후세대의 청춘을 비판하지 말라>란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세계적으로는 68세대와 국내적으로는 386세대를 기준으로 한 ‘청춘 담론’이 시의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인기있는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격언인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라는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오늘은 거기에서 더 나아간 얘기를 해볼까 한다. 저출산 문제 등을 놓고 기성세대가 오늘날의 청춘세대에게 “이해는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도 더 어려운 환경에서 아이를 낳고 길렀는데 지금 상황이 힘들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해는 한다. 하지만 저출산이 ‘의지’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현상’이란 문제를 지나치더라도 다른 측면이 있다고 본다.

푸슈킨은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응답하라 1997>에 대한 열광에서 여겨지듯 지금 한창 아이를 낳아야 할 그 세대의 마음은 이미 과거를 산다. 흔히 예전의 한국 사회와 지금의 차이로 ‘계층 이동 가능성’의 유무를 둔다. 과거의 사람들이 계층 상승이 가능하다 믿었고 그게 실존했다면, 지금의 사람들은 그게 거의 불가능하단 걸 이미 알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신생아실이 비어 있다. 저출산은 미래에 대한 청년층의 낮은 기대치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 박재찬 기자

서울의 한 대학병원 신생아실이 비어 있다. 저출산은 미래에 대한 청년층의 낮은 기대치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 박재찬 기자

그러나 문제는 계층 이동 가능성을 넘어선다. 부모님 세대는 사회 내에서 자신의 계층이 상승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 자체가 상승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이었다. 사회는 올라가는 중이었다. 아이를 낳아야 한단 사실에 의문을 품은 바도 없지만,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 아이의 삶이 나보다 더 나을 거란 것도 그들에겐 명약관화한 진실이었다. 실제로 어르신들을 만나보면 그렇게 부유하지 않은 분들도 “얼마나 세상이 좋아졌냐”고 말씀하시곤 한다. 하지만 이 세대가 세계에 대해 가지는 ‘느낌’은 그와는 정반대다. 그들은 청소년기와 청년기 초반에 그들이 누렸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그들 부모님 세대가 그들보다 훨씬 고생한 것도 ‘알고’ 있지만, 엄청난 요행이 생기지 않는 한 자신의 평생 기대소득이 부모에게 미칠 수 없음을 ‘안다’.

이것은 부모세대로서는 매우 놀라운 일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대번에 자녀들이 ‘야망이 없다’고 질타할 것이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자신이 좀 더 잘 나아가지 못한 이유는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이므로, 자신보다 훨씬 교육받은 그들 자녀는 자신보다 훨씬 잘 살아야만 한다. 그들은 심한 경우 자녀세대의 기대소득을, 자기 또래의 비슷한 학벌·학력을 가진 이가 현재 거두는 소득으로 놓는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국 학부모 143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부모들이 자녀가 취업했을 때 기대하는 소득의 평균은 연 5000만원이었다.

이러한 상승과 하강의 ‘느낌’은 삶의 질이나 행복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닐까? 어릴 때는 신문에서 가난한 나라 사는 사람들의 행복도가 의외로 높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후에는 부자나라 사람들의 행복도가 높다고 하다가, 요즘은 복지가 잘 된 나라 사람들의 행복도가 높다고 한다. 소득과 복지로 인한 삶의 안정성 문제와 함께, 성장하는 사회인지 정체하는 사회인지가 행복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닌지 한 번 고려해볼 일이다.

그렇다면 부모님 세대가 자신들이 세상을 만들어낸다 여겼던 그 ‘박정희 시대’를 향수하는 것만큼이나 이 세대 사람들이 아이를 낳기 싫어하는 것도 이해받을 만한 감정이 아닐까? 친구 하나는 그랬다. “내가 불행한 것도 문제지만, 아이를 이런 세상에 낳기는 싫다”고. 옳든 그르든 지금 세대가 세상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이렇다.

한윤형 <미디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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