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한폭 그림, 낙동강 700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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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이 한눈에 조망되는 전망루에 올라 멀리 강 건너를 바라본다. 낙동강 물줄기가 황금들녘을 휘돌아 흘러간다.

낙동강 700리 물줄기가 시작되는 곳이 바로 경북 상주이다. 강원 태백에서 발원한 강줄기는 상주에서 비로소 큰 물줄기로 합수하며 강다운 면모를 갖춘다. 가을이 익어가는 무렵 경천대에 올라 휘휘 돌아가는 낙동강을 바라본다. 고요한 물줄기에 마음을 싣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카누들의 모습이 아주 특별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계절이 바뀌는 무렵, 고요한 물줄기에 마음을 두고, 산골 절집을 물어 구수한 된장 익어가는 공양간에서 마음 수양을 하는 여정이다.

경천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낙동강.

경천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낙동강.

쌀, 곶감, 누에고치 등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알려진 상주는 낙동강의 낙동나루에 수십 년 전만 해도 사람과 물산이 넘쳐났었다. 예전에는 낙동강 700리 물길을 따라 많은 나루터가 있었다. 그 가운데 상주 낙동나루는 그 규모가 제일 컸다. 낙동강 하구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온 소금배, 그리고 강을 생계수단으로 삼던 어부들로 붐비며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 기능을 이어왔다. 덕분에 장터와 주막이 나루를 끼고 번성했다. 또 낙동강 물길이 젖줄이 되어 무엇이든 땅을 일구기만 해도 넉넉한 결실을 얻는 곳이기도 했다. 때문에 상주는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경북 내륙의 교통과 물산의 요지였다.

낙동강 700리 물길을 따라 걷다
그 강줄기의 옛 시절을 떠올리며 낙동강 1300리 길에서 낙동 제1경으로 손꼽히는 상주 경천대를 찾아간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날, 산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답답한 가슴이 이내 내려앉는 듯하다. 울창한 소나무로 빽빽하게 채워진 숲길은 강과 이내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상주의 ‘MRF(산길·Mountain Road, 강길·River Road, 들길·Field Road를 뜻함) 이야기 길’ 중 가장 인기가 많다는 제1코스로 길을 잡는다. 낙동강 이야기의 시작점으로 경천대를 배경으로 가을 숲이 우거지고, 강변에는 낙동강의 금빛 모래사장, 사벌면의 들녘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고 했다. 가을색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숲길을 걸으니 한가롭고 고즈넉하여 더욱 운치가 깊다.

경천대는 수려한 자연의 풍광에 반해 해마다 많은 사람이 찾아가는 상주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발 아래로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가 만들어내는 절경이 한 폭의 그림만 같다. 낙동강이 한눈에 조망되는 전망루에 올라 멀리 강 건너를 바라본다. 낙동강 물줄기가 황금들녘을 휘돌아 흘러간다. 오래 전 우리의 옛 어른들은 물을 바라볼 수 있는 절경의 자리를 찾아 시문을 읽고 마음을 가다듬었다고 전해진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물을 보는 행위는 그저 단순히 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정신을 깨우고 진리를 깨우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래 낙동강이 흐르는 강가에는 한 시절을 풍미했던 시인묵객의 발걸음이 잦았다. 선인들은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내려다보며 마음을 다스리고자 한 것이다. 발 아래 흘러가는 짙고 푸른 물빛이 고요하다. 말 없이 흐르는 강이 이내 마음으로 흐르고 상념은 이내 잦아든다.

담백한 손맛의 사찰음식으로 유명한 도림사의 주지 탄공스님.

담백한 손맛의 사찰음식으로 유명한 도림사의 주지 탄공스님.

