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무척 예뻤다. 중국에서 손꼽히는 명문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고 했다. 어머니가 조선족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넉넉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입학했고, 외국어가 가능해 현지에서 가끔 관광가이드 알바를 하며 살았단다. 괜찮은 남자친구도 있었다고 한다. 하얀 피부가 눈에 띄었고, 미소짓는 얼굴에서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티가 났다. 몇 번이나 자신의 이야기를 해왔던 것일까?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하나뿐인 가족이던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장례를 치르고 유일한 연고인 먼 친척이 한국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들어와 아직 돌아가지 않았노라고 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얼른 돈을 모아 중국에 돌아가 휴학 중인 대학에 복학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녀를 알게 된 건 어머니가 운영하는 직업소개소에서였다. 신원이 확실하지 않은 경우 일자리를 소개해주는 것이 불법이기 때문에 그녀의 사연에 마음이 아팠지만 어떻게 해줄 수는 없었다. 나는 급한대로 그녀에게 내 학생증을 빌려주었다. 학생증은 분실신고를 하고 재발급 신청을 받으면 그만이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 김기남 기자
이따금 만나 근황을 나누었다. 그녀는 고맙다며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밥을 샀으며, 대기업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일을 했다. 처음에는 다른 불법 조선족 노동자들처럼 이런 저런 일을 전전했으나 이내 한국 친구들을 사귀어 어울리는 것 같았다. 한동안 일했던 식당에서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한 주인은 그녀를 자신의 아들과 적극 연결해주려 한 모양이었다. 사귀는 것인지 같이 사는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복학할 거라는 그녀의 꿈은 그렇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휴학 한도 기간이 끝났고, 대기업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일한다는 것이 마지막 소식이었다.
법무부에 따르면 방문 취업 중인 조선족 수는 28만9981명이며, 이 중 불법체류자는 7538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방문 취업이 아닌 중국 유학생의 경우도 6만명에 이른다. 이제는 조선족 노동자를 더 이상 식당에서만 만나는 것이 아니다. 편의점에서 돈을 받는 그녀들, 카페에서 일하는 많은 그녀들은 조선족이다. 중국에서 온 유학생들은 대학가 근처에 함께 살며 아르바이트를 함께 하는 등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 학생들이 스펙을 쌓기 위해 이전처럼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 생겨난 많은 파트타이머직을 조선족 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다.
오늘과 같은 취업 현실에서는 약간의 파트타임으로 벌 수 있는 알바비쯤은 포기하기로 하고 그 시간에 부모가 경제적인 후원을 해서 취업에 성공하는 것이 유일한 생존전략임을 모두가 알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선택과 집중이다. 학비를 직접 벌어야 한다거나 경제적으로 정말 어려운 경우가 아니고서는 부모가 직접 이것을 권한다. 자녀가 취업에 성공해도 부모가 지원을 해줄테니 차라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고 하는 중산층의 자녀들은 아르바이트 시장에 더 이상 남아있지 않는다. 취업을 위한 휴학이 필수가 되고 불안정한 청년층의 일자리는 저학력, 지방 출신으로 채워진다. 도시에서 채 소화하지 못하는 많은 아르바이트들은 이렇게 조선족과 주부들의 파트타이머로 대체된다. 어느 순간 우리는 맥도날드에서 흰 머리의 스태프들을 만난다. 이들은 대개 카운터보다는 매장 안쪽, 청소, 쓰레기 분리와 같은 일에 투입되고는 한다.
돈을 허투루 쓴다며 그 조선족 아가씨를 늘 혼냈던 어머니는 안타깝지만 아마도 그녀는 영리하기에 잘 살 거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잘 산다는 건 무엇일까? 이주노동은 이렇게 한국 청년층과 취업 현실과 맞물려 돌아간다. 그녀의 꿈과 욕망이 사실 나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녀가 문득 떠올랐다. 그녀가 언젠가 복학할 수 있을까?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