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자식의 분투는 유명인들의 회고록이나 평전에서 드물지 않게 보이는 주제다. 그런데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세계사에 오명을 남긴 독재자의 자식으로 태어난다면 어떨까. <독재자의 자식들>에 따르면, 셋 중 하나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불운한 삶을 살았거나, 권력에 취해 살다 정권이 무너지면서 몰락했거나, 아버지의 후광과 정치적 불안을 이용해 정치에 뛰어들거나다.

<독재자의 자식들> 이형석 외 지음·북오션·1만5000원
스탈린의 막내딸 스베틀라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열여섯살이 되었을 때부터 아버지와 그녀의 사이에는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복막염으로 사망한 줄 알았던 어머니가 실제로는 자살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연상남과의 첫사랑은 아버지가 남자를 투옥하면서 끝났다. 구소련에서 두 번 결혼한 그녀에겐 두 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1967년 미국으로 망명할 때는 혼자 갔다. 1953년 아버지가 사망한 다음에는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어머니의 성으로 바꿨다. 미국 망명 후에도 편한 삶을 살지 못했다.
‘서방’의 품에 안긴 소련 독재자의 딸은 자본주의 체제를 홍보하기 위한 최적의 수단이었다. 미국, 영국, 냉전 말기 소련을 번갈아 방황하던 그녀는 2011년 사망했다. 생전에 그녀는 “나의 어머니가 목수와 결혼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른 자식들의 운명도 험난했다. 장남 야코프는 나치 수용소에서 사살됐다. 둘째 아들 바실리는 군에서 승승장구했으나 아버지 사후에는 기밀누설죄로 체포돼 8년 동안 복역했다.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경우, 맏아들과 막내딸은 무난한 삶을 살았지만 차우셰스쿠의 후계자로 지목됐던 둘째 아들 니쿠는 1989년 반독재 혁명으로 처형됐다.
반면 3선 개헌을 위해 1972년 계엄령을 선포하는 등 박정희의 유신통치를 빼다박은 독재를 했던 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 일가는 필리핀 사회에서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마르코스는 하와이 망명 중이던 1989년 사망했다. 그러나 마르코스 일가는 망명한 지 5년 만인 1991년에 필리핀으로 돌아온다. 이때부터는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다. 마르코스의 아내이자 사치와 부패의 상징 이멜다 마르코스는 귀국하자마자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아들 봉봉 마르코스도 같은 선거에서 하원의원이 됐다. 이멜다는 1992년에는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다. 큰딸 이미 마르코스는 3선 의원을 지냈다. 2010년 상원의원이 된 봉봉은 2016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이 유력시된다. 이런 일은 필리핀의 족벌정치와 지역주의 때문에 가능했다.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