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가까워진 섬의 무리, 고군산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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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에서 장자도로 건너가는 장자대교의 실루엣 너머로 물드는 노을 속에 마음을 던져볼 만하다.

바다가 위안의 공간이라면, 그 바다 위에 오롯한 섬은 다분히 탈속적이다. 그래서 뭍에 사는 이들은 늘 섬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영원히 머무를 수 없는, 내내 그리워하던 섬이 이제 뭍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새만금사업으로 점차 섬과 섬이 하나로 연결되어지는 것이다. 군산 앞바다의 섬의 무리, 고군산군도의 선유도를 찾아 떠난다.

선유도의 새벽 무렵에는 물안개 아래에서 바지락을 채취하거나 굴을 따는 늙은 갯어미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낸다.

선유도의 새벽 무렵에는 물안개 아래에서 바지락을 채취하거나 굴을 따는 늙은 갯어미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낸다.

서해 바다의 섬의 무리, 고군산군도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 옛 사람들은 군산 앞바다에 무리지어 떠 있는 그 섬의 무리를 산(山)의 무리, 즉 군산(群山)도라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바다에 떠 있는 것만 아니라면, 섬들은 마치 하나의 커다란 산맥처럼 이어져 바다 가운데에서 높은 봉우리를 겨루는 품새다. 고군산군도는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같은 유인도와 크고 작은 무인도 등 점점이 흩어져 있는 60여개의 섬을 일컫는다. 고군산의 섬들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군산항 여객선터미널에서 섬으로 가는 길에 올라선다. 여객들을 실은 배가 긴 뱃고동을 울리며 군산앞바다 서쪽으로 45㎞ 떨어진 신비의 섬, 선유도로 출발한다. 묘한 설렘이 뱃고동처럼 여행객들의 가슴을 동동 울린다. 짙은 서해에 들어선 배가 30여분을 달리니 마치 사열하듯 바다를 빙 두르고 앉은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다가온다. 마치 방벽처럼 둘러선 섬의 무리를 조심스레 비켜나자 드디어 선유도(仙遊島) 망주봉이 눈앞에 그 위용을 드러낸다. 선유도는 진봉반도(進鳳半島)에서 남서쪽으로 약 32㎞ 떨어진 고군산군도의 중심 섬이다. 군산 앞바다의 고군산군도를 대표하며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섬이다.

선착장에 닻을 내리자 섬사람, 낚시꾼, 처음으로 섬을 찾은 여행자 순으로 섬을 밟는다. 선착장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으면 무녀도로 이어지고, 오른쪽으로 길을 잡으면 선유도해수욕장과 장자도로의 길이다. 섬을 지키듯 우뚝 선 망주봉을 바라보며 고군산청년연합회 장의석 회장이 그 기세의 출중함과 선유도의 내력을 알려준다. “옛날 유배되어 온 충신이 매일 산봉우리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했다고 해서 망주봉이라 합니다. 선유도는 고려 때부터 송나라와 무역을 하던 기항지였다고 전해집니다. 또 왜구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한 최무선(崔茂宣)의 진포(鎭浦)기지였구요. 임진왜란 때에는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후 한동안 섬에 머물며 전열을 정비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명사십리라 불리는 선유도해수욕장에서 바라본 선유도의 일몰.

명사십리라 불리는 선유도해수욕장에서 바라본 선유도의 일몰.

파도와 바람이 빚어낸 신선의 섬, 선유도
선유도라는 이름은 섬의 북단에 해발 100여m의 선유봉이 있는데, 그 산의 봉우리가 마치 두 신선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졌다. 섬사람들은 섬이 예전에는 세 개로 나뉘어 있었다고 짐작하는데, 오랜 세월 동안 파도에 쓸려온 모래가 쌓이면서 그 언저리가 이어져 하나의 섬이 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선유도에서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 특히 최근 해안선을 따라 망주봉까지 자전거 전용도로가 새로이 정비되어 자전거 여행족이 마음껏 페달을 밟으며 섬을 둘러볼 수 있다. 또 선착장 앞에는 꽤 많은 전동카트가 줄을 서 있다. 선유도의 명물로 한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섬을 돌아보는 교통수단. 전용카트를 빌려 5분여를 달리니 한적한 바닷가에 숨은 듯이 들어앉은 선유도해수욕장이 나타난다.

