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찰 부석사를 지켜온 사랑의 대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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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무량수전을 떠받친 석룡이 천년의 세월 동안 태백의 줄기가 되어 부석사를 지켜온 것인지도 모른다.

일찍이 깨달음을 얻은 의상대사가 전국의 산천을 돌아다니다 영주 봉황산 자락에 멈추어 선다. 부석사는 속세의 자리에 부처님의 극락세계를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일컬어진다. 절집의 고요한 풍경소리를 따라 천년 전설이 깃든 고찰 부석사로 오른다.

부석사 여행의 또다른 묘미는 태백산 자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일출과 일몰의 아름다움이다.

부석사 여행의 또다른 묘미는 태백산 자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일출과 일몰의 아름다움이다.

황금빛 은행나무 숲길을 따라
태백산 부석사, 일주문을 지나니 부석사를 대표하는 은행나무 숲에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을 햇살처럼 부서진다. 가을 부석사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은행나무 길이다. 입구에서부터 일주문으로 가는 길에 노란색으로 물든 은행나무가 이어져 그야말로 가을 정취가 절로 난다. 마치 극락의 세계로 통하는 길처럼 절집으로 오르는 길은 황금빛 은행나무 일색이다. 일주문을 지나니 천왕문 너머로 가파른 계단길이 이어진다.

부석사는 불교 교리를 건축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사찰이다. 범종루와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까지 108계단을 올라야 극락의 세계로 들 수 있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은 꽤나 가파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오르고 다시 멈춰서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계단을 오르는 동안 이미 고통과 번뇌는 사라지고 마침내 극락정토에 다다르게 된다는 것이다.

천왕문을 오르니 너른 마당에 2기의 삼층석탑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시 계단을 밟아 오르면 안양루다. 안양루에서는 일출과 일몰 시 비껴든 햇살로 황금빛 부처의 형상을 볼 수 있다고 전해진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은 기웃기웃 부처의 형상을 찾으려는 듯 연신 가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마지막 몇 계단을 오르기에는 숨이 차기도 할 터이다. 안양루에 오르자 비로소 부석사 경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무량수전, 안양루, 조사당, 응향각이 호젓한 절집 안에 편안히 들어앉은 품이다.

그 중 무량수전이 눈앞에서 위용을 자랑한다. 부석사의 자랑으로 한국 전통건축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목조건축물이다.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알려져 있다가, 최근 안동의 봉정사에 그 이름을 내주었다.

부석사 입구에서 일주문으로 가는 길에 노란색으로 물든 은행나무가 이어져 가을 정취를 제대로 맛볼 수 있다.

부석사 입구에서 일주문으로 가는 길에 노란색으로 물든 은행나무가 이어져 가을 정취를 제대로 맛볼 수 있다.

무량수전은 균형미가 돋보인다. 위풍당당하면서도 거드름이 없으며 겸손한 풍채를 지니고 있다. 하늘 아래 살짝 들린 팔작지붕의 처마선 역시 가볍지 않다. 곡선을 그리면서 날개를 활짝 펴는 듯하여 고고하지만 자연스럽다. 잔뜩 힘을 준 용씀과는 사뭇 다르다. 그 유명한 배흘림 기둥은 더 여유롭다. 적당한 불룩함은 과하게 부르지 아니하니, 하늘을 받치고 서 있는 품새가 미더울 뿐이다.

부석사는 7세기에 창건된 고찰이다.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고 창건였으니 대략 1300년의 세월을 이어오고 있다. 천천히 경내를 둘러보니 고색창연하고도 여유롭다. 담담한 듯 보이는 절집 안마당과 단청의 채색이 바랜 무량수전의 빛깔. 또 간절히 두 손을 모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천년을 이어온 기도의 터
그 사이 무량수전 불전 안쪽에 앉은 부석사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으로 햇살 한 자락이 비껴든다. 기도를 올리던 사람들의 얼굴에 잠시 평온한 미소가 깃든다. 누군가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올리는 이들의 모습이 마치 부석사와 오랜 인연이 있는 선묘낭자의 미소를 닮아 있는 듯하다. 선묘낭자는 부석사를 세운 의상대사와 애절한 사랑을 나눈 중국여인이다. 의상을 흠모하던 선묘는 의상의 중국유학 시절 대사를 흠모하여, 한 마리 용이 되어 부석사 창건에 도움을 준 여인이다.

