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남성의 ‘드라마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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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계절인 가을은 채 누리기도 전에 지나갔다. 벌써 겨울 찬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이런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기라도 하는 듯 TV 드라마 속에서 중노년 남성들의 핑크빛 로맨스가 펼쳐지고 있다.

<적도의 남자> <아이리스>에서 시청자들의 공분을 자아냈던 ‘악역’ 배우 김영철은 고향 후배와 만나 사랑을 꿈꾸고 있다. 김영철은 KBS1 일일극 <별도 달도 따줄게>에서 해병대 직업군인 출신으로 완고한 아버지 서만호를 연기하고 있다. 네 자식을 두었지만 키우는 일은 순탄치 않다. 큰아들은 어릴 때 잃어버리고 둘째아들은 의사지만 성공과는 멀어 보이고, 셋째는 연상의 여인과 ‘속도위반’으로 결혼한다. 딸은 좋은 대학보다 가수에 더 관심이 많은 재수생이다. 이 드라마는 서만호의 아들들을 중심으로 사랑과 결혼, 음모 등을 주로 다루지만 요즘엔 서만호의 핑크빛 로맨스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그는 집 수리 때문에 만난 도배사가 고향 후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도배사가 “저 모르시겠어요? 저 대흥리 밤나무집 딸 연숙이에요, 문연숙”이라고 말하자 서만호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문연숙은 “오빠, 오랜만이에요”라며 웃었고, 서만호도 “네가 연숙이였다니…”라며 반가워한다.

KBS <닥치고 패밀리> 안석환 | KBS 제공

KBS <닥치고 패밀리> 안석환 | KBS 제공

고향 동네 밤나무집, 혹은 감나무집 딸을 우연히 만났고, 둘 다 혼자라면 얼마나 설렐까. 더군다나 그 후배가 “오빠, 오빠” 하면서 따른다면….

MBC 주말드라마 <아들 녀석들>의 유원태(박인환)는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새 사랑을 찾는다. 유원태는 온라인 카페에서 만난 ‘배꽃님’에게 “만나서 맛있는 것도 먹고 여행도 가자”고 ‘번개’(만남)를 제안한다. 채팅할 때 자판을 치는 속도도 젊은이들에 뒤지지 않는다. 그는 채팅할 때마다 ‘배꽃님’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예쁜 얼굴이라고 상상한다. ‘번개’ 장소에 목소리도 얼굴도 아름답고 게다가 취미까지 맞는 여성이 나타난다면….

KBS2 일일시트콤 <닥치고 패밀리>의 열석환(안석환)은 우신혜(황신혜)와 재혼해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이 시트콤은 상반되는 두 가족이 재혼으로 하나가 되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신혼인 두 사람은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도 꽤 열정적으로 애정을 표현한다. 남편이 “뭐 타는 냄새 안 나? 나 당신 때문에 타고 있다”며 트렌디 드라마에 나온 대사를 패러디하고, “내가 회전목마 태워줄까”라며 아내를 번쩍 들어올린다. 재혼한 아내가 미녀의 전형, 황신혜라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다. 40~50대 여성이 TV 드라마 주시청층으로 떠올랐을 때 불우한 이혼녀와 재벌 총각의 만남 등 중년판 신데렐라 드라마가 쏟아졌다. 중노년 남성들의 드라마 시청 비중이 점점 높아가면서 드라마 속 중년 남성의 판타지도 많아지고 있다.

KBS <별도 달도 따줄게> 김영철 | KBS 제공

KBS <별도 달도 따줄게> 김영철 | KBS 제공

시청률 조사회사 TNmS가 발표한 ‘2012년 상반기 시청률 결산’ 자료 중 가구 프로그램 시청률 순위에 따르면 ‘남자 60대 이상’(5시간 18분) 그룹이 TV를 가장 많이 본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는 ‘남자 60대 이상’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TV 시청이 53분 증가해 모든 성·연령대 그룹 중 가장 큰 증가폭을 보였다. 지난해 2011년 상반기에 ‘여자 60대 이상’(4시간 29분)이 TV를 가장 많이 시청한 것과는 확연한 변화를 나타냈다.

박은경 <경향신문 대중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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