섬들을 여행할 때에 거점이 되는 곳으로 해수욕장은 길이 4㎞, 폭 50m 규모의 명사십리 모래밭을 가진 이름난 곳이다. 명사십리해수욕장은 기암절벽과 낙조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선유도에서 장자도로 건너가는 장자대교의 실루엣 너머로 물드는 노을 속에 마음을 던져볼 만하다.

선유도해수욕장에서 왼편으로 길을 잡으면 장자도(壯子島)로 가는 장자대교가 이어진다. 가는 길목에 선유봉 등산로와 초분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선유봉에 오르면 고군산의 방벽 역할을 하는 방축도와 말도 등 12개 섬의 봉우리가 마치 투구를 쓴 병사들이 도열하여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옛 사람들은 이를 적을 막기 위해 배치된 무사들의 모습과 같다 하여 ‘무산십이봉’이라 불렀다. 섬 고유의 장례의식이었던 초분까지 둘러보고 장자교를 건넌다.

고군산의 방벽 역할을 하는 방축도와 말도 등 12개 섬의 봉우리가 마치 투구를 쓴 병사들이 도열하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해서 ‘무산십이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고군산의 방벽 역할을 하는 방축도와 말도 등 12개 섬의 봉우리가 마치 투구를 쓴 병사들이 도열하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해서 ‘무산십이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무녀가 너울 춤을 추는 소원의 섬, 무녀도
선유도는 섬 전체가 암석 구릉으로 뒤덮여 평지가 드문 까닭에 주민들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한다. 앞바다에서는 멸치·새우·갑오징어 등이 잡히고, 바지락·김 양식을 한다. 때문에 새벽 무렵이면 물안개 아래에서 바지락을 채취하거나 굴을 따는 늙은 갯어미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낸다. 어미들에게 바다는 위안이다. 거센 파도와 바람에 부대끼는 섬 살이에 몸이 고단하고 지칠 때마다 바다는 늘상 위로와 평안을 가져다주었다.

선유도의 내력을 알려준 고군산청년연합회 장의석 회장.

선유도의 내력을 알려준 고군산청년연합회 장의석 회장.

망주봉을 바라보고 선착장을 지나 오른편 고갯길로 오르면 선유대교를 지나 무녀도(巫女島)다. 무녀도는 말 그대로 무녀가 춤을 추는 몸짓. 장구 모양의 섬과 그 옆에 술잔처럼 생긴 섬 하나가 붙어 있어 무당이 상을 차려놓고 춤을 추는 모양이라고 하여 무녀도라 부른다. 옛 이름은 ‘서들이’였다고 하는데, 바쁘게 일손을 놀려 서둘지 않으면 먹고 살기가 어렵다는 의미로 부지런히 서둘러야 살 수 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장자도와 무녀도에서는 어촌 특유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배 한편에 쪼그리고 앉아 그물 손질에 바쁜 어부의 모습. 멀리 앞바다의 김양식장에서 부지런히 김을 채취하는 어민들의 실루엣이 수평선에 점점이 펼쳐져 보인다. 갯바람이 어우러진 삶의 풍경이 진솔하고 아름다운 섬마을의 풍경에 운치를 더한다.

“10여년 전만 해도 백사장에서 온통 멸치를 건조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멸칫배를 타는 사람을 구할 수가 없는 형편이어서 점차 멸치잡이는 쇠락했습니다. 다행히 올해 무녀도는 ‘찾아가고 싶은 섬 가꾸기’ 공모사업에 선정되었습니다. 고군산군도 연결도로 개설에 맞춰 섬이 보유한 갯벌, 갈대습지, 염전 등을 활용한 어촌생활을 테마로 관광기반을 키워나갈 것입니다. 천혜의 자연환경에 섬에서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접목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이제 고군산군도의 섬들 중 큰 섬들이 모두 하나로 이어지는 셈이다. 이미 1991년부터 시작된 새만금사업을 통해 2009년 새만금방조제가 신시도까지 연결되었다. 또 2020년까지는 신시도와 무녀도 사이를 잇는 다리가 섬과 섬 사이를 다시 잇는다. 그렇게 되면 새만금방조제를 타고 선유도까지도 접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글·사진|이강 <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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