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에 살인까지, 범죄 종합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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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의 비밀과 불치병으로 막장의 시대를 열게 된 한국 드라마는 이제 살인을 끌어들였다.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일주일의 피로를 씻는 주말드라마까지 살인이 이끌고 있다. 살인이 아니면 드라마를 이해할 수도, 진행될 수도 없는 지경이다.

SBS 주말드라마 <다섯 손가락>은 전도유망한 피아니스트 채영랑(채시라)이 꿈을 포기하고 현모양처의 길을 선택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내에게 냉정한 남편이 영랑에게 밖에서 낳아 온 아들 지호(주지훈)를 키우라고 요구하면서 점차 악녀로 변해간다.

SBS <다섯 손가락> | SBS 제공

SBS <다섯 손가락> | SBS 제공

악행의 시작이자 끝은 바로 살인이다. 영랑은 우발적으로 남편을 죽음으로 내몬다. 그리고 영랑의 아들 유인하(지창욱)는 어머니의 살인을 알고 있는 사람을 죽인다. 살인이 또 다른 살인을 부르는 극단적인 전개는 영랑이 지호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려고 하면서 끝간 데 없이 이어진다.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MBC <메이퀸>은 여주인공이 인생의 고난을 이기고 해양전문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겠다는 드라마다. 여주인공의 고난은 살인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살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행해진다. 선박 전문가였던 여주인공 천해주(한지혜)의 친아버지는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친구 장도현(이덕화)의 총에 죽임을 당한다. 어린 천해주는 양아버지 손에 자라게 되는데 양아버지 역시 장도현의 사주를 받은 박기출(김규철)에게 살해당한다.

성인으로 자란 천해주는 박기출의 아들(재희)과 사랑에 빠지지만 그는 아버지의 살인을 알고 해주를 떠난다. 여주인공의 고난은 살인으로 두 아버지를 잃는 것으로 시작해, 살인 때문에 연인의 사랑을 잃는 것으로 이어진다.

MBC <메이퀸> | MBC 제공

MBC <메이퀸> | MBC 제공

KBS2 수목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의 시작도 살인이 연다. 전도유망한 의대생 강마루(송중기)는 연인인 재희(박시연) 대신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옥살이를 한다. 마루는 재희가 “성폭행을 피하려다 우발적으로 죽였다”는 말을 믿고 대신 죗값을 치르지만, 재희는 마루를 배신하고 기업체 회장과 결혼한다. 재희의 살인은 남자주인공의 복수를 부르게 된다. 마루는 재희가 살인을 한 이유도 성폭행이 아니라 회장과의 결혼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회장 딸과 함께 재희에게 복수를 하려 한다.

요즘 드라마에서의 살인은 빈번해졌을 뿐 아니라 죄질도 나빠졌다. 예전에는 “죽이겠다”고 겁을 주거나 살인미수에 그쳤으나 버젓이 살인을 한다. 또 살인을 주제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살인이 드라마의 중요한 소재가 됐다. 실제로 지하철이나 대로에서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묻지마 살인’이 일어나면서 드라마에서조차 생명경시 풍조가 번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시청자들이 웬만한 자극에는 내성이 생겼다.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소재가 아니고서는 눈길을 끌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드라마 제작자들이 시청자들이 자극적인 것을 원한다고 말하는 동안, 시청자들은 드라마가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말한다.

<다섯 손가락>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너무 자극적인 얘기로만 흘러 배우들의 연기력이 아까울 정도고, 열심히 하는 배우들이 되레 이미지를 버릴까 걱정된다”(김익진씨) “협박, 강요, 폭행에 살인까지 범죄 종합선물세트”(김우진씨) 등의 원성 섞인 반응이 ‘재밌고 신선하다’는 의견을 압도한다.

박은경 <경향신문 대중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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