경천대에서 바라보는 낙동강
그 순간 아름다운 풍경 한 점이 선경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작은 배 한 척이 물길 위를 흐른다. 한가롭게 노를 저으며 조용한 수면 위를 미끄러지는 일엽편주는 다름 아닌 서양식 카누이다. 경천대에서 카누를 탈 수 있는 카누 체험코스가 생긴 것. 낙동강 물길 위에 딩기요트와 카누가 물돌이동을 돌아나가는 모습이 아주 이색적인 풍경을 그려낸다. 물안개 가득한 의암호 주위를 캐나디안 카누를 타고 돌아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결 편안해 보인다. 주말마다 운영되는 이 카누타기는 연인과 가족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흐르는 낙동강물 위에서 노를 젓는 사람들과 경천대 전망대에서 이를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이 모두 즐거워지는 풍경이다. 높은 가을의 하늘과 황금들녘, 휘휘 돌아가는 물줄기 위에 한 점으로 흐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낙동강 제1경의 이름을 무색치 않게 한다. 휘휘 느리게 노를 젓는 사람들은 무어라 속삭이는 듯하고, 그 풍경을 잠시 내려보는 것만으로도 이내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곶감 싣고 달리는 자전거 탄 풍경
경천대 옆에 자리한 정자 무우정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린다. 이 정자는 조선 인조 15년(1637) 우담 채득기가 은거하며 학문을 닦던 곳이다. 우담은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따라가 함께 고생한 인물이다. 봉림대군이 왕(효종)으로 등극한 뒤 곁에 있기를 청했으나 끝끝내 거절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무우정을 세웠다. 무우정에서 강변 오솔길을 따라 가면 절벽 위에 드라마 <상도> 세트장이 나오고, 다시 주차장 방향으로 걸어가 고갯마루에 있는 육각정 이정표를 따라가면 정기룡 장군이 용마를 얻었다는 낙동강 제1용소가 나온다.

이곳에서 길을 내려서 자전거박물관을 찾아간다. 오래 전부터 자전거 도시로 이름을 알린 상주는 낙동강과 경천섬, 상주보를 따라 자전거길이 사방으로 이어진다. 일제 때부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던 상주는 일상적으로 자탄풍(자전거를 탄 풍경)을 볼 수 있던 고장이다. 농부가 상주 명물인 곶감을 싣고 논둑길을 달리고, 학생들은 등하교를 하며 온 도로에 자전거 물결을 이루었다. 그래서 자전거는 상주의 상징으로 ‘대한민국의 자전거 수도’로 녹색도시를 대표했다.

수백 개의 장독이 늘어선 풍경을 자랑하는 사찰 도림사는 상주 시내 동쪽 마을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수백 개의 장독이 늘어선 풍경을 자랑하는 사찰 도림사는 상주 시내 동쪽 마을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초창기에 발명된 자전거에서 현재의 MTB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전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나무로 만든 자전거, 이층 자전거, 물 위를 달릴 수 있는 수륙양용 자전거 등 희귀한 자전거도 있어 아이들의 발걸음을 잡기에 충분하다. 박물관 지하 1층 자전거대여소에서는 무료로 자전거를 빌려주는데, 주말이면 주민뿐 아니라 강을 따라 조성된 국토종주길을 따라 자전거를 탄 이들이 달리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자전거박물관 앞의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경천교를 건너면 오른쪽으로 드라마 <상도> 촬영세트장으로 이어진다.

해질 무렵, 어스름이 내려앉으니 사찰음식으로 그 손맛이 담백하다는 도림사를 찾아간다. 상주 시내 동쪽에 마을 깊숙이 자리한 전통사찰 도림사에 들어선다. 어디선가 풍기는 구수한 된장 냄새가 마치 고향집에 온 듯 편안하다. 절 마당에는 수백 개의 장독이 늘어서 부지런한 절간의 풍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세 분의 비구니 스님이 꾸려내는 절집의 공양이 그들의 삶처럼 담백하고 은은하다. 주지인 탄공 스님은 장독 뚜껑을 일일이 열어 보이며 장에 대해 설명해준다. “절집 음식의 맛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는 장 아닌교. 간장, 된장이 구수허야 음식 맛이 담백하고 좋지라. 모든 음식을 다 이 장으로 간허고, 버무리고 끓이고 허는 것이니. 제일로 손도 많이 가고 귀한 것이지라. 절집 음식이 심심헌 듯허지만, 간간허고. 선선헌 듯허지만 삼삼한 맛이 나는 것 다 장맛 때문이여.”

절간에서는 일상적으로 장을 담그고 장이 들어간 음식을 먹는다. 세속의 사람들이 즐기는 자극적인 먹거리와는 다른, 순하고 순한 손맛이 어쩌면 거친 속앓이를 풀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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