경내에서 부석사를 안내하는 문화해설사 이원창씨(영주시 문화관광해설사)가 관람객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부석사에는 의상대사와 중국여인 선묘낭자의 사랑 이야기가 곳곳에 서려 있습니다. 대사가 중국에서 유학을 할 당시 머무르던 주인집 딸이 선묘입니다. 선묘낭자는 의상대사를 흠모하였으나, 법도에 맞지 않으니 사랑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참말로 안타깝지요? 그래서 선묘낭자는 한 마리 용이 되어 의상대사에게 여러 번 도움을 줍니다. 특히 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할 때 큰 힘을 보탭니다. 용이 된 선묘낭자가 거대한 돌을 띄워 부석사 창건을 방해하는 무리들을 물리치지요. 용으로 화한 선묘낭자를 선묘룡이라 하는데, 이 석룡은 절이 완성된 이후 도량을 지키기 위해 법당 아래 잠들어 있다고 전해집니다. 무량수전 앞 석등 밑에는 꼬리가 묻혀 있다고 합니다.”

부석사는 불교 교리를 건축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사찰이다. 범종루와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까지 108계단을 올라야 극락 세계로 들 수 있다고 전해진다.

부석사는 불교 교리를 건축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사찰이다. 범종루와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까지 108계단을 올라야 극락 세계로 들 수 있다고 전해진다.

태백산 자락으로 펼쳐진 해넘이
무량수전 왼편에 위치한 부석이 바로 ‘선묘낭자’가 띄운 뜬돌로 부석사 이름의 기원이 된다. 부석은 집채만 한 커다란 자연석 서너 개가 서로 뒤엉켜 있는데, 사람들은 매우 신기한 듯 큰 바위돌 앞에 한참을 머무른다. 잠시 부석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아이가 이번에는 무량수전 앞의 석등으로 달려가 주위를 뱅뱅 돌기 시작한다. 창건 당시 세워진 것으로 짐작하는 이 석등은 통일신라의 석등으로, 우리나라 석등 중 그 아름다움이 손꼽힌다. 예전부터 석등을 100번만 돌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소문이 있어, 사월 초파일이면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달밤에 이 석등을 돌며 복을 기원하기도 했다.

무량수전 뒤쪽에 있는 선묘 아씨의 영정을 모셔둔 선묘각을 둘러보고, 부석사 오른편 언덕에 자리한 삼층석탑을 지난다. 석탑을 끼고 왼편 산길을 오르면 조사당이 나타난다. 조사당은 의상대사를 모신 곳으로 바로 앞에 ‘선비화(禪扉花)’라 불리는 나무가 자라고 있다. 의상대사의 지팡이가 자랐다는 전설을 간직한 관목으로 아직까지 신비롭게 싹이 돋고 해마다 꽃이 피어나고 있다고 전해진다.

경내에서 부석사를 안내하는 문화해설사 이원창씨.

경내에서 부석사를 안내하는 문화해설사 이원창씨.

부석사 여행의 또다른 묘미는 태백산 자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일출과 일몰의 아름다움이다. 특히 무량수전 앞마당과 안양루, 삼층석탑에서 바라보는 부석사의 일몰은 가히 장관이다. 안양루에 기대어 서서 발 아래를 내려다보니 멀리 펼쳐진 소백의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이 풍광을 보고 방랑시인 김삿갓은 “인간 백세에 몇 번이나 이런 경관을 볼까”라는 시를 남겼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은 “태백산맥 전체가 무량수전의 앞마당”이라고 감탄했다.

높고 낮은 산자락은 절집을 감싸안고 있는 품새인데, 마치 하늘로 솟구치는 커다란 한 마리의 용이 절집을 감싸안고 있는 듯하다. 마침내 해가 저물고 담홍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던 이들이 가벼운 탄성을 뱉어낸다. 해가 완전히 산 뒤로 넘어가는 찰나. 짙은 구름 너머로 여의주를 베어문 한 마리 용이 슬며시 모습을 감추는 듯하다.

내려오는 길에 부석사 박물관에 들러본다. 부석사 모형도, 부석사 조사당 벽화, 의상대사의 영정, 경전과 활자 등의 유물이 전시되고, 부석사의 나무 건축모형과 영상자료도 잘 갖춰져 있다. 또 부석사 인근에는 의상대사가 머물렀던 초암사와 성혈사도 멀지 않다. 가을이 짙게 물든 소백산 산중에 자리한 초암사는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세우기 위해 잠시 머무르던 암자다.

소백산 죽계구곡의 산중에 자리한 때 묻지 않은 암자로 대웅전 앞에서서 바라보는 소백의 가을이 가히 절경이다. 또 성혈사는 의상대사가 초암사에서 수도하던 중 창건한 절로 아름다운 꽃살 창호로 잘 알려진 사찰이다. 창호를 연못으로 삼아 게, 물고기, 동자상, 여의주, 기러기 등을 조각한 조형미가 빼어나게 아름답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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