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일본은 패전했다. 조선땅에 살던 일본인들은 어떻게 됐을까? 한국사의 공식 서술은 이 문제를 상세히 다루지 않는다. <조선을 떠나며>는 한·일관계사를 전공한 저자가 조선에서 패전을 맞이한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조선을 떠나며> 이연식 지음·역사비평사·1만4800원
8월 15일 일왕의 항복 선언을 라디오로 들은 조선의 일본인들은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조선인 입장에서 보면 식민지 땅에서 살고 있던 일본인들이 공포심을 느꼈다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저자는 일본인들에게 이 공포는 “생경한 공포”였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일본인들은 식민지 조선에서 조선 민중과는 공간적·심리적으로 격리된 채 자신들만의 세상 안에서 살았다. 식민지 시절 원산에서 중학교를 다녔던 일본인 가사이 히사요시의 회고록을 보면, 당시 원산은 일본인 거주구역인 원산부와 조선인 거주구역인 원산리로 분할돼 있었다. 원산부의 일본인들이 근대적 도시공간 안에서 살았던 데 비해, 조선인들은 “수백년 전 전근대 세계가 마치 멈춰버린 시곗바늘처럼 그대로 존재하는 듯한” 세상에서 살았다. 이처럼 공간적으로 분리돼 있었던 탓에 조선땅의 평범한 일본인들은 일상에서 조선인들의 존재를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일본인들은 해방 후 조선인들이 각종 관공서와 학교에서 지배권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던 것이다.
힘의 역학관계가 급변하자, 일본인들은 서둘러 ‘본토’(일본)로의 귀환을 준비했다. 그러나 사정은 열악했다. 1945년 9월에 남한에 들어온 미군은 귀환하는 일본인들의 화물 중량과 현금 반출액을 제한했다. 일본으로 떠나는 항구에서는 온갖 짐을 구겨넣은 배낭을 지고 배에 오르다 넘어진 일본인들이 배낭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풍경이 속출했다. 게다가 이들을 일본으로 실어나를 배도 부족했다. 전쟁 중 미군의 공격으로 다량의 배가 파손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항구마다 밀항선과 밀항업자들이 성업했다.
해방 직후 일본인 커뮤니티에서는 귀환파와 잔류파가 나뉘어 논쟁을 벌이기도 했으나, 1946년 3월쯤에는 조선땅의 일본인들 대부분이 귀환했다. 그러나 이들은 본토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공습과 패전으로 망가진 일본 경제는 해외 식민지에서 몰려든 자국민들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귀환한 일본 여성들은 정숙하지 못한 여자 취급을 받았고, 귀환한 일본 남성들이 생활고와 취직난 때문에 저지른 생계형 범죄는 귀환자들에게 범죄집단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이런 와중에 일부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이 남긴 재산을 개인적인 치부의 대상으로 삼았다. 오랜 식민지배가 남긴 씁쓸한 풍경들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