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로 드라마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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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왕’의 몰락은 ‘오렌지 주스’에서 시작됐다.

“역사를 왜곡하는 중국과 일본, 한때 가장 넓은 땅을 점령했던 몽골도 지금 한류드라마에 미쳐 있다”고 자신있게 외치는 앤서니 김(김명민)은 ‘드라마의 제왕’으로 불리는 성공한 제작자다. 높은 드라마 성공률로 쌓아진 절대권력 때문에 방송사 국장들도 그를 무시하지 못한다.

SBS <드라마의 제왕> | SBS 제공

SBS <드라마의 제왕> | SBS 제공

그의 작품인 <우아한 복수>가 한 회만을 남겨둔 상황. 협찬비 3억원을 받은 오렌지 주스를 결정적인 장면에 노출하라는 앤서니 김과 비장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남자주인공, 오렌지 주스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작가가 대립한다. 작가가 결국 오렌지 주스를 대본에서 빼버리자 앤서니 김은 보조작가를 시켜 대본을 고친다. 주인공이 해변에서 권총자살하기 직전 오렌지 주스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드라마가 끝난다.

5일 첫 방송된 SBS 월화극 <드라마의 제왕>은 드라마는 전세계로 수출됐지만 세계적 수준에는 한참 못미치는 드라마 현장을 까발린다. ‘배금주의’에 젖어 있는 제작자가 드라마 작가의 권한을 침범해 쪽대본·생방 촬영 등의 문제를 만들고, 그 뒤에는 PPL(간접광고)이 있다는 내용을 그렸다.

드라마 속 드라마 <우아한 복수>는 달리는 차량에서 대본을 고쳐 한 장씩 현장으로 전송하고, 방송 몇 시간 전에야 휘뚜루마뚜루 촬영을 마친다. 긴급한 촬영 일정으로 마지막 10분 분량의 촬영 테이프가 방송이 시작되고 나서도 방송사에 도착하지 못하는 상황. 테이프를 배달하던 퀵서비스 배달부가 과속 교통사고로 죽으면서 ‘드라마의 제왕’(김명민)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드라마는 다소 과장된 표현으로 현장을 그리고 있긴 하지만 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오후 10시 방송하는 드라마가 당일 오후 9시에야 편집이 끝나는 제작환경은 고스란히 방송사고로 이어졌다.

<드라마의 제왕>의 극본을 쓰는 장항준 작가가 참여한 SBS <싸인>도 마지막회에서 방송 중 오디오가 안 나오고, 갑자기 컬러 바(정규방송 시작 전에 보이는 컬러 막대기)가 나오는 사고가 났다. 9월 종영된 KBS2 <각시탈>은 촬영현장으로 향하던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로 보조출연자 한 명이 사망했다. 5월 종영된 KBS2 <적도의 남자>는 19회에서 갑자기 화면이 멈추는 사고가 났고 제작진은 “방송 테이프 전달이 늦었다”고 해명했다.

SBS <드라마의 제왕> | SBS 제공

SBS <드라마의 제왕> | SBS 제공

3년 전 방송된 드라마 <카인과 아벨>은 홍보하려고 촬영현장을 공개하는 행사를 열었다가 인근 PC방에서 한 장씩 대본을 출력해 현장으로 공수하는 모습을 기자들에게 들켜 오히려 빈축만 샀다. 드라마 속 이야기는 작가적 상상이 아니라 실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실제 방송사고가 나면 ‘사과 자막’으로 그치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드라마의 제왕’은 배달부의 죽음으로 회사에서 쫓겨났다. 가스세를 걱정할 정도로 몰락한 그는 새 드라마로 재기를 꿈꾼다.

척박한 드라마 제작환경과는 대조적으로 대부분의 드라마는 해피엔딩이다. 집안의 반대로 헤어진 재벌가의 아들과 가난한 여자는 결혼해 아이를 낳고, 출생의 비밀로 얼룩졌던 가족들은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얼싸안고 화해한다.

<드라마의 제왕>은 앤서니 킴이 재기해 진정한 제왕이 되는 과정을 그릴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진실한 사랑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 제작 현실은 언제쯤 진정한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까.

<박은경 경향신문 대